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8화
푸르스름한 여명이 강철 같은 빌딩의 유리를 물들이던 새벽.
어둠과 빛의 경계가 흐릿한 그 시간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반석건설 대표이사실의 묵직한 문을 열었다.
그림자는 익숙하게 집무실 안쪽, 거대한 책장으로 향했다. 손가락이 책장 틈새의 눈에 띄지 않는 버튼을 누르자, 기계음 하나 없이 벽이 갈라지며 비밀스러운 공간이 입을 벌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 공간의 벽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몰래 촬영된 수많은 인물들의 사진, 어느 건물의 화장실과 지하실을 집요하게 파고든 건축 설계도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그림자는 잠시 책상 위의 철거 예정 건물, 낡은 기계식 주차장 설계도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차가운 계산만이 번뜩였다. 이내, 회색 환경미화원 작업복을 벗어 던진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단정하고 기품 있는 정장 차림의 여성. 바로 Q의 어머니였다.
대표이사 의자에 앉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전송했다.
[지하 환경미화실. 작업 완료]
혈관 속을 흐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임대리로부터의 답신이 액정을 밝혔다.
[주차장 폐기 확인]
Q의 어머니는 다음 문자를 작성하다가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에 어떤 감정도 스치지 않았다. 생각은 끝났다. 전송 버튼이 눌렸다.
[내일 오후, 최종 컨펌 진행]
불 꺼진 사무실, 자신의 자리에서 문자를 확인한 임대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저장해뒀던 파일을 열었다.
Q의 어머니와 인맥들을 통해 치밀하게 수집된 기밀 정보와 사내 재무, 인사팀 서버를 해킹해 확보한
자료들까지 부문장의 모든 것을 끝장낼 기록들이었다.
화면의 빛이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거대한 폭탄을 맞은 듯 초토화됐다. 오차장과 장부장이 새벽녘 주차장 붕괴 사고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부문장실은 진공상태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부문장은 굳은 얼굴로 창밖을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사소한 사고일 뿐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바로 그 때였다.
'띵.' 하는 알림과 함께 회사 익명 게시판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윤사원, 부문장 특혜로 부정 입사 의혹]
그 글은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수군거림이 전염병처럼 사무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무실 출입구 쪽에서 여러 명의 단단한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음은 망설임 없이, 정확히 부문장실을 향해 다가왔다.
'똑똑-'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이 열렸다.
감정이라곤 실려 있지 않은 눈을 한 사내들이 굳어있는 부문장을 향해 걸어왔다.
"부문장님."
건조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침묵을 찢었다.
"협력업체 아이디어 및 핵심 기술 탈취, 납품 단가 후려치기를 통한 배임, 상습적 뇌물 수수 및 불법 입찰 담합,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직권 남용을 통한 인사 비리 혐의로 고소·고발이 접수됐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부문장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뇌가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듯, 그의 동공는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사내들이 그의 양팔을 붙잡고 어딘가로 끌고 나갔다.
그의 방에 있던 모든 PC와 서류 캐비닛에 압수수색을 알리는 노란 테이프가 붙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문장이 연행되던 그 시각, 뉴스 속보가 터져 나왔다. 유력 정당의 중진 국회의원이자 그의 장인이었던 자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특정 건설사를 위한 법안 통과 로비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부문장의 마지막 방패이자 가장 강력한 후광, 그를 괴물로 만든 뒷배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차피 정직한 시스템도, 공정한 경쟁도, 성장을 위한 열정도 없었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그곳, 모두가 선망하던 대기업의 민낯이 드러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개장과 동시에 주가는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져 있던 비리들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갑질이나 비리를 넘어선, 흉악한 범죄의 기록들이었다.
[단독] 하청업체 대표에게 '노예 계약' 강요... 거부하자 공장 방화 사주 정황
[속보] "죽고 싶지 않으면 무릎 꿇어"... 부문장, 회의실 상습 폭행 음성 파일 공개
직원 사찰, 개인 휴대폰 해킹까지... 인권위, "현대판 노예농장" 경악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그들이 어떻게 협력업체의 기술을 훔쳐 회사를 파산시킨 뒤 헐값에 인수했는지, 어떻게 직원들을 사찰하고 노조 설립을 폭력으로 막았는지, 심지어 산업재해를 고의로 은폐하고 피해자 가족을 협박했는지에 대한 증언들을 쏟아냈다.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가 전파를 탔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회사는 '악마의 기업', '살인 기업'으로 불리며 전 국민의 지탄을 받기 시작했다.
사옥 앞은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빛나던 회사 로고에는 붉은 페인트와 날달걀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임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욕설과 비난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들의 초라한 모습은 한때 자신들이 저질렀던 오만하고 잔인한 행태와 겹쳐지며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견고해 보였던 성은, 사실 모래 위에 세워진 신기루에 불과했다.
반석건설 사옥에 도착한 커다란 체격의 임대리가 곧바로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책상 위에 놓인 Q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Q의 어머니에게 비서로부터 방문객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대표이사실에 들어선 임대리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아니... 어머님!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액자 속 사진을 보고 있던 Q의 어머니가 천천히 시선을 임대리에게로 향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