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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봄이었네.

by 롸잇테리언








쌍둥이를 가졌을 때 나는

태교를 하지 않았다.





태명이야 있었지만,

워낙 바쁘기도 했고

괜히 쑥쓰러워

배 한번 쓰다듬어 준 적이 없었다.




우리는 가족, 그리고 하나의 개인,

누가 누굴 위해 희생하는 일은

없을 거야.

세상엔 이런 엄마도 있는거야.





이 편협한 다짐이 깨진 것은

수술대 위에서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채로

뜨겁고 물컹한 핏덩이가

연달아 내 볼에 닿았을 때,






"엄마, 애기들 건강해요."




수술실의 분주한 풍경 속에서

나는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나는 앞으로 저 아이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겠구나.







이건 내 우주를 뒤흔든

빅뱅이고, 대형사고였다.




모성애를 믿지 않던 나에게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강렬하게 스며들어버린 것은,

분명, 내가 그토록 밀어냈던

'모성애'가 맞았다.




말하자면,

코가 꿴 것이다.




돌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두고

엄마가 "1년 더 가정보육..."

넌지시 제안했을 때,



내 안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바짓가랑이 붙드는

엄마껌딱지들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나.


후다닥 먹고, 인간 필로우가 되어야 하는

생활을 끊어내고

역류성식도염을 떨쳐내고 싶은 나.





시험관 반년, 임신 10개월,

가정보육 1년...

이만하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KakaoTalk_20251105_224406612.jpg?type=w773 친정엄마도 도둑밥을 드셨다



KakaoTalk_20251105_224659754.jpg?type=w773 사실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








하지만, 친정엄마의 제안에

흔들렸던 것은

그 시간동안 내가

얻은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無로 태어난 한 인간이,

눈을 뜨고, 분유를 삼키고,

배설을 하고,

사지를 파닥이며 뒤집고,

기고, 잡고 서고,



한발짝씩 걷는 과정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책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고,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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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105_224423129.jpg?type=w773 돌아보니, 봄이었네






게다가,

그맘때의 아이들은

제법 사람의 단어를 내뱉으며

'말하는 인형'으로

진화할 조짐을 보여주지 않던가!






내적갈등이 심화되던

어느날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낮잠에 들었다.



겨울이지만 보일러를

절절 끓이고 있었으므로

27도에 육박하는 포근한 집에서



친정엄마-선둥이-나-후둥이



이렇게 우리는 일자로 누워

깊고 단 잠에 빠졌다.





거실 깊숙히 들어와

우리를 비추던 햇살,


몽글몽글한 아기냄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


아기한테 한쪽 팔을 내 주고

코골며 주무시는 친정엄마.





내가 그토록 바라던 행복이

눈 앞에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추고 싶다,

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주마등처럼

살아온 날들이

스쳐간다고 한다.



아름다웠던, 슬펐던,

행복했던, 시렸던...

그 모든 순간 가운데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면

나는 저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잠든 세 여자를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이,

내 인생의 봄날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심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봄날을, 조금 더 연장해보기로.






이 선택이 얼마나 큰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지,

이때까지는 몰랐다.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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