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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 다시 시작하는 배움

by 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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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4년 만에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이런 날이 또 올 줄이야.

대학원 졸업 논문 심사를 마치는 날,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동기들에게 외치다시피 말했는데.

인생은 그날 내린 결심 위에, 또 다른 시작을 내려놓았다.


2001년 3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을 때만 해도 그건 당연한 수순이자 절차, 그리고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에 그쳤다.

2011년 3월,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순수하게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며 10년 전 나와 자꾸 비교됐다.

그들은 열심히 스펙을 쌓고 미래를 준비했다. 취업을 위한 고민과 준비도 남달랐다.

나이 서른에, 학부생들 사이에서 '맏언니' 소리를 들으려니 어색했지만, 오히 그 호칭 덕분에 더 어른스럽게, 성숙하게, 진지하게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논문을 쓰며 여러 번 쓴맛을 삼켰다.

좌절은 끝없는 허들처럼 밀려왔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다른 교수님의 날 선 지적,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임신 초기의 불안함까지.

진도가 늦어진다고, 바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비교당했던 순간마다 조용히 내 감정을 삼켜야 했다.

조언을 구하는 것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걸까?' 스스로 수없이 묻기도 했다.


논문을 완성한 뒤, 학술지에 투고할 기회가 생겼다.

내 이름이 3 저자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도움을 주신 박사님이 이의를 제기해 주신 덕분에, 나는 1 저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학술지에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대학 생활은 없을 거야'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현재,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이번에는 서울까지 오가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강의가 일상이 되면서, 필요로 해온 공부를 집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장학금 제도도 다양해져서, 나 같은 늦깎이 학생에게도 혜택이 주어졌다.


2025년 8월 25일, 가을 학기가 시작됐다.

편입생 신분으로 여섯 과목을 수강해야 했기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전공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채웠다.

'온라인 수업이라 조금은 낫겠지'싶던 기대는 사라졌다.

학문은 역시 쉽지 않았다.

각 과목마다 기초와 기본에 충실했다.

관련 책을 여러 번 읽었기에 수월할 거라 예상했지만, 학문적으로 파고들자 확실히 달랐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렵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이 또한 학문의 이면성일까.

이제야 진짜 만학도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꼭 필요해서, 스스로 원해서 배우는 공부라 그런지 과정 자체도 즐겁다.


중간중간 과제와 시험도 있다.

이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득 ' 왜 이 길을 또 찾아왔을까?' 후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 크다.

현재를 충분히 누리기로.


학사모를 쓰던 날,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또다시 학생 신분이 됐다. 물론, 다른 학교 다른 공부를 위해서지만.

돌아보면 모든 선택은 이어진다.

이번 결정이 앞으로의 나를 위해 꼭 필요한 행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두 시간 동안은 모니터 앞에서 집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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