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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후 수영장 탁도가 당신의 소득 수준??

가난과 위생의 연관성 연구

by 선정수

어제오늘 언론과 인터넷커뮤니티를 달군 한 장의 사진이다. 경기도 모 지역의 사설 수영장에 붙은 안내문이란다.


수영장 이용수칙

1. 수영장은 때를 미는 장소가 아닙니다.
2. 비누샤워로 깨끗이 샤워 후 사용.
3. 수영모자를 착용.
4. 사용 후 수영장탁도가 당신의 소득 수준을 나타냅니다. 연구논문) 저소득층일수록 몸이 청결하지 못하다.


이 수칙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지만 대체적인 반응은 "일부 회원님들의 불결에 참다못한 관리자가 선을 넘었다" 정도로 요약된다.


나도 여기저기 수영장을 다니면서 청결과 관련된 이용수칙을 어기는 회원님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관리자의 고충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수영장을 더럽히는 자는 가난한 자다"라고 규정하는 건 한참 잘못됐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수영장에는 입장 전에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영장이 준비해 놓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람을 두고 '가난하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관계도 잘못됐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내포한다.


빈곤한 사람들은 청결과 위생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니 겪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 또는 여러 국가의 보건 당국은 빈곤층의 위생을 제고하는 것을 중대한 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생을 유지하기 위해선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각종 위생용품을 구매해야 하고, 씻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거나 빌려야 하며, 씻을 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빈곤한 사람들은 위생에 대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1일 1 샤워를 실천하면 살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자주 씻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매일 같이 샤워하는 것은 부유층이 아니고서는 무덥고 땀나는 한여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서민 가정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라고 해도 겨울철에 모든 식구가 매일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온수가 충분히 공급되는 가정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면 1~2주에 한번 대중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소득 수준 향상과 도시가스 보급, 전기온수기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리면서 1일 1 샤워가 보편화됐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늘진 곳에선 위생 문제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쪽방촌'에는 변변한 샤워시설이 없어 매년 여름 폭염 대책이 걱정이다. '깔창 생리대'가 이슈가 됐든 빈곤층 여성 청소년들은 위생용품을 구입할 돈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


수영장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가난'을 들먹일 이유는 없다. 매너를 지켜달라고 정중히 요청하고, 업장의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하면 그만이다. 가난 때문에 위생을 살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가난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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