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와 쟤만 빼고 다른 애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 DJ.DOC / 머피의 법칙 中
나와 비슷한 연배? 라면
유년시절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시절, 우리를 설레게 했던
가요톱텐, TV가요20...
기억나시는가, 그 시절이.
지금처럼 아이돌 가수가
주류가 아니었고,
성인대중가요가 1위를 하던
시절이다 보니
가사는 주로 사랑노래,
인생노래 였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학예회에서, 운동회에서,
노래방 가서 불렀던 노래들.
이 나이 되어 다시 들으면
하나하나 어쩜 그렇게
공감되는지 모를 일이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건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꼬인다는 뜻인데,
지금? 하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이
육아하면서는 거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잊지 못하는
일화가 있다.
아이들을 1년 더 가정보육하기로
결심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좋아하는 PD님께 연락이 왔다.
한번 보자고 하기에
반가운 마음에,
육아에 찌든 얼굴이지만
신나게 달려나갔다.
고깃집에서의 대화는
일과 근황,
육아를 넘나들며
내가 엄마인 동시에
십수년간 방송일을 했던
작가임을 상기시켜주었다.
(둥이들을 낳고도
나는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재택이 가능한 프로그램 위주로
하고 있어서, 현장에서는
떠난 상태였다.)
PD님은 아이들 이야기를
실컷 물어보시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나는 직감했다.
이 분이,
우리가 그토록 함께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맡게되었다는 사실을.
그 프로그램은 나에게도
작가로서 꼭 해보고 싶은,
마지막 퍼즐조각 같은
방송이었다.
"PD님... 잘됐다. 축하해요!"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좋은 기회는
내가 수락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걸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 프로그램은
반드시 출근이 필요한 시스템이고,
출퇴근의 변수가 매우 많다.
밤샘회의가 있을 수 있다.
PD님은 이번 프로그램으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시간도, 마음도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팀에서 기혼은
나 하나다.
듣자마자
하고 싶다... 는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맥주를 삼키면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걸
스스로에게 납득시켰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고,
엄마 혼자 두 아이를
볼 수는 없다.
어린이집을 간다해도
엄마께 쌍둥이 등하원과
저녁 밥까지 오롯이
맡기는 건
지나친 불효였다.
더군다나 나의 아이들은
아직 돌도 채 되지 않았다.
"아쉽다... 애들 좀 크면
또 재밌는 거 해보자구요."
우리가 얼마나 좋은 파트너였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함께 걸어간다면
뭐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몇년 사이
나의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에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두시는 선배를 보면서
공포 혹은 아쉬움을 느꼈던 나는
대체 얼마나 작은 세상에
살고 있었던 걸까.
안다. 작가로서
한번의 큰 거절이 가져올
나비효과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다.
맥주를 한 병 더 시켰다.
맥주를 마시며 남은 미련까지
다 쓸려보내고 싶었다.
"다음에 또 연락해요."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남아있던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