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파트 13층의 비명
모든 것은 입주민 전용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짧은 글 하나로 시작되었다.
[소음] 103동 13층 사시는 분 계신가요?
작성자: 스카이뷰
새벽마다 이상한 소리 안 들리시나요? 꼭 여자 비명 같은데... 관리사무소에서는 배관 문제라는데 아무리 들어도 사람 소리 같아서요. 저만 들리는 건가요?
서울 강동구 '라페스타 힐즈' 아파트. 강남 접근성과 한강 조망권을 내세워 분양가 신기록을 경신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벽에 첫 번째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댓글은 폭발적으로 달렸다.
'저도 들었어요. 3시 조금 넘어서...' '12층인데 저희 집까지 울려요.' '13층에 귀신이라도 붙은 거 아니에요?'
공포는 삽시간에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 소음의 진원지로 지목된 103동 13층 복도에는 소금 단지와 십자가가 나타났다. 관리사무소는 '설비 오작동'이라 했고, 경찰은 '집단 히스테리'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새벽 3시 13분, 칼날 같은 비명이 침묵을 갈랐다.
급기야 103동 1304호가 시세의 반값에 급매로 나왔다. 성공의 공간이 흉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Chapter 1: 의뢰
"제발... 이 괴담 좀 끝내주십시오. 이건 우리 아파트 가치의 문제입니다."
입주자대표 박철민의 목소리는 떨렸다. 벌써 세 가구가 이사를 나갔고, 급매물이 두 건 더 나왔다.
마포구 연남동, '미스터리 수사대' 사무실. 전직 프로파일러 강태우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의뢰 내용은 '아파트 비명 소리'의 원인 규명. 경찰은 집단 히스테리로 종결했지만, 소음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정확하게 반복되고 있어요. 새벽 3시 13분, 103동 13층."
그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심리학자 오민재와 법의학자 한서진.
"오 교수님은 주민 심리 분석을, 한 박사님은 물리적 원인을 찾아주세요. 귀신이든 배관이든, '진짜' 원인을 찾읍시다."
오민재는 주민들을 만났다. 비명을 들었다는 37명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저마다 다른 버전의 '비명'을 기억했다.
어떤 이는 "날카로운 여자 비명", 다른 이는 "쇠 긁히는 소리", 또 다른 이는 "짐승 울음소리"라 했다.
"공포는 주관적 경험을 통해 증폭됩니다. 각자의 내면 불안이 '비명'에 투영되는 거죠."
오민재가 팀원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어요. 대부분이 소리를 들은 후 단순한 공포가 아닌,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요."
Chapter 2: 침묵하는 증인
한서진은 103동 13층 복도를 샅샅이 조사했다. 열화상 카메라와 비파괴 검사 장비를 들고.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건물이든, 사람이든."
벽을 두드리던 그녀의 손이 비상계단 입구 왼쪽 벽에서 멈췄다. 열화상 카메라에 미세한 온도 편차가 나타났다. 비파괴 검사 결과, 균일해야 할 콘크리트 밀도가 특정 지점에서 기이하게 요동쳤다.
"찾았어요. 내부에 이상한 게 있어요."
다음 날 새벽. 한서진은 소형 드릴로 벽을 뚫었다. 딱딱한 콘크리트를 지나 무언가 단단하면서도 버석거리는 것이 걸렸다. 내시경 카메라를 넣자, 회색 먼지 속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뼈였다.
진실은 끔찍했다. 2년 전 가을, 공사 중이던 현장에서 베트남 출신 노동자 응우옌 반 투(29세)가 실종되었다. 새벽 3시 13분, 그는 103동 13층 내력벽 공사 중 추락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시공사는 구조 대신 은폐를 선택했다. 공사 기간을 맞춰야 했고, 안전사고가 알려지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피해자는 불법체류자였다.
"묻어."
그렇게 응우옌은 '고향으로 돌아간 불법체류자'로 처리되었다. 그의 시신은 벽 안에 콘크리트와 함께 묻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일은 하노이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새벽 3시 13분, 연결되지 않은 채로.
Chapter 3: 비명의 정체
"그럼 비명은 정말 원혼이었을까요?" 이지수가 물었다.
오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원혼이 아니라 '기억'입니다. 새벽 3시 13분, 보일러 예약 가동으로 배관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벽체와 마찰을 일으킵니다. 특히 유골이 묻힌 부분은 콘크리트 밀도가 불규칙해서 특유의 공명음이 발생하죠."
한서진이 덧붙였다.
"물리적으로는 단순한 배관 소음이에요. 하지만 주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오민재가 말을 이었다.
"이 건물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건설 과정의 은폐된 사고들을. 그들은 뉴스로 봤고, 소문으로 들었고, 어쩌면 직접 목격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외면했죠.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성공이 무너질 테니까."
오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억압된 죄책감이 '배관 소리'를 만나 '비명'이라는 집단적 환청으로 발현된 겁니다. 그들의 양심이 만들어낸 소리예요."
결국 비명은 유령의 소리가 아니었다. 진실을 외면한 우리 모두의 양심이 내는 소리였다.
에필로그: 추모
유골은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갔다. 시공사 대표와 현장 책임자는 구속되었다.
더 이상 13층에서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추모비를 세웠다. 투박한 현무암에 이렇게 새겼다.
'응우옌 반 투(1994-2023)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태우는 사건 파일을 닫으며 마지막 페이지에 한 줄을 적었다.
우리가 외면한 비명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목소리였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수백만 개의 불빛 아래, 얼마나 많은 어둠이 숨어 있을까.
강태우는 다음 사건 파일을 펼쳤다. 미스터리는 끝나지 않는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