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재택 프리랜서 워킹맘의 오아시스, 글쓰기

7년의 경력이 쌓인 베테랑 영상번역가가 되었지만

출산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17년 전인 당시에는

재택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금과 달랐고

재택 프리랜서라고 하면 다들

"재택이니까 애도 보고 일도 편하겠네"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재택이기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상황.

재택 근무 워킹맘의 최대 단점,

재택이기 때문에 육아를 더 잘할 수 있다기보다

재택이기 때문에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감은 마감대로 있고

아가는 아가대로 울고

집안은 엉망진창...

게다가 난 당시 신랑의 회사 일로

부산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고

수유하랴, 아기를 재우랴, 번역 마감하랴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서서 끼니를 때우고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면서

일상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감에 쫓겨 번역도 100%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술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는데

임신을 한 이후로는 마실 수 없는 음료가 되어

그때부터 차를 즐겼다.


그래서 출산 후에도 꾸준히 즐기던 차를

나의 오아시스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에 무조건 아기보다 일찍 일어나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티타임을 가졌다.

월급을 받는 날은, 나를 위해 예쁜 빈티지 찻잔을 샀다.


남들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지만

화장품, 옷, 구두, 외식비, 커피비 등

그 어떤 비용도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한

작은 사치이자 행복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찻잔에 차를 우려 마시며

내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떤 날은 1분, 어떤 날은 30분, 어떤 날은 5분...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의 티타임을 가지며

그 시간을 꼬박꼬박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정말 놀랍게도 그 시간이 쌓여가면서

나의 삶은 훨씬 더 정돈이 되었고

더불어 나의 마음은 평화를 찾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선의 기준을 정할 수 있었다.


일은 한층 정돈되었고 아마도 영상번역은, 

둘째가 생기면 더는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고

그 이후에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끈임없이 고민하며

10년 목표를 세우고 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아이가 돌이 되면서부터

나는 아이와 함께 마주앉아

자연스레 티타임을 함께 즐기게 되었다.


나 하나로 시작된 티타임의 기록은

이제 딸과 함께 하는 티타임의 기록이 되었고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던 2009년 12월,

출판사에서 <출간제안>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이전 04화 영상번역 프리랜서로 성장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