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라진 유튜버
Chapter 1: 마지막 방송
"구독자 여러분! '다크 익스플로러' 카인입니다! 오늘 제가 찾아온 곳은... 대한민국 3대 흉가로 꼽히는 파주 명성 정신병원입니다!"
2024년 11월 7일 밤 11시. 1인 미디어 채널 '다크 익스플로러'의 라이브 방송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12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카인(본명 정하윤)은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깨진 병원 입구를 비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그의 손전등 불빛만이 어지럽게 흩어진 약병과 녹슨 휠체어를 유령처럼 훑고 지나갔다.
실시간 채팅창은 '대박', '레전드 각', '조심해요!' 같은 메시지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동시 접속자 수는 2만 3천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그냥 '귀신을 봤다' 정도가 아니라... '진짜'가 나온다고 합니다. 단순한 소문이 아닌, 실체가 있는 공포! 오늘 제가 그 실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카인은 쇼맨십의 대가였다.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먼지 쌓인 복도를 걸으며, 바람에 삐걱거리는 문소리 하나에도 기겁하는 연기를 펼쳤다. 구독자들은 그의 연기에 열광했다. 슈퍼챗이 쏟아졌다.
'만 원 후원! 3층까지 가보세요!' '5만 원입니다. 약품 창고 확인 부탁드려요!'
하지만 방송 시작 30분 후, 그의 연기는 더 이상 연기가 아니게 되었다.
"잠깐만... 쉿.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카인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채팅창이 순간 조용해졌다. 카메라 너머로 희미하게, 무언가를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끼이익. 카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복도 끝, 약품 창고로 쓰였던 굳게 닫힌 철문. 소리는 그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이건 진짭니다."
그가 철문에 손을 대는 순간, 긁히는 소리가 뚝 그쳤다. 대신 철문 안쪽에서 '쿵' 하는, 무언가 넘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카인은 숨을 멈췄다. 그리고 그의 손전등 불빛이 철문 한가운데에 그려진 기이한 낙서를 비췄다.
눈(目) 모양 같기도 하고, 뒤엉킨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한 기묘한 상징. 스프레이로 그려진 그것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철문이 안쪽에서 거칠게 열리며 화면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악! 뭐, 뭐야!" 카인의 비명과 함께, '지지직' 하는 끔찍한 노이즈가 방송을 뒤덮었다. 그리고 화면은 암전.
12만 명의 구독자들은 그저 검은 화면과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라는 차가운 문구만을 바라봐야 했다.
다음 날, 정하윤은 실종되었다.
Chapter 2: 디지털의 잔상
"단순한 공포 체험 방송 중 일어난 사고일까요? 아니면 조회수를 노린 자작극?"
강태우가 팀원들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정하윤의 여동생 정하은이었다.
그녀는 오빠가 결코 구독자를 속일 사람이 아니며, 그가 마지막으로 비춘 '기묘한 상징'이 단서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경찰은 자작극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건은 화이트해커 이지수와 프로파일러 강태우에게 배정되었다. 디지털 흔적과 인간의 심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사건의 본질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자작극이라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질 순 없어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죠."
이지수는 곧바로 '다크 익스플로러'의 서버에 접속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모니터에는 수백 줄의 코드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방송은 23시 32분 14초에 끊겼지만, 스마트폰은 그 후로도 약 3초간 더 작동했어요. 그 짧은 순간에 기록된 손상된 데이터 패킷이 있습니다. 바로 복원해 볼게요."
몇 분 후,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노이즈와 함께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찍지 마... 제발..."
분명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카인의 비명 뒤에 녹음된, 공포에 질린 애원.
팀원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건 귀신 소동이 아니에요."
강태우가 낮게 말했다.
"명백한 범죄 현장입니다."
Chapter 3: 사냥꾼의 함정
"그렇다면 범인들은 왜 유튜버를 납치했을까?"
