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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번역가가 되기까지

지금은 티마스터이자 작가, 독서모임과 퍼스널브랜딩의

리더로 활동 중이지만

나는 13년간 영상번역가로 활동을 했었다.


앞서 말했듯 대학 시절은

나에게 있어 자아실현과 육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펼쳐놓았던 시기였다.


나의 결핍을 이해하고 나의 삶의 방향을 정하며

공부와, 열정과, 사랑과, 술과, 사람과,

그리고 내 자신에 휩쓸리며

그렇게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동시통역사가 되기로 했다.

외국어가 너무 좋아서 외국어를 전공했고

이 길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더불어 자아실현을 하면서

육아 또한 내 손으로 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이 있었기에

동시통역사는 그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꿈이었다.




내가 원하는 외국어를 통해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쓰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삶.


나는 대학교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대학원을 준비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유럽으로 1년간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당시에는 유럽으로의 어학연수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의 꿈을 이해했던 부모님께서는

꽤 흔쾌히 나를 그 멀리 보내주셨다.


그리고 4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통역대학원에 합격하기 위해서

미친듯이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4학년 2학기,

아빠의 이 재발하면서

나는 대학원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토익점수도 없던 나는 급히 토익 시험을 치르고

급히 취업을 준비하면서

오랜 기간 꿈꿔왔던 나의 꿈을 접어야했다.


그리고 그 해가 넘어가기 전

작지 않은 규모의 회사에 취업을 했고

영어와, 나의 전공이었던 외국어를 활용하며

해외 파트너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는

수입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일이 정말 재미있었고,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파트너로 일하는 유럽은 오후 4시가 되어야 문을 열었고

야근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대학 시절 내내 고민했던 나의 본질로 돌아왔다.

이 회사에서 성장한다면 나는 과연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No였다.




그래서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다시 번역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외국어를 좋아하던 나는

영상번역이라는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던 회사 일을 그만두고

영상번역 일을 시작한 첫 달에 25만원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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