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시의 속삭임
도시는 살아 숨 쉰다
혈관처럼 뻗은 도로 위로 욕망을 실은 불빛들이 흐르고, 거대한 빌딩 숲은 밤마다 저마다의 비밀을 품고 잠이 든다. 2,500만 명의 숨소리가 뒤섞인 서울. 이 거대한 유기체는 낮에는 성공과 번영의 이야기를 외치지만, 해가 지면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신축 아파트 13층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비명. 막차 시간이 지난 지하철역에 나타나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면 죽은 사람과 통화할 수 있다는 기이한 소문. 사람들은 오싹한 호기심으로 괴담을 소비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며 애써 외면한다.
우리는 그것을 '도시괴담'이라 부른다.
하지만 만약, 그 이야기들이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면? 만약 그것이 잊히길 강요당한 진실의 마지막 비명이라면?
모든 것의 시작은 '성북동 여대생 실종 사건'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
2024년 9월 14일 밤 11시 32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윤서아가 성북구 자취방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룸메이트가 신고했을 때, 방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닫혀 있었다. CCTV에는 그녀가 건물을 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
경찰은 단순 가출로 잠정 결론 내렸다.
"요즘 젊은 애들,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훌쩍 떠나잖아요." 담당 형사의 말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기묘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윤서아의 SNS에는 실종 전날 밤,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올라와 있었다.
'13 47 89 02 61'.
댓글로 친구들이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 게시물은 실종 당일 새벽 3시 13분에 삭제되었다. 하지만 삭제한 것은 윤서아의 휴대폰이 아니었다. IP 주소는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더욱 기이했다. 실종 전날 밤, 최소 다섯 명이 성북동 일대에서 '검은 옷의 남자'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묘사하는 남자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다.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였어요. 근데 얼굴이... 얼굴이 없었어요."
"그 사람 그림자가 이상했어요. 가로등 아래 서 있는데 그림자가 반대 방향으로 생겼어요."
"웃고 있었어요. 아니, 웃는 것 같았어요. 근데 소리가 안 났어요."
경찰은 이 진술들을 '집단 히스테리'로 치부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논리적이지 않다고.
그리고 사건 현장 인근에는 수십 년째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우는 여자의 연못'.
성북동 뒷산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1980년대에 젊은 여성이 익사한 이후 밤마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였다. 주민들은 그곳을 피했고,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공식 수사 시스템은 이 파편들을 그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노이즈'로 치부하고 서둘러 서류철을 덮었다. 사건은 미제로 분류되었고, 윤서아는 '가출인'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그때, 시스템 밖의 다섯 전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의학, 범죄심리학, 디지털 포렌식, 인간 심리, 그리고 구전 역사
"이건 가출이 아닙니다."
마포구 연남동, 허름한 건물 3층 사무실. 강태우는 윤서아 사건 파일을 펼쳐놓고 있었다.
44세, 경찰청 프로파일러로 20년을 일하다 2022년 사표를 낸 그는 이제 민간 수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괴물을 쫓다 스스로 괴물이 될까 두려워 배지를 반납했던 남자. 하지만 그는 여전히 괴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미제 사건 파일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범인의 숨결을. 그리고 이 사건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직감을.
그는 흩어진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 몸은 가장 정직한 증거를 남깁니다."
35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출신으로 현재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서진.
그녀는 경찰이 확보한 윤서아 방의 미세 증거물을 재분석했다.
침대 시트에서 발견된 미세한 섬유. 경찰은 그냥 지나쳤지만, 한서진은 그것이 일반적인 의류 섬유가 아님을 알아챘다. 특수 방화복에 사용되는 아라미드 섬유. 그리고 그 섬유에는 미량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윤서아의 것이 아닌.
"피해자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읽어내야 해요."
"디지털 세상에 완전한 삭제는 없어요. 모든 흔적은 어딘가에 남아 있죠."
27세, 천재 해커로 불리던 그녀는 사이버 범죄의 어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빛의 편에 섰다.
그녀는 윤서아의 삭제된 SNS 게시물을 복원했다.
'13 47 89 02 61'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좌표였다. 정확히는 성북동 뒷산, '우는 여자의 연못'을 가리키는 GPS 좌표.
"그녀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남기려 했어요. 하지만 그 '누군가'가 먼저 발견하고 지워버린 거예요."
"모든 귀신에게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과학이든, 원한이든."
34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트라우마 전문가. 5년 전 여동생을 온라인 가해로 잃은 후, 피해자 심리 치료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심령 현상을 심리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검은 옷의 남자'를 목격했다는 다섯 명을 다시 인터뷰했다.
그들의 증언은 비현실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을 경험했다. 전형적인 해리 증상. 극심한 트라우마가 남긴 기억의 파편.
"이들은 환각을 본 게 아닙니다. 뭔가 끔찍한 것을 목격했고, 뇌가 그것을 처리하지 못해 왜곡된 기억으로 저장한 거예요."
"전설은 종종 진실이 닳고 닳아 만들어진 무늬입니다."
15년간 전국을 발로 누비며 잊혀진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 박유진.
37세인 그녀는, 20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도시전설 연구가가 되었다.
그녀는 '우는 여자의 연못' 전설을 추적했다.
1987년 10월, 그곳에서 한 여성이 익사했다. 이름은 정미선(당시 24세), 미술대학 학생.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그녀의 가족은 타살을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 부족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리고 37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좌표를 남기고 또 다른 여대생이 사라졌다.
"과거에 묻힌 범죄가 현재와 연결되어 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다섯 전문가가 비공식적으로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
경찰도, 검찰도 해결하지 못한, 혹은 외면해버린 미스터리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미스터리 수사대'라 불렀다.
이것은 그들의 첫 번째 기록이자, 앞으로 도시 곳곳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추적해나갈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들은 이제 막 도시가 내뱉는 고통스러운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두려움 너머에 가려진 진실을.
괴담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우는 '사람'을.
그리고 시스템이 외면한 정의를 찾기 위해.
강태우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찾는 건 귀신이 아닙니다. 괴물도 아니고요. 우리가 찾는 건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범인이죠."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수백만 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그 빛 아래, 얼마나 많은 어둠이 숨어 있을까.
도시는 여전히 속삭이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괴담은 소문이 아니라, 외면당한 누군가의 진실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