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폰디체리

남인도 여행

by 티마스터 바유

인도하고도, 남인도하고도, 첸나이에서 머물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폰디체리가 첸나이에서 차로 고작 2시간 거리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폰디체리는 인도 영화인 <라이프 오브 파이>의 배경지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공동체 모임을 하고 있는 '오로빌'이라는 공동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꼭, 이곳에서 살아보리라 갈 때마다 다짐하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이라, 유독 프랑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이 지역은 인도의 리틀 프랑스라고도 불린다. 자치주로서, 주류 면세 지역이라, 나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남인도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맥주를 만날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기도 하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두세 시간 거리에 위치한 폰디체리로 가는 길은 여느 인도의 도로처럼 제법 위험했지만-갑자기 도로 위에 소가 나타난다든지, 차선을 지키지 않는 차들이 반대편에서 달려온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멀리 보이는 해변과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거쳐가는 아름다운 길이기도 했다. 여행길에 멈추어 마시는 짜이 한 잔은 또 어떻고.


특히 5월경에는 길가에서 능구라는 과일을 팔곤 했는데, 여행 중에 차를 세우고 이 과일을 사먹는 건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능구는 단단한 겉껍질과 얇은 속껍질을 벗기면 코코팜 젤리와 같은 투명한 과육이 나오고, 깨물면 코코넛 워터같은 밍밍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물이 나오는 신기한 과일이었다. 즉석에서 낫으로 서걱서걱 껍질을 까서 건네주는 능구는, 시원하게 냉장고에 보관했다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었는데, 여행길에 먹는 능구는 목을 축이기에 더없이 좋았다. 더위를 많이 타는 둘째 아들은 이 과일에 열광했다. 남인도는 사계절이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기온의 차이가 있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계절별로 나오는 과일이 조금씩 달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짜이 한 잔과 능구를 베어먹다 보면, 그 매력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작은 해변 마을 폰디체리에 도착한다. 두세 시간이면 도착하는 여행지라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늘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첸나이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4년간의 인도 생활 중, 매년 한 번 이상은 이곳을 방문했다. 첫 방문에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배경이 되었던 템플과 동물원 등 곳곳을 찾아 다니며 영화 흔적 찾기에 즐거웠고, 인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깨끗한 해변을 자랑하는 파라다이스 비치에서 아이들과 뛰놀기도 했고, 인도의 노트르담 성당이라고 불리는 대성당을 비롯하여 폰디체리 프랑스 마을을 쾌적하게 산책하기도 했다. 산책로가 거의 없던 첸나이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폰디체리 거리를 헤집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프랑스 요리를 잘하는 한 레스토랑은, 유럽의 어디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맛있는 요리와 괜찮은 와인 리스트를 내놓기도 했고, 오로빌을 찾아가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구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안에서 공동체로서 함께 생활하고 싶은 열망에 빠지기도 했다.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오로빌에서 거주하던 잘생긴 외국인에게 여자로서 받을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받기도 했던 추억마저 있는 폰디체리는 나에게는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지역이다.(심지어 놀러오신 시어머니가 바로 옆에 계셨다!)


엄마와 함께 이른 아침, 배낭 여행객들의 성지인 르카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셨던 짜이 한 잔의 시간도 추억한다. 아무리 손자손녀가 귀엽다 해도, 딸과 단둘이 있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먼 바다를 응시하는 엄마를 보고, 나이가 들어감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 앞에서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바닷가에 거대하게 서 있는 간디 동상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주변을 울타리로 막아두어 들어갈 수 없지만, 내가 인도에 머무는 동안은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던, 즐겁고 신나는 공간이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폰디체리 이야기를 꺼내면, 간디 놀이터 추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인도 아이들과 어우러져 해맑게 웃으며 즐겼던 그 시간, 그 바람, 그 햇빛,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새소리...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떠나는 길부터 돌아오는 길까지 모든 여정이 늘 쾌적하고 만족스러웠던 폰디체리.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도 떠날 수 있었던 그곳이 그립다. 바닷가의 짭조름한 바람과, 수평선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탁 트인 바다, 작고 지저분한 가게가 즐비한 해안의 산책로, 고풍스런 건물이 가득했던 프랑스 마을의 골목길... 지금 당장 가방을 꾸려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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