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라는 버젓한
단어가 있음에도,
엄마는 꼭 블랙커피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사오기 전, 우리집 앞에는
매머드 커피가 있었다.
출근길 직장인들의 필수코스이자
우리 가족의 생명수를
보급해주는 장소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100일을
넘겼을 무렵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다시 손을 뻗었다.
임신 전, 하루에.. 못해도
5잔씩 퍼부어댔던 걸 감안하면
하루 1,2잔 정도는
살기 위해 마셔야 하는
최소한의 양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아침마다 슥 다녀와서
두 잔의 커피를 내려놓는 나를 보며
"왜 돈 아깝게 커피를 사와~"
라고 하셨지만,
"헤이즐넛아메리카노"와
"바닐라라떼" 처럼,
엄마 취향을 저격하는
커피로 바꿔드린 후로
말을 바꾸셨다.
오후가 되면
"아흠... 커피 한 잔 마실까?"
먼저 제안하기도 했으니.
우리가 쌍둥이 가정보육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커피였다.
나와 달리,
우리 엄마는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미세먼지, 비, 폭염, 한파를
다 체크해야 하고
무엇보다
옛날 우리 집 주변엔
이렇다할 공원이 없었다.
편도 20분 거리에 있는
공원을 찾아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가서는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우리 일상의 낙이었다.
돌아보면, 그때가 참 좋았다.
돌아가서 안아보고픈
꼬물이 시절의 내 딸들,
그리고 아이들의 사진 속에
오늘보다 조금 더 젊고 빛나는
나와 내 엄마가 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베이커리 카페'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베이커리 카페'는
엄마를 못마땅하게 하는
사악한 가격의 빵들이 즐비하고
음료 값도 8천원부터 시작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데리고
넓은 정원을 달릴 수 있는데다
다양한 포토스팟이 있었다.
그리고 베이커리카페를 빼면
아기의자, 기저귀갈이대 같은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는 것이 현실.
(아기 엄마들이 몰, 백화점에서
약속을 잡는 이유도
거의 이와 동일하다.)
엄마는 빵 가격을 보면
편히 고르질 못하셔서,
항상 아기들과 자리를 잡으시고
내가 주문하곤 했는데
그래도 마늘빵, 모카빵이
최고인 줄 알던 엄마가,
이건 무슨 빵인데?
휘낭시에? 맛있네
포카치아? 이름도 특이하네
맛은 있네.
하나씩 나의 세계에 스며들고
새로운 표정을 짓는 것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우리는 엄마의 셀토스를 타고
매일 빵, 커피, 정원, 꽃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게 우리의 낙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찬란했던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둥이들은
빵과 커피를 먹고 충전된
두 엄마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드디어
해가 바뀌면
첫 돌을 맞이할 것이었다.
둥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했던 데드라인.
이 말은 곧,
친정엄마와 살 부비며 육아할 시간이
끝나간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