아이들이 자라는 데 있어서 때로는 부모, 선생님 이외 특별한 존재가 필요하다. 멘토.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일깨우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엄마 아빠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해준다.
내 아이는 예민한 편이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특정 행동을 따라 하며 학습하기도 한다. 아이를 잘 이해하고자 여러 상담을 받았고,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았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연스럽게 멘토를 찾게 되었다. 아이가 편안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분을 멘토라 생각하고 부탁드렸다.
유아기에, 아들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세 살 때 어린이집에서 만난 친구인데, 말이 빠른 편이었다. 의사 표현도 정확했고, 책도 좋아했다. 이 친구랑 같이 다니면서 '입이 트였다'라고 할 정도로 말을 잘했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로봇, 캐릭터도 같이 좋아했다.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이 노는 모습을 보며 담임선생님은 농담으로 그 친구에게 "ㅇㅇ이가 네가 하는 행동을 다 따라 하니까, 네가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겠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둘의 성향은 달랐다. 이성으로 치면, 우리 아들이 일방적으로 좋아한 짝사랑. 각자 기질과 성향에 맞는 유치원을 찾아 떠났고, 6년이 지난 뒤 초등학교에서 다시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며 전학을 왔다. 낯선 동네, 낯선 학교, 낯선 친구 속에서 아이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틀에 한 번 간격으로 휴대폰에 담임 선생님 번호가 뜰 때면 절로 죄인 모드가 되었다. 그러던 중,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마인드맵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마침 센터가 동네 부근이라 아이를 데리고 갔다. 마인드맵을 가르치지만 심리학 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던 선생님은 아이가 불안해하는 요소를 캐치해 내고 이해하고 소통하려 했다. 그룹수업을 해야 했지만 아이가 안정될 때까지 일대일 수업을 해줬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미혼인 남자 선생님은 조카가 있어서인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선생님과 수업하며 아이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진솔한 마음이 아이 마음을 열게 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주말에도 선생님과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나들이를 가며 거리를 좁혔나 갔다.
불행하게도 선생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만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헤어져야만 했다.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도 수시로 선생님 안부를 묻는다. 다른 학원으로 바뀐 센터 앞을 지나갈 때면 말없이 쳐다보는 눈과 입에서 슬픈 감정이 전해진다.
몇 달 후, 4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다시 혼란을 겪었다. 새 교실, 친구, 선생님이 있는 환경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다. 예민함은 감정 조절에도 영향을 줬다.
지인 소개로, 모래 치료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 박사이자, 유치원 원장님으로 퇴직하신 선생님은 누구보다 아이 시선에서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보통 10주에서 20주면 끝나는 치료인데 아이는 30주가 넘도록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모래 상자가 달라지고 발전해야 하는데, 늘 똑같은 모래상자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기다려주셨다.
31주 차가 되며 아이는 자기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모래를 이용해 내면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모래판 위에 사람이 나오고, 질서가 잡혔으며, 하늘과 땅, 다양한 색깔을 가진 피겨가 등장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다음 주면 1년 반 동안 진행한 모래 수업이 끝난다. 정기적인 만남이 끝나더라도, 앞으로도 자주 찾아뵐 예정이다. 당장은 아이가 의지했던 멘토 자리가 비어있을 예정이지만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소개해 줄 계획이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멘토는 있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부모가 최적의 대상이면 좋겠지만, 아이 입장은 다를 수도 있다. 멘토와의 경험은 아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배운 것들이 모여 아이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테다. 앞으로도 아이가 멘토를 찾아 안정을 가지고 앞날을 건강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