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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책육아

어릴 적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하나같이 하던 이야기가 있다.


"와... 너네 집에 책이 왜 이렇게 많아?

책방 해도 되겠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생의 친구들도 같은 이야기들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집에는 책이 많았다.


주말에 청계전 헌책방으로 가는 나들이는 아직도 기억나는 큰 설렘 중의 하나였다.

내 기억 속, 우리집의 첫 번째 차는 중고로 구입한 상아색의 스텔라였다.

8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산 클래식카의 전설이라 불리는 스텔라는

멋스럽게 각이 잡히고 클래식한 매력을 한껏 뽑내는 그런 차였다.


네 식구가 스텔라를 타고 청계천에 나가서 지금은 모두 사라진 중고책방을 다니며

인문, 고전, 철학 책들을 자그마치 전 집으로 몇 질씩이나 사서는

트렁크가 넘치도록 책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트렁크 뚜껑이 덮이지 않아서 열고 집까지 온 적이 있었던 기억,

뒷좌석까지 책을 싣는 바람에 동생과 둘이 책 틈에 끼여서

낑낑대면서도 함박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집으로 오던 길을 기억한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은

헤밍웨이와 헤르만 헤세의 책을 꺼내어

불빛 아래 밤새도록 책을 읽다 지쳐 잠들곤 했던

어린 날 주말의 추억에 아직도 미소가 지어진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동서양의 고전을 참 많이 읽었다.


지금도 온, 오프라인 인문고전 독서의 리더로 활동하며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데

인문고전철학 독서야말로 독서의 기본이자 근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각이라도 하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즘은 특히 그렇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영상매체와

순식간에 사라지는 쇼츠와 릴스와 같은 매체들,

그리고 챗GPT에게 물어보면 쏟아내는 답변들,

우리는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 시대에 덩달아 생각의 힘을 잃고 싶지는 않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가장 인간다운 면모, 사피엔스의 면모

생각하는 자의 그 면모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근본이자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내 삶이자, 육아의 기본 틀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읽었다.


인문, 고전, 철학, 예술, 소설, 시, 과학...

닥치는대로 읽고 또 읽었다.

한글로도스 읽고, 영어로도 읽고

전공이었던 스페인어로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나의 다이어리엔

좋아하는 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좋아하는 시를 나누는 친구가 있었으며

윤동주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좋아했고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스페인어 시에도 열광했다.




아빠와 엄마는 무척 바쁘셨고

책을 읽는 모습이 기억나는 건 없었지만 엄마는 꽤 자주 시를 쓰셨고

한지에 손글씨로 시를 써서 고객들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을 꽤나 자주 보았던 것 같다.


내 주변엔 책이 가득했고, 하지만 단 한 번도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랬다.

공부하라는 소리도 무언가를 하라, 하지 말라는 소리도 크게 들었던 적이 없었다.


부모에게 배워왔던 육아의 방식이 나의 생각과 삶에 스며들어

내 삶과 육아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만나며

나만의 가치관이 형성되어가던 시절이었다.




내 삶의 등대와도 같았던 책이라는 존재는

아이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래서 엄마가 된 이후 나는 더 책을 열심히 읽었고

올바른 책읽기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단순한 유행과도 같은 전집의 흐름에서 벗어나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눈을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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