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명품을 다 팔아치웠다.
신발, 벨트, 팔찌 같은 액세서리는 단숨에 정리했고
드레스룸 한쪽을 채웠던 가방들 역시,
디올에서 만든 ‘패브릭’ 백 하나와
문신처럼 메고 다니던 버킷 백 하나만 두고
모두 새 주인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모두
쌍둥이의 ‘캐치티니핑’ 샤드레스들로 채웠다.
수년간 박스에 곱게 누워있던 그 가방들은,
88만 원이라도 받고 싶었던 막내가
방송국에서 십여 년간 굴러가며 주운
일종의 ‘토템’ 이었다.
이건 방송작가의 연차를 가늠할 수 있는
물건인 동시에,
얼마나 ‘잘 나가는’ 작가인가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했다.
(가끔 전설처럼 에코백을 든
건물주 작가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했지만,
그건 마치 전지현이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적절할 것이다.)
방송국 사람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과하게 털털한 면이 있었다.
카메라 앞이나 뒤의 세계가 진짜라는 듯,
그 외의 구역에서는 아무것이나 먹고
아무것이나 마시며,
아무렇게나 누워 자기도 했다.
하지만, 몸을 가려야 할 때는
반드시 명품을 찾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혹은 눈길을 끌기 위해 타는 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선배의 호통처럼 방송작가는
절대 ‘연예인이 아니’지만,
그들과 너무 동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좋을 건 없었다.
나 역시 연차가 쌓이면서
명품을 한두 개씩 몸에 감았다.
이구아나가 보호색을 입듯,
나름의 영업 전략이라 합리화하면서.
동기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한 언니는 경차를 탔는데,
누가 볼까 무섭다며
방송국의 무료 주차 대신
건너편의 허름한 사설 주차장을 이용했다.
경차에서 내리는 그의 손에선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백이 반짝였다.
또 다른 친구는 뚜벅이를 자처했다.
보수를 꽉 채워 받아도,
아픈 부모님 생활비로 숭덩 떼어주고 나면
본인 월세 내는 것도 빠듯할 터였다.
유독 체구가 작은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른 건,
체인이 주렁주렁 달린 샤넬 백이었을지도.
본사 PD들은 예외였다.
그들에겐 보여 주기 식 명품이 필요 없었다.
출입증 대신 사원증이라고 적힌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으니까.
암행어사 마패보다 더 갖기 힘들다는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명석한 인재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언제나 명치쯤에서
경쾌하게 흔들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작가 역시 프로그램에 합류하면
명함을 찍어주긴 했지만,
그건 프로그램 종영과 함께 사라질
신기루 같은 종이에 불과했다.
방송 작가들은 전부 방송국이 아닌,
프로그램에 소속될 뿐이므로
그 종이가 우리를 지켜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초면에 명함 없는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란,
참으로 궁색한 것이었다.
기존에 무슨 무슨 프로그램을 했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일로 증명하기 전에 그 묘한 경계심을 푸는 건
허무하게도 ‘결’일 때가 많았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 자신감 있는 눈빛,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주기 위해 우리는
명함 대신 명품을 목과 어깨에 걸었다.
어차피 로고 너머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구질구질하지 않은 ‘비즈니스 파트너’,
그게 내가 입어야 할 옷이었다.
당근마켓에 내놓기 위해
가방을 검수할 때마다,
주머니에선 프로그램마다 만들어뒀던
명함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마치 가방의 역사를 기록한
팸플릿처럼.
아, 이 무거운 ‘빅 백’은 의사들하고
토크쇼 할 때 매고 다녔던 가방이지.
(온갖 자료 헤집어서
말로 바꾼다고 생고생 했었다.)
이건 아이돌 프로그램 할 때
크로스로 맸던 ‘미니 백’.
복도 끝에서 끝으로 뛰어다닐 일이 많아
짐이 단출했었지.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처럼
이제 그곳에 없는 내 이름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찢어 버렸다.
어쩌면 그 시절 초라한 나의 방패가 되어주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함께 누벼주었던
명품 백들이야말로, 진짜 명함 아니었을까.
그럼 나는 이제 나를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해진 걸까?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의심받는 게 두렵고,
조금 더 ‘값져 보이고’ 싶은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그 답을 내 안에서
찾고 싶어졌을 따름이다.
내 ‘찌질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명품 백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을 가려주기 위해 떠났다.
마지막 가방을 새 주인에게 건네고 돌아오는 길.
빈손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나는 모처럼 가볍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