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9화
테이블 위, 끓어 넘치던 복수의 찻잔은 이제 차갑게 식어있다.
임대리, 그는 흐릿한 안경 너머로 맞은편의 여인을 본다.
한때는 그저 ‘Q의 어머니’였고, 한때는 ‘복수의 화신’이었던 여자.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임대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지난밤의 전쟁을 증명하듯 낮고, 또렷했다.
"긴 밤이... 끝났습니다, 어머님."
Q의 어머니는 대답 대신 희미한 질문을 던진다.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우리가 이긴 걸까요, 임대리님? 내 딸의 이름 앞에 붙었던 오명은 떼어냈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긴 게 맞는 걸까요?"
패배를 모르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무너뜨렸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 질문이었다.
임대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Q의 어머니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에 서린 공허는, 복수가 결코 승리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법의 심판이... 뒤따를 겁니다. 어머님께서 하신 일, 세상은 죄라고 부를 테니까요."
그 말에, Q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짓는다. 너무도 씁쓸해서 차라리 통곡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알아요. 세상의 법으로는 마땅히 그래야지. 그런데 임대리님, 내가 그 네모난 방에 갇혀서 죄의 값을 치른다고... 내 딸이 돌아오던가요? 이 지독한 세상이, 단 1밀리미터라도 변하던가요?"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낡은 다이어리를 임대리 쪽으로 민다.
그 안에는, 짓밟히기 전 Q가 꿈꾸었던 반짝이는 세상이, 더는 약한 자가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감옥은 법에 대한 빚을 갚는 곳이죠. 내 딸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곳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 남은 생을 통째로 걸어 속죄하려고 합니다. 감옥이 아닌, 바로 이 세상에서...
내 딸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대신 이뤄주는 방식으로."
임대리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린다. 저 연약해 보이는 여인의 어디에서 저런 강철 같은 결심이 나오는 것일까.
"복수의 칼은... 이제 버릴 겁니다. 그 칼은 너무 많은 피를 봤어요. 대신, 내 딸 Q의 이름으로 재단을 하나
만들 생각이에요."
그녀는 임대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 시선은 부탁이 아니라, 함께 싸우자는 동지의 제안이었다.
"‘불의에 맞서는 어린 등불을 위한 재단’. 나이가 어리다고, 힘이 약하다고, 가진 게 없다고...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일... 임대리님. 그 재단의 첫 번째 사람이 되어주시겠어요?"
임대리는 말을 잃었다.
그는 늘 생각했다.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의 이름 없는 부품일 뿐이라고.
분노하고 좌절하지만, 결국 월급날을 기다리며 침묵해야 하는 수많은 직장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지만 Q의 죽음과 어머니의 복수는 그의 심장에 불을 붙였다. 꺼지지 않을 불을.
그는 천천히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뿌옇던 렌즈 너머, 그의 맨눈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눈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늘 그렇게 생각하며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절박한 진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세상을 뒤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임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Q의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었고, 꺼져버린 꿈이었으며, 이제 다시 타오를 희망의 불씨였다.
"더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겠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더는 억울한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기꺼이, 그들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Q의 어머니는 말없이 임대리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피로 얼룩졌던 복수의 연대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동지의 굳건한 약속이었다.
세상에서 Q와 그녀의 어머니의 존재는 완벽히 지워졌다.
대신,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는 익명의 ‘그림자 수호자’가 태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평생에 걸쳐 도덕적 십자가로 지고 가기로 했다.
딸의 죽음이 남긴 숙제를 끌어안고,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을 비추는 그림자가 되기로.
임대리는 ‘억울한 직장인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어눌한 표정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이제 그 어떤 불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념으로 빛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진짜 괴담은 한여름 밤의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고.
귀신은 단지 존재 자체로 공포를 주지만, 인간의 악의는 계획적이고 집요하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가장 잔인한 상처를 남긴다고.
약자의 고통을 조롱하며 희열을 느끼는 자,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자...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평범한 얼굴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그 시스템에 짓밟힌 약자의 차가운 절규,
그리고 그 끝에서 시작된 이름 없는 복수.
거대한 유령은 이제 막 소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유령들이 오피스 빌딩을, 우리들의 책상을, 우리들의 밤을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유령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 용감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괴담(怪談)은 말 그대로 '이상한 이야기' 또는 '기이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흔히 초자연적이거나 섬뜩하고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지칭하며,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설화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담은 단순히 공포를 유발하는 것을 넘어, 종종 사회 현상이나 인간의 불안 심리,
금기시되는 것들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특정 행동이나 장소에 대한 경고를 담거나 탐욕, 거짓말, 잔인함 등
부정적인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응징을 통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기도 합니다.
이처럼 괴담은 인간의 보편적인 두려움,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심리적인 측면을 반영하며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교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