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새로고침'이 필요할 때(5)
오래전, 심한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를 대고 제 숨소리를 듣더니, 하얀 종이에 알 수 없는 약 이름들을 휘갈겨 썼습니다.
약국에서 받아든 봉투에는 알록달록한 알약들이 들어있었죠.
"식후 30분, 잊지 말고 드세요." 그 약을 삼키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걸 먹으면 나을 거야.' 그 믿음 하나가 때로는 약 성분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가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상해 봅니다. 마음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약 봉투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라고 하는 장면을요.
"환자분, 오늘은 이 앱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접속해서 AI 상담사와 대화하시고, 자기 전엔 이 호흡법 프로그램을 10분간 따라 하세요."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이것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치료제(DTx)'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니까요.
마인드카페 이승원 소장님은 대형 대학병원과 함께 우울증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고 했습니다. 에이슬립의 기술은 이미 국내 최초로 수면무호흡증을 진단하는 보조 의료기기로 인정을 받았고요.
이제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오락거리가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우리가 얼마나 외롭고 바쁜 세상에 살고 있기에, 사람의 온기 대신 기계의 처방을 기다리게 된 걸까요?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담사도 사람인지라 경험에 한계가 있고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수만 명의 데이터를 통해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줄 수 있죠. 게다가 언제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고요."
그렇습니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틈을 메워주는 존재였습니다. 새벽 3시에 깨어 불안에 떨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엔 미안하고 가족을 깨우기엔 망설여질 때,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AI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요.
저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우리는 정말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마인드테크 취재를 하며 만난 수많은 대표님들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변화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수면 앱이 있어도 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지 않으면 소용없고, 내 성격을 분석해 주는 AI가 있어도 내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문우리 대표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세요. 내가 힘든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치유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습니다.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더 열심히".
그 구호들 속에서 내 마음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외면한 채 말이죠.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스마트폰 화면 속 데이터가 보여주는 '진짜 나'를 마주할 시간입니다.
약 대신 앱을 처방받는 시대.
어쩌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편리한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나를 돌볼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저는 다시 앱을 켜고 호흡법을 따라 해 보려 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세요."
화면 속 목소리에 맞춰 숨을 고르다 보면, 엉켜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풀리고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가 부드러워집니다.
그렇게 나를 돌보는 작은 시간들이 쌓여,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안개 낀 숲을 헤매는 당신에게도, 이 따뜻한 기술의 온기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의 마음,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