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하는 거? 좋다.
부자된 썰? 좋다.
같이 부자되자고
계몽하는 거? 좋다.
근데 선생님들...
사람 좀 봐가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제 막 애낳고
신생아랑 둘이
집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기엄마들한테
상급지로 안 갈거야?
새 옷 의미없어.
하루 만원 챌린지 하면서
가계부 쓰고, 학군지 가자!
하급지에서 무슨 영유?
무조건 절약해! 라며,
채찍질 하진 않았으면 한다.
그 엄마들은 이미
분만장에서, 조리원에서
내 품에 안겨서
똥그란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보며
왜 더 많은걸 준비해주지 못했을까
지나온 삶을 자책하기도 하고,
얘를 어떻게 먹여살려야 하나
책임감에 짓눌리기도 했을 것이다.
조리원에서
안 운 엄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아기 어릴때
바짝 돈 모으는거, 좋지.
그런데, 신생아 데리고는
아니라고...
괜히 유모차 끌고
커피도 한 잔 하러 나가고,
문화센터 스케쥴 짜서
다른 엄마들 얼굴이라도 보면서
무언의 위안도 삼아보고,
남편 오면
맛있는 치킨 뜯으면서
잠깐 밀린 카톡 봐도 된다.
그때는...
잠시 그래도 되는거였어.
쌍둥이를 낳고, 이사에 대한 열망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나.
집도 마음에 안 들고,
내 몰골도 마음에 안 들고,
초조함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내 미래까지
그려보려니...
용량이 가득차
버버버벅- 거리면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시절이다.
항상 날이 서 있었지만,
애기 앞에서는
감정을 드러낼 수 없어
삐에로처럼 웃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가 없는 문젠데
아이들도 완벽하게 케어하고,
발달 단계도 신경써야 하고,
부동산 책 읽어대고,
매일 통장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까지
평온하길 바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보 부모,
無의 상태인 아기들,
우리가 가족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진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때는 그 진통을
온 몸으로 겪어내는데
에너지를 다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1-2년 정신줄 놓고
육아에 매달린다고
인생 망하지 않음. 오케?
내가 이렇게까지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이유는,
그때 그러지 못해
아팠던 내가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몸이 떨리는
증상이 잦아져 찾아간 병원에서
(일반검진에서는 이상 無)
의사는 내게
번아웃이라고 했다.
불안도가 너무 높아
약을 먹는게 좋고,
자율신경계가 다 무너져있다고.
"저는 그냥 열심히 산 것 뿐인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자신도 아기 아빠라던
의사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쉬어갈 때가 된 거죠."
"그리고."
"남편 분 쓰러지고 나서
트라우마로 오셨었는데
그때 치료 종결 안하셨네요.
저랑 원장님이 걱정 많이 했는데..."
그렇다.
나는 남편이 심정지를 겪고
건강에 대한 불안도가
극에 달했고
염려증, 불면증까지 생겨
치료를 받았었다.
매일 산을 오르고
필라테스로 몸을 혹사하면서
나는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착각했던 것.
그런데 또 작고 연약한 생명이
내 품에 안겨버리니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나를 집어삼킨 것이다.
약도 약이지만,
상담센터도 다니면서
어렵게 이겨낸 암흑기.
항상 '너는 잘하니까',
'너는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어쩜 그렇게 다 해내니' 라는
말만 들어왔기에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나의 그림자 같은 과거다.
상담을 받으면서
친정엄마한테 모질게 하는
내 스스로에 대해
토로한 적도 있었다.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힘든 이유는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기 때문"이더라.
선생님은 늘 내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기들...영원히 이렇게
누워만 있지 않고,
말도 할거고, 걷고,
나중에는 나보다 더 세상에 밝은
아이들이 될 거예요.
이 감정...절대 영원하지 않고
다 지나갈 거예요.
그리고 친정어머니도 지금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일 겁니다."
엄마한테 감히
정말 그렇냐고, 물어보진
못했지만...
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분께서
저렇게 말씀해주시니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나의 육아는 180도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완벽함이 아니라
순간의 행복을 찾고,
마음에 기록하는
엄마가 되기로...
그리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문제도
추가로 시터를 고용하고,
방문수업을 추가하면서
합리적으로 개선했다.
(여력이 안 되는 분이라해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
숨통 트일만한 것을
소소하게라도
꼭 챙기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조차 부담이라면
그냥 벤치에 앉아
숨만 크게 쉬어도 된다.)
우리의 앞날에는 이제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