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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번역 프리랜서로 성장하다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가

한달 내내 일하고 25만원을 벌었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자 고비였다.


2년간 회사에서 일하며 모아두었던 돈과

아직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

그리고 영상번역의 매력 덕분에

나는 다시금 힘을 내어

최소한 1년은 버텨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출퇴근을 하지 않았기에 남는 시간에는

영상번역 툴과 영상번역의 기준, 맞춤법 등을

틈나는대로 익혔고

다른 이들의 번역을 보면서

좋은 표현들은 기록해두고 참고했다.


그 당시에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서도

좋은 대사가 나오면 기록하고 또 기록하느라

영화를 오롯이 즐기지 못했던

직업병이 있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

꼬박 1년간 영상번역에 몰입한 나는

월 25만원에서 월 250은 거뜬히 버는

제법 인정받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실제로

채널CGV와 올리브채널 등과 같은

메인 케이블방송사들에게 직접 번역을 납품하는

더 큰 회사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발주받게 되었고

지금 번역계에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를 그곳에서 만나

동갑내기였던 우리는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영상번역가로 6~7년의 경력을 쌓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을 때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능숙한 영상번역가가 되었고

당시 신랑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돈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영상번역이라는 일을 정말 좋아했었다.


큰 아이를 출산하는 날까지도

번역 마감을 해서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첫째로, 꾸준히 한 가지 일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나로 꾸준히 시간을 쌓아간다는 것은

내가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둘째로, 나는 언어감각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기가 막히게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영상번역을 문서번역과 달리

굉장히 감각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끝없이 공부하고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타고난 재능도 분명히 작용하는 영역이었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나는 영상번역가로 일하는

10년이 더 넘는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쟁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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