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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냄새

by 롸잇테리언








언젠가부터 흙수저, 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만

고유명사가 됐다.




흙수저라는 말조차

상대적인 거지만,

나는 세상의 잣대로 봤을 때

금수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어느정도 큰 뒤부터

부모님은 늘 고된 노동을 하셨고,



방 3개짜리 집에서

삼남매가 자랐기 때문에

동생들에겐

제 몫의 방이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한평생을 남들 밥만

해주며 사셨지만,

정작 우리의 밥상은

용가리치킨, 같은 것들이

채우는 일이 잦았고,



K-장녀였던 나는

엄마를 대신해

간장계란밥을 한가득 비벼

동생들과 나눠먹기도 했다.



셋 중에

가장 공부에 욕심이 있었던 나는

보습학원, 예체능학원 들을

찍먹 정도는 했지만


동생들은 보습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게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IMF 즈음에는

분양받은 집에

입주해야 한다며

학원도 다 끊었었다.




가난하다, 고 하면 기만이지만

뭐랄까...



다 가질 수 없는 삶?

늘 선택해야 하는 삶.


그게 우리가족의 삶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에는

그러한 삶 속에서도

우리를 산으로 들로,

서울랜드로 데리고 다니며

사랑을 부어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유년시절의 결핍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내 일기인데, 원본이 짱박혀있어

전에 비공인스타에 올려뒀던 걸 찾아냈다.)



KakaoTalk_20251113_151404219.jpg?type=w773 97년쯤? 이야기








KakaoTalk_20251113_151404219_01.jpg?type=w773 물가 걱정하는 초딩






이 일기를 적어내려갔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육아를 하면서, 신기한 경험은

어린시절의 나를

불쑥불쑥 마주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나의 결핍을.




친정엄마와 육아를 하면서

나는 이 문제에서

더더욱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엄마가 반찬을 통 째로 꺼내놓고

드실 때마다,


아이들에게

비비고 떡갈비를 구워줄 때마다,


애써 덮어두었던

유년시절의 결핍이

훅- 올라오는 게 아닌가.





어디선가 본

가난한 집안 특징.jpg

같은 게

내 눈앞에서 상영되는 기분이라

늘 붙같이 화를 냈다.




"엄마! 반찬 좀 덜어먹어,

침 다 들어가고 뭐야."



"엄마! 가공식품 먹이면

아토피 생긴다니까?"



"찬밥 모으지말고 좀 버려!"


"싼 거 말고, 맛있는 걸 사라고."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겪은 결핍이

아이들에 묻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래서 늘 예민했다.




엄마는

유난인 애가,

애낳고 더 유난을 떤다고

진저리를 쳤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결핍들이,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 뿐이다.



예쁜 옷, 신발,

비싼 방문수업과 교구,

어린이 뮤지컬 관람,

예쁜 사진들,




누군가에게는 '낭비'로

보일 수 있는

나의 행동들은

어린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뒤늦은 선물같은 것이었다.



오랜 결핍을 스스로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 가장 큰 결핍이었던

'해맑음'.



아이들이 나와 친정엄마,

남편에게 둘러싸여

넘치게 사랑받고

근심없이 웃는 얼굴을 보는 게

그렇게나 좋더라.





더이상 일을 하지 않고

내 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늘 바빴던 아빠와는 달리

정시퇴근해 아이들과 눈을 맞춰주는

남편.



그리고


세상 근심따위 모른다는 듯

천진하게 웃는 나의 딸들.




"원이 없다는 게 이런거구나."






돌 때부터 두 돌때까지

우리가 온 몸을 갈아넣어

가정보육에 매달린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으나....



아이들의 성장을

매 순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점,


개인적으로는

내 스스로의 결핍을

마주하고, 치유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아무리 사랑해줘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아이들 역시

훗날, 내가 채워주지 못한

어떤 부분에서

결핍을 느낄 것이다.


그건 또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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