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 추락

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7화

by 공감디렉터J


아무리 큰 회사라 한들 서울 한복판 사무실 근무는 녹록지 않았다.

출퇴근 지옥철은 물론, 자차 운행도 쉽지 않은 법. 턱없이 부족한 건물 주차장 때문에 매 분기마다 피 튀기는 추첨이 벌어졌다.

오 차장은 회사 생활 15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주차 자리 하나에 안절부절못하는 스스로가 못마땅했다.


'날도 더워지는데, 이번엔 꼭 주차 자리 하나 선정되면 좋으련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회사 게시판에 접속하니 과연 신규 주차 선정 결과가 올라와 있었다.

오 차장의 이름은 이번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원, 대리 때는 선임들 때문에 주차장 이용 못 하고, 이제 선임이 되니 젊은 사원들 복지 챙겨준다는 방침 덕분에 또 밀려나는구나.'


부문장 성화에 몇 주 동안 야근이 이어졌고, 매번 택시 타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터라 주차 자리는 간절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도무지 낙이 없다고 여긴 순간, 총무팀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추가 주차 선정 안내드립니다]


메일에는 회사가 맞은편 낡은 빌딩 주차장에 임직원들을 위한 추가 주차 공간을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작정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네.”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다음 날 아침, 오 차장은 메일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맞은편 빌딩이라고는 했지만,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제법 먼 거리였다.

투덜거리며 도착한 곳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건물 뒤편. 녹슨 철문 안쪽으로 흉측한 아가리처럼 벌어진 기계식 주차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 오셨어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백발이 성성한 주차 관리인이 관리실의 작은 창문을 통해 몸을 내밀어 오 차장의 차를 가로막았다. 낡은 건물만큼이나 그의 얼굴에도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건너편 회사에서 왔는데요. 이번 달부터 여기 주차하라고...” 오 차장은 애써 짜증을 누르며 설명했다.


관리인은 낡은 슬리퍼를 끌며 관리실에서 나왔다. 그의 시선은 오 차장의 차를 훑더니, 이내 굳은 표정으로 기계식 주차장 호출 버튼을 눌렀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차 칸이 내려왔다.


“여기는 몇 시까지 합니까? 밤에도 차 뺄 수 있어요?” 오 차장은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


관리인은 천천히 오 차장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런 거 없어요. 여기 계속 계셔도 됩니다.”


24시간 주차 가능하다는 말에 오 차장의 짜증은 희미하게나마 누그러졌다.

낡고 불편해 보였지만, 공짜라는 사실이 모든 불만을 잠재웠다.


그날 밤, 퇴근길 하늘은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예고도 없이 쏟아진 장대비는 삽시간에 도시를 잿빛으로 물들였다. 저녁 식사 겸 소주 몇 잔을 기울인 오 차장은 장 부장과 함께 젖은 아스팔트 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향했다.


“무슨 주차장이 이렇게 멀어?” 장 부장은 술기운에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공짜로 차 댈 데가 있는 게 어디입니까?”

오 차장의 말에 장 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근데 몇 명이나 추가해 줬대? 주차 선정 안 됐다고 게시판에 난리가 났던데...”


24시간 운영한다는 주차장에는 어쩐 일인지 관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굳게 닫힌 철문만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하는 수 없이 오 차장이 직접 녹슨 호출 버튼을 눌렀다.

웅웅 거리는 기계음만이 텅 빈 주차장을 울렸다.


“대리기사 오면 호출하지... 자네도 술 많이 마셨잖아?”

평소와 달리 장 부장이 오 차장을 걱정하는 듯했다.


“일단 비도 많이 오니까 차 안에서 에어컨 켜놓고 기다리시죠.”

오 차장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잠시 후, 차량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희미한 파란 불이 들어왔지만, 낡은 주차장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안감을 느낀 오 차장은 급한 마음에 입구 옆 좁은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차는 오 차장의 것이었다.

“제 차 맞습니다! 비 맞지 마시고 이리로 오세요, 부장님!”


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자 습하고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오 차장은 주차 타워 벽에 희미하게 적혀 있는 관리인의 낡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잠에 잔뜩 취한 듯한 관리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오 차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건물에 주차한 사람인데요, 지금 문이 안 올라가서 전화드렸어요.”


“... 지금... 문... 수... 중인데...”


낡은 주차 타워 안, 빗소리와 함께 전화 음성은 심하게 끊겼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장 부장의 시선이 갑자기 굳어지며 정면을 향했다.


“오 차장, 차 라이트 좀 켜봐.”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섬뜩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라이트요? 왜... 왜요?”


오 차장이 떨리는 손으로 라이트를 켰다. 굳게 닫힌 주차장 철문에 희미하게 붙어 있는 낡은 안내문의 내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안내]

본 주차 설비는 노후화로 인해 현재 수리 중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관리인과 통화하던 오 차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안내문의 흐릿한 글씨를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사장님, 여기... 무슨 수리 중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관리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낮에 메인 리프트의 유압 시스템이 주차하던 차량 무게를 못 견디고 파손됐는데 하필 비상 제동 장치까지 먹통이 된 상태라...” 마치 쓰인 글을 읽는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오 차장은 다급하게 관리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지금 제 차는 멀쩡히 잘 올라와 있는데, 문만 열어주시면 나갈 수 있거든요. 빨리 오셔서 문 좀 올려주세요.”


“그러니까 문제가 뭐냐면... 그 끊어진 체인 말고도 다른 부분도 심하게 부식돼서, 지금 하중을 제대로 못 버텨요. 특히... 그렇게 두 명이나 차에 올라타 있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고”

관리인의 목소리가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금 차에 타고 있는 걸... 어떻게 아세요?”

오 차장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장 부장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 순간, 낡은 주차 타워 안에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끼이이이익— 콰앙!!!


이윽고 낡은 설비들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녹슨 쇠사슬이 끊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오 차장과 장 부장이 타고 있던 차체가 기묘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장 부장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뚜-우-욱!


마지막으로 거대한 쇠사슬이 끊어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을 태운 검은색 세단은 순식간에 주차 타워 아래로 처참하게 추락했다. 굉음과 함께 매캐한 먼지와 기름 냄새가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침묵과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다.


“어휴, 어쩌다 그런 사고가...”


“거기가 곧 재건축한다던 폐건물이라던데?”


“맞아. 이번 달에 건물 허물고 공사 시작한다고 들었어. 이미 지난달에 사람 다 빠지고 폐쇄됐다고 하던데...”


“그 시간에 둘이 왜 거기 있었대? 그것도 술을 그렇게 마시고...”


“그러게. 오차 장하고 장 부장, 늘 붙어 다니면서 이상한 얘기만 하더니... 설마 둘이...”


직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빗물에 젖은 듯 축축한 소문만이 사무실 공기 속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낡은 기계식 주차장의 핏빛 잔해처럼,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속에 영원히 묻혀버렸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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