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가상화폐, 신기루인가 동아줄인가

시간의 다방 : 디지털 유목민의 고군분투

by 공감디렉터J


2017년, 대한민국은 거대한 도박장이었다.
“김 대리, 너 비트코인 샀어? 2천만 원 갔대!”
“박 과장, 퇴직금 빼서 리플에 몰빵했대.”
이성민(54세) 씨는 당시 그 광풍의 한가운데 있었다.
평생 성실하게 적금만 붓던 그였다.

하지만 치솟는 집값, 불안한 노후, 제자리걸음인 월급 앞에서 '가상화폐’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흙수저가 신분 상승할 마지막 기회.’

성민은 화장실에 숨어 업비트 앱을 켰다 껐다를 수백 번 반복했다.
빨간색 양봉이 치솟을 때의 쾌감, 파란색 음봉이 꽂힐 때의 공포.
결국 그는 '떡락'의 날, 패닉 셀을 하고 시장을 떠났다. 반토막 난 비상금과 함께.


2025년. 비트코인은 1억을 훌쩍 넘겼다.
“아빠, 그때 왜 팔았어? 존버하지.”
아들이 농담처럼 던진 말에 성민은 속이 쓰렸다.

퇴근길, 편의점 ATM기 옆. 비트코인 로고가 붙은 낯선 키오스크가 보였다.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시간의 다방 - Crypto Exchange]라는 문구가 떴다.


문을 열자 수많은 모니터와 채굴기 돌아가는 윙윙 소리가 들렸다.
흡사 우주선 조종실 같았다.
중앙 의자엔 후드티를 입고 반바지를 입은 20대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서 오세요. 호구님.”

청년이 홱 돌아봤다.
성민은 멈칫했다.
그는 2017년 당시 뉴스에 나왔던 '코인 대박 신화’의 주인공, 20대 코인 부자였다.

“아저씨, 그때 왜 팔았어요? 2018년 1월에. 그냥 앱 지우고 5년만 버텼으면 강남 건물주인데.”

청년이 낄낄거렸다. 그 비웃음이 비수처럼 꽂혔다.

“무서웠어...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는데, 피 같은 내 돈이...”

“쫄보시네. 자, 복구할 기회 드릴게.”


청년이 쟁반을 내밀었다. 스마트폰과 커피 한잔.

“매수 버튼을 누르면, 2017년으로 돌아가. 이번엔 풀 매수 때리고 앱 삭제해. 2025년에 열어보면 수백억 자산가야. 회사? 당장 때려치우고 몰디브 가서 모히또나 마셔.”

“매도 버튼을 누르면, 코인 같은 거 쳐다도 안 보는 삶으로 리셋해. 그냥 월급 꼬박꼬박 모으는 성실한 개미로 살아. 상대적 박탈감? 그런 거 없이 마음은 편하겠지.”

“관망을 누르면... 아저씨는 여전히 ‘그때 살걸, 그때 팔지 말걸’ 하는 후회남으로 남아야 해. 비트코인 1억 넘는 거 보면서 배 아파하고, 아들한테 핀잔 듣고.”

성민은 매수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수백억.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그 돈이면 인생이 바뀐다. 상사 눈치 안 보고, 아내 명품 백 사주고...

하지만...


성민은 지난 8년을 떠올렸다.
코인으로 돈을 날린 후,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요행은 없다.”
그는 주말마다 기술을 배워 도배 일을 시작했다. 평일엔 회사, 주말엔 도배. 몸은 고됐지만, 땀 흘려 번 돈이 통장에 쌓이는 걸 보며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했다.
그 돈으로 아들 대학 등록금을 냈고, 아내 환갑 여행을 보내줬다.
비록 수백억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내 땀으로 일군 '진짜 돈’이었다.
만약 코인으로 대박이 났다면? 도박 중독자가 되어 더 큰 자극을 좇다 파멸했을지도 모른다.

“야, 코인 부자.”

성민은 버튼을 누르지 않고 쟁반을 밀어냈다.

“나 안 돌아가. 배 아프지. 속 쓰리지. 근데 말야... 내가 흘린 땀은 배신 안 하더라.”

“뭐래? 땀 흘려 일하는 거, 미련한 짓 아냐?”

“미련해 보이지? 근데 그 미련한 짓 덕분에 우리 가족 밥 안 굶고 튼튼하게 살았다. 내 인생 차트는 우상향은 아니어도, 횡보하면서 단단해졌어. 그거면 됐다.”

성민은 블랙커피를 들었다.

“신기루 좇다가 목마른 것보다, 맹물이라도 내 우물 파서 마시는 게 낫다.”

그는 커피를 들이켰다.
청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존경합니다, 개미 님. 성투하세요, 인생에서.”

모니터 화면이 꺼지고, 채굴기 소리가 멈췄다.


다시 편의점 앞.
성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트코인 차트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
하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감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여보, 나 퇴근해. 닭발에 소주 콜?”

성민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며 웃었다.
내 인생의 시가총액은 숫자로 매길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가 바로 '떡상'이니까.




[작가 노트]
시즌 3의 마지막 화는 가상화폐 광풍을 통해 '돈’과 '노동’의 가치를 되묻습니다. 주인공 성민은 코인 대박의 기회를 거부하고,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자신의 땀으로 일궈온 삶을 긍정합니다. "내 인생 차트는 횡보하지만 단단해졌다"는 고백은, 변동성 심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중년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로써 디지털 격변기를 다룬 시즌 3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시즌 4에서는 100세 시대의 반환점을 돈 '액티브 시니어’들의 현재와 미래 이야기, '그레이네상스’로 찾아오겠습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