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 그 날, 그 자리

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6화

by 공감디렉터J


2년 전, 그날의 저녁은 Q의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정점이어야 했다.


부문장의 갑작스러운 호출. Q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팀 내에서조차 몽상가적이라며 반신반의했던 자신의 아이디어가, 마침내 고객사 최고위층의 눈에 들었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Q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서팀장마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연 Q입니다. 그의 설명이 가장 효과적일 겁니다"라며 이례적인 추천사를 늘어놓았다.


Q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크로노스케이프(Chronoscape)’라 불리는 감각 구독 서비스였다.

단순히 정수기나 안마의자처럼 정해진 기능을 제공하는 가전제품 구독을 넘어, 사용자의 생체 신호와 일상 패턴을 AI가 학습하여 ‘과거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감각을 재현해 주는 서비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사용자가 가장 평온했던 어느 여름날 저녁의 냄새(라일락 향과 옅은 흙냄새), 소리(귀뚜라미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풍경 소리), 온도와 습도까지 미세하게 구현해 내는 식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크로노스케이프'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고객님의 가장 빛나는 기억을 판매합니다. 저희 기술은 고객님의 뇌파와 심박 데이터를 분석하여, 잊고 있던 행복의 조각들을 감각적 경험으로 되살려냅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을 넘어,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향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입니다."


고객사 대표 앞에서 선보일 이 대사를 수십 번이나 되뇌며 Q는 약속 장소인 최고급 한정식집의 프라이빗 룸 앞에 섰다. 값비싼 옷의 매무새를 다듬고,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려 길게 심호흡을 했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Q의 예상은 송두리째 빗나가 버렸다.


예상했던 고객사 임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화려하지만 조명이 극도로 어두워 음침하기까지 한 방 안, 그 거대한 테이블의 상석에는 부문장 혼자 앉아 있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그의 앞에는 값비싼 술병이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부문장님. 고객사에서는... 아직 도착 전이신가 보네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부문장은 Q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술에 절은 목소리로 천천히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그가 손으로 툭툭 친 곳은 자신의 바로 옆자리였다.


"어서 와. 여기 앉아. 클라이언트 얘긴 나중에 하고. 자네랑 나, 나눌 얘기가 아주 많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대리에 불과한 Q에게 거절할 힘은 없었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는 순간, 숨 막히는 위스키 향과 부문장의 체취가 훅 끼쳐왔다.


"아이디어... 아주 인상적이더군. 서팀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데, 이유를 알겠어."


부문장은 묻지도 않고 Q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어두운 조명 아래 희미하던 그의 얼굴이, 옆자리에 앉자 비로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비정상적으로 붉게 상기된 뺨, 초점을 잃고 흐리멍덩하게 풀어진 동공, 번들거리는 기름진 입술. Q가 알던 카리스마 넘치던 부문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크로노스케이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었다. 고객사의 참석 여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부문장의 혀는 Q의 아이디어가 아닌, Q의 사생활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무얼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애인은 있는지...

끈적하고 노골적인 질문들이 어두운 방의 공기를 오염시켰다.

Q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그때였다. 부문장이 크게 휘청이며 몸을 기울이는가 싶더니, 그의 육중한 손이 Q의 허벅지를 덥석 짚었다.


순간, Q의 머릿속 모든 회로가 끊어졌다. 공포와 수치심이 온몸을 관통했다. Q는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듯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물러섰다. 뒤로 감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단단하게 만들려 애썼다.


"더 이상 특별한 용무가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부문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풀렸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 뭐? 지금 뭐 하는 거지? 상사랑 대화하다 말고 가겠다고?"

핏발이 선 흰자위가 섬뜩하게 드러났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내일, 정신이 맑으실 때 다시 나누시죠.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도망치듯 방을 나서는 Q의 등 뒤로, 부문장의 저주 섞인 고함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건방진 새끼! 지금 네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는 건지 몰라?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문을 닫고 복도를 뛰쳐나오자 거짓말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Q는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달렸다.

흠뻑 젖은 몸보다 심장이 더 차갑게 식어갔다.


그때, 퍼즐 조각들이 제멋대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자신을 치켜세우던 서팀장의 과장된 칭찬.


분명 함께 참석하기로 해놓고 당일 아침 '급한 집안일'을 핑계로 빠져버린 한차장.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는 Q를 보며 "잘해봐, Q!"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던 정대리의 희죽거리던 얼굴.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 식사가 어떤 자리라는 것을.

Q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미래가 거대한 거미줄에 걸려든 먹잇감에 불과했다는 끔찍한 사실만이 빗방울과 함께 Q의 온몸을 반복적으로 때렸다.


그날 이후, Q의 절망은 예고된 시나리오처럼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몇 주 뒤, '크로노스케이프' 아이디어는 정대리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둔갑하여 정식으로 발족했다.

회의실에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문장으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정대리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부문장을 보며 Q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


사내에는 Q에 대한 악의적인 유언비어가 돌았다.

'부문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가 거절당했다더라', '실력도 없으면서 몸으로 승진하려 했다더라'.

동료들은 Q를 벌레 보듯 피하거나, 등 뒤에서 경멸의 속삭임을 나눴다.


그리고 해마다 반복되는 진급 누락.


Q는 이 모든 것이 그날 밤 자신의 '건방진' 거절 때문이라고,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다.

만회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Q의 사무실에서의 입지는 계속해서 좁아졌다.

그날의 어두운 밀실은 Q의 사무실 전체로, Q의 인생 전체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Q의 절망은 더욱 짙고 깊어지기만 했다.

이 지독한 오피스에서, Q는 이미 산 채로 매장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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