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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사회생활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 망설여진다. 아직은 계약기간까지 3개월이 남았고 또 어떤 일들이 터져 나의 심경에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00 분야는 내가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고 실무를 쌓고 싶다고 생각한 분야였다. '철학'을 전공하며 깊게 공부는 못하였지만 정치사회철학이라는 과목을 가장 열정적으로 듣고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00 분야라 하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범분야에서 다 함께 성장을 이룩하는 지속 가능한 협력이다. 나의 자아실현과 일이 맞아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인턴에 도전했다. 지원 시기가 딱 자가격리를 했던 기간이었어서 마음에 드는 모든 기관에 지원서를 쓰지는 못하였지만 3개의 기관에 지원하고 2개의 기관에서 면접을 보았고 1개의 기관에 합격을 했다.
하나는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서울에 가서 본 면접이었고 아쉽게도 좋은 경험으로만 남았다. 사실 합격을 해도 집이며, 돈이며 신경 쓸 게 한 둘이 아니라서 떨어지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지방 사람에게 서울은 욕심이 나면서 동시에 부담이 되는 그런 두려운 공간인 것 같다. 서류 합격한 기관은 집과도 매우 가깝고 익숙한 공간이라 편하게 면접을 보았고 무탈하게 합격을 했다.
처음에는 열정이 넘쳤다. 이전 회사에 비해선 매우 규모가 작은 연구원이었지만, 흥미 분야와 맞아떨어지는 인턴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일을 했다. 외국인 학생들을 관리하는 행정업무부터 시작해서 연구원의 가장 상사인 교수님이 원하시는 용역에 제안서 쓰는 일도 최선을 다했다.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진 말이다.
때는 10월 중이었다. 다른 기관과 협력하여 제출하는 제안서를 열심히 보조 중이었다. 예산으로 협력 기관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교수님은 나에게 예산을 수정하라고 오더를 내렸고 야근을 하며 손보고 신경을 썼다. 여기서부터 교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내려갔다. 항상 확인은 안 하고 어떤 사업인지도 모르고 욕심이 앞을 나섰고 모든 일을 시키기만 했다.
"다른 인턴은 다 공부해서 자기가 알려주던데." "네가 인지하고 숙지해서 나한테 가르쳐줘야지."
처음에는 나의 역량을 알아주고 믿고 맡겨주는 거라 좋게 생각했다. "이걸 네가 따내면 인건비 한 명 정도는 나오니깐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거든" 이런 말도 칭찬이라 생각하고 해당 분야와 적합한 대학원까지 지원하였다.
하지만 내가 배우고 얻는 건 없었다. 계속 알아내서 교수님께 가르쳐줘야 했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열심히 하면 성취감은 느낄 거야라는 희망을 가졌다. 매달렸던 제안서 제출 하루 전에 교수님께서 협력 기관과 예산으로 조율이 안 된다며 결국 진행하고 있던 제안서를 엎었고 우리 연구원 독자적으로 들어가자며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렸다.
한 달 동안 전념해도 모자랄 제안서를 약 3일 만에 (주말도 다 포함해서) 쓰자는 말이 어이가 없었고 나의 야근과 주말 출근은 둘째치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욕심과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약 2주 동안 내가 뭐했지? 흔히 말하는 '현타'가 제대로 터졌다. 애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공항도 같이 못 가줄 정도로 일을 열심히 했던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 이후 나의 열정은 메말라 갔고 배울 점이란 아무것도 없는 교수의 명령, 뒷담 (출장만 같이 가면 다른 직원들 뒷담을 하기 일쑤였고 물론 나에 대한 뒷얘기도 많이 하셨다),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는 요구, 모든 게 진절머리 나기 시작했다.
회식 자리에서 흘러가는 말로 "계약 끝나기 전에 얼른 OO이 더 써먹어야 하는데"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더욱더 순순히 써지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을 했다. 본인이 받고 싶어 하는 극진한 대우(아주 굽신굽신 철푸덕 엎드리기를 바라는)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의가 없다, 고마움을 모른다, 사회생활을 잘 모른다"등 별의별 이야기를 하기 일수였다.
동시에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던 00 분야를 이런 사람이 하고 있구나를 느꼈을 때였다.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완전히 자기 밑이라 생각하고 학생들을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돈만을 위해 굴러갔고 나에겐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자신이 탈 수 있는 연구비를 위해 몰아붙였다.
물론 한 곳에서 이 분야를 경험해 본 것이 다이기에 편협한 사고로 국제개발협력 실무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깔끔하게 내렸다. 이 분야를 더 연구하거나 파지 않아도 되겠다는, 나보단 인내심과 봉사력과 직장생활이 더 맞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현재의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다.
*혹여나 빅데이터가 저의 글을 누군가의 눈에 띄게 할까 봐 00 분야로 명칭을 대신하였습니다.
계약이 끝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면, 명칭을 고칠 계획입니다..(찌질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