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방송인 최화정 씨가
라디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싫어하는 게 힘들다는
한 출연자의 고민에 대한 답이었다.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굴 좋아하기도 해.
그러니까 퉁쳐.”
그 말에, 내내 명치에 걸려있던
굳은 떡이 쑥 내려갔다.
그의 말처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엔
대단한 이유가 없다.
‘방송쟁이’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나중으로 미루는
대책 없음이 그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에 집중하는 불나방 같은
면모가 그랬다.
불나방들이 뭉치면
마을 어귀에 놓인 돌은 ‘신’이 되고,
고기잡이배는 ‘파인다이닝’이 됐으며,
부서져 가는 집도
도깨비방망이로 한 대 친 것처럼
순식간에 궁궐이 됐다.
하지만, 그토록 기세 좋은 우리를
멈춰 세우는 것은 언제나
깨알보다 더 작게 쓰인 숫자들이었다.
시청률.
장면마다 바뀌는 그 숫자는
파도를 닮은 그래프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키곤 했다.
파도가 높이 일면,
어딘가 붕 뜬 기분으로 한 주를 살았고,
푹 꺼지는 구간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짠 물을 들이켜야 했다.
방송 다음날, 막내가 시청률 표를
테이블에 쫙 돌리고 나면,
우리는 돌아가며 자기비판을 했다.
여기서 왜 시청률이 올랐는지,
여기서는 왜 이탈한 것인지.
모두 그럴싸한 답을 찾아내려 애썼지만,
대체로 오답이었다.
대중의 취향이란 종잡을 수 없어서,
모두가 공들여 만든 에피소드를
‘핵노잼’이라는 세 글자로 평가하거나,
대충 채운 그림을 잘라 퍼뜨리며
‘개꿀잼’이라고 칭송했다.
‘핵노잼’과 ‘개꿀잼’.
나도 그 사이에서 열심히 진자운동을 했다.
그러다, 진짜 재미를 잃어버렸다.
피아노 학원에서 영혼 없이
‘하농’을 치면서 동그라미만
개수 맞게 채우던 그때처럼.
어차피 나의 재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직업의 세계라면
완전한 직업인이 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시멘트를 부어 덮어두었던
여린 속살을 벤 것은, SNS 속 단어 하나였다.
팔로워를 늘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후킹’이 중요하다고
핏대 높이는 계정을 보며
오랜만에 나의 지배자였던
‘핵노잼’, ‘개꿀잼’ 요원들을 떠올렸다.
요원들이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좋아요’의 진짜 의미는 내가 만든 것이
‘좋다’기 보다는 ‘일부 공감’한다는 것에
가깝지 않았나.
긴 세월 그들의 애정을 갈구했지만,
클릭 한 번으로 빨갛게 물드는 하트와
따봉의 숫자로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적어도 나의 세계에서는.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좋아요’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오늘 좋았던 것이 내일 싫어지는,
아니, 방금 좋았던 것이 다시 보면 싫어지는
초 단위 세계에서 우리가 좇아야 할 것은
얄팍한 하트가 아니라,
내 속에 심겨 있는
진짜 하트를 뛰게 하는 일을 찾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