강태우는 정하윤의 과거 영상과 SNS를 샅샅이 훑었다. 그는 단순한 공포 유튜버가 아니었다.
'실제 사건'에 집착했고, 미제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채널을 키워왔다.
'익산 여고생 실종 사건 현장 탐방', '부산 연쇄 방화범의 흔적을 찾아서', '페리호 참사 현장, 7년 후의 진실'. 그의 콘텐츠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진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정하윤은 사냥꾼이었어요. 더 자극적이고, 더 '진짜'인 사냥감을 찾아 헤맸죠. 범인들은 아마 그의 이런 성향을 역으로 이용했을 겁니다."
강태우의 눈이 번뜩였다.
"이건 우연히 범죄 현장을 목격한 게 아니야. 치밀하게 설계된 함정일까? '진짜 귀신이 있다'는 제보로 정하윤을 폐병원으로 유인한 뒤, 그를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려 했다면?"
그 사이, 이지수는 카인이 마지막으로 비춘 '기묘한 상징'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것은 특정 코드를 입력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 커뮤니티 '에코 챔버(Echo Chamber)'의 로고였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그곳은, 현실의 범죄를 '공포 영화'처럼 기획하고 촬영하여 유료로 스트리밍하는 디지털 범죄 조직의 소굴이었다. 그들은 피해자를 '배우'로, 범죄 현장을 '세트'로 불렀다.
"찾았어요."
이지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어둠 속에서 공포에 질린 정하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정하윤의 실종을 '에코 챔버'의 스페셜 라이브 이벤트로 예고했습니다. 제목은... '다크 익스플로러, 진짜 어둠을 만나다'."
Chapter 4: 가면 뒤의 얼굴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에코 챔버' 조직은 파주 명성 정신병원을 범죄 현장으로 이용해왔고, 정하윤은 그들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그들은 그의 공포와 절망마저 자신들의 잔혹한 쇼를 위한 '콘텐츠'로 소비하려 했다.
이지수는 경찰 사이버 수사대와 공조하여 '에코 챔버'의 서버 IP를 역추적했다. 암호화된 서버는 싱가포르, 러시아, 브라질을 경유하며 위치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녀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버의 최종 위치는 경기도 고양시 외곽의 한 평범한 물류창고였다.
경찰 특공대와 함께 현장을 덮쳤을 때, 창고 내부는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조명, 카메라, 마이크.
그리고 감금된 채 공포에 떨고 있는 정하윤과 또 다른 피해자 세 명이 발견되었다.
그 모든 것을 통제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에코 챔버'의 운영자는, 스물여섯 살의 평범한 IT 기업 직원 김도현이었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걸 원해요. 난 그냥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줬을 뿐이에요. 이게 다 돈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한 달에 2천만 원씩 벌어봤어요?"
그의 얼굴에는 어떤 죄책감도, 악의도 없었다. 오직 텅 빈 눈동자와 뒤틀린 성공에 대한 갈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에필로그: 빛과 그림자
몇 달 후, 정하윤은 '미스터리 해결사'의 심리학자 오민재와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카메라를 켜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과 구독자들의 환호 대신, 창문으로 쏟아지는 평범한 햇살의 소중함을 배우는 중이었다.
"전... 귀신보다 무서운 걸 봤어요. 사람의 고통을 보며 웃는 얼굴들을요. 채팅창에 '더 때려', '소리 지르게 해봐' 같은 댓글들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그 사람들은... 제가 진짜로 죽어가는 걸 보고 싶어 했어요."
이지수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에코 챔버'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영구 삭제했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그녀의 얼굴 위로, 과거 사이버 범죄의 피해자였던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상처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를.
정하윤의 채널에는 마지막 영상이 올라왔다. 검은 화면 위로 하얀 글씨만 천천히 떠올랐다.
진짜 공포는 어둠이 아닌, 그 어둠을 즐기는 시선 속에 있습니다.
저는 이제 카메라를 끕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