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몇년 전 일을
명확하게 떠올리는 걸 보면,
고작 세 살배기여도
1-2년 전 기억은
또렷한 건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조기 하원시켰다.
둥이들은 괜찮지만
워낙 아픈 아이들이 많아
내 마음 편하고자
일찍 데려온 것이다.
(이럴 때는 애매한 재택워킹맘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집에 데리고 와서
비타민 영양제 먹이고
낮잠 재우고,
비몽사몽으로 빠져나와
뭐 좀 할라하니
그새 뿌앵 우는 소리가 들린다.
식탁위에 둔 폰도 운다.
징- 징- 징-
톡이 연달아 오는 듯 하더니
멈춘다.
가서 확인하니
집 바로 밑에 있는
무인과일가게 사장님의
영업톡(?)이다.
딸기 입고. 귤 입고.
당도 높음.
"얘들아, 딸기 먹을래?"
이건 나가자는 소리?
애들이 신나서 현관으로 향한다.
지난 주말에 산 어그부츠를 신고
패딩으로 칭칭 감싸
딸기와 귤을 사왔다.
딸기를 열심히 먹던 아이들이
말한다.
"이거 히히선생님도 먹으면 좋을텐데~"
히히 선생님이란,
아이들이 6개월때부터 두 돌때까지 오셨던
방문미술 선생님인데
아주 열정적인 분이었다.
그 분과 함께
딸기를 나눠먹었던 기억이
강렬했던 것 같다.
귤을 까면서는
"몬테소리 선생님이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었지?"
한다.
아이들의 말에,
잠시 그때로 나를 데려가본다.
짐보리 선생님, 트니트니 선생님,
매주 오는 방문영어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까지
아이들이 이만큼 크기까지는
모든 어른들의
빛나는 마음과 정성, 염원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예쁜 언어로, 다정한 눈빛으로
사랑을 나눠주신 분들.
주말엔 남대문 시장에 갔었다.
그곳에서 이 인형을 발견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처음을 함께해줬던
'시터 이모'를 떠올렸다.
100일부터, 돌까지 함께 해 준
고마운 친구다.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전직 어린이집 교사였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그 친구는 여전히 종종
재재들을 보러오는데,
가방에 '라부부'를 달고 온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나은이 이모꺼도 사고싶어."
라는 말을 해
우리를 몽글하게 만들었다.
두 돌이 지나고
가정보육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이거 맞아?"를
반복했다.
그 정도로 힘들었다.
마의 18개월을 겨우 넘기니,
엄껌이 재발했고,
밥태기가 또 오고,
말문이 트이면서는
왜왜 병이 왔다.
쌍둥이들이라 싸우기는
어찌나 싸워대던지.
물고 뜯고 때리고,
서로를 그렇게 마루타? 삼은 탓에
어린이집 갈 때 쯤엔
산전수전 다 겪은
말년병장처럼 각이 잡혀
입학했다.
가끔 사진첩을 들춰보면
귀엽기만 한데,
우리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나... 싶다.
하지만, 돌아가라면?
워후...
지나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뿐.
지금은 육아 품앗이의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이는 혼자 키울 수 없고
우리는 많은 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
덕분에 해냈고,
지나왔고,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
우리 아이들과 나,
친정엄마의 처절했던
육아시절에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모든 선생님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언정,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얼굴들이다.
아이들의 첫 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해 준 모든 분들께
이 페이지를 빌어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