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새로고침'이 필요할 때(3)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으레 MBTI를 묻곤 합니다.
"너 T야?"라는 농담 섞인 핀잔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네 글자의 알파벳 틀 안에 넣어 이해하려 애쓰죠.
저 역시 그 유행에 휩쓸려 제 성격을 정의 내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알파벳 조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우물 같은 마음속 어둠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밤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2시,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낮에 있었던 사소한 말실수를 되감기 합니다.
'아까 회의 때 왜 그런 단어를 썼지? 팀장님이 표정이 굳던데,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이불을 걷어차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남들은 "그냥 잊어버려, 별거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엄격한 재판관이 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너는 더 완벽했어야 해. 이건 실수야. 너는 부족해."
도대체 왜 저는 저 자신에게만 이렇게 가혹한 걸까요?
그 답을 찾고 싶어 마인들링이라는 앱을 켰습니다.
포티파이 문우리 대표가 만든 이 서비스는 단순한 성격 테스트가 아니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였던 그녀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고질적인 생각의 패턴, 즉 '심리 도식'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수십 개의 문항에 답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스마트폰 화면 위로 모래시계가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에 뜬 저의 캐릭터는 바로 엄격이였습니다.
이름부터 느껴지는 깐깐함. 엄격이는 완벽주의라는 갑옷을 입고, 채찍을 든 채 저를 다그치는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였습니다. 전문가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엄격이는 당신이 쉴 틈을 주지 않아요. 성취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100점을 맞아도 기뻐하기보다는, 다음엔 100점을 못 맞으면 어쩌지 하고 불안해합니다."
순간, 목구멍이 뜨거워졌습니다. 누군가 제 마음의 CCTV를 켜고 지켜본 것만 같았거든요.
저는 그동안 제가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해왔지만, 사실은 실패가 두려워 멈추지 못하는 폭주 기관차였던 겁니다.
제 친구 중에는 물렁이가 나왔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물렁이는 거절을 못 하는 성격입니다.
남이 실망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아니오"라는 말을 삼키고 꾸역꾸역 남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그러곤 집에 와서 녹초가 되어 앓아눕죠. 또 누군가는 불안이 많아 돌다리를 두드리다 못해 부숴버리는 콩콩이일 수도,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버럭이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앱이 저에게 "당신은 완벽주의자니까 고쳐야 합니다"라고 차갑게 진단서를 내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신 귀여운 캐릭터를 보여주며 말을 건넸습니다.
"엄격이가 또 나타났군요? 이번엔 좀 봐주라고 할까요?"
문우리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다름의 영역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 수 있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패턴이 그렇게 생긴 것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요. 우리는 몸이 아프면 엑스레이를 찍어 뼈가 부러졌는지 확인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플 땐 왜 엑스레이를 찍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요?
마인드테크는 바로 마음의 엑스레이였습니다. 데이터는 차갑지만, 그 데이터가 그려낸 내 마음의 지도는 생각보다 따뜻했습니다.
내 안에 '엄격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저는 실수를 했을 때 저를 몰아세우는 대신 말을 겁니다.
'어, 또 엄격이가 나왔네? 괜찮아, 이번엔 좀 대충 넘어가자. 그래도 큰일 안 나.'
물론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진 않습니다. 여전히 저는 실수를 하면 이불을 찹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제 마음속에 사는 그 깐깐한 녀석의 이름을 아니까요. 이름을 불러주면, 괴물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다루기 힘든 친구 정도가 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혹시 지금도 거절하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물렁이가 울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저처럼 채찍을 든 엄격이 때문에 숨이 차오르고 있지는 않나요?
스마트폰을 켜고, 당신의 마음속 캐릭터를 한번 만나보세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보세요.
"너였구나, 그동안 나를 지키려고 그렇게 애썼던 거구나."
그 작은 알아차림이, 긴 치유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생각만 많고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해, 스마트폰이 어떻게 우리의 밤을 지켜주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기술은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