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여행 - 함피

살아 있는 유적지

by 티마스터 바유

여행에 대한 갈망과 호흡이 잘 맞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첸나이에서 북동쪽으로 700킬로 떨어진 곳에 옛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였던 함피가 있다. 진정한 인도 배낭여행을 꿈꾸던 친구와 봄방학인 3월 함피 여행을 계획하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기차 여행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3월이라고 하지만, 남인도에서는 가장 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라, 뜨거운 바위 도시 함피 여행은 충분히 고민할 만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저런 조건을 다 따지다 보면 할 수 없는 게 인도 여행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은 항상 신중해야 하지만, 또 대담해야 했다.


기차로 뱅갈로르까지 간 후에 렌트카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던 함피 여행. 첸나이를 가로지르는 아디야르 강 남쪽에 있던 우리집 근처 베산트 나가르에 라자지 바반이라는 기차표 예매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손쉽게 기차표를 예매했다. 우리가 탈 기차는 더블 덱 트레인으로 KTX 정도 되는 수준의 에어컨이 달린 2층 기차였다. 짜이와 커피, 무르끄와 바다 같은 스낵을 팔러 돌아다니는 장사치들도 있었고, 넷이 마주앉아 갈 수 있는 가족석도 있어 제법 쾌적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의 기차 여행에 잔뜩 들떠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시작이 참 좋았다. 기차로 오가는 동안 의자와 테이블 위를 돌아다니던 바퀴벌레 몇 마리를 마주친 것만 빼면 말이다.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유적지 같았던 함피. 그 유명하다는 비탈라 사원, 로터스 마할, 코끼리 사육장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쌓여 있는 돌무더기들조차 감탄스러웠던 곳이다. 이곳이 어떤 역사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보다는, 유적지 자체가 놀이터와 같았던 6살, 9살의 아이들은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뛰어다녔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 아이들은 뛰어놀 공간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함피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탕가 힐을 올랐던 일이다. 가장 어린 만 4세짜리 두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오르는 일은,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정말 미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둘러 올라가면 시간은 걸리지만 완만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한 마탕가 힐은 정말 아찔한 모험 그 자체였다. 우여곡절 끝에 눈앞에 보이는 고지를 포기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때, 정말 고맙게도 우리를 구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네덜란드에서 온 앨버트 씨였다. 목이 말라 헉헉대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물을 나누어주고, 완만한 길로 안내를 해주신 덕분에, 우리 일행 아홉 명 모두 마탕가 힐에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만 4세의 두 아이들도 물론이고 말이다.


시원하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그 순간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붉게 물들어가는 함피의 모습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던 순간, 모든 더위와 피로와 갈증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함피를 찾는 배낭 여행객들의 아지트이자,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살아 숨쉬는 강 건너 마을로의 모험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인도 여행이나 인도 책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나시에 팔찌와 귀걸이를 주렁주렁 단 문신한 외국인들, 갖가지 알록달록한 천을 이어 붙여 만든 가방, 수많은 구경거리들을 지나 배낭 여행객들의 성지인 래핑붓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나나 팬케이크와 라씨 한 잔, 천천히 흘러가는 이 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행복했던 우리들. 아이들은 삼삼오오 마당으로 뛰어나가 생전 처음 보는 열매를 주워 까르르 웃어댔다. 래핑 붓다를 닮은 친절한 주인 아저씨가 아이들과 놀아주자 아이들은 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친구와 함께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늙어서, 인도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는 농담도 나누면서, 하지만 지금은 웃음 가득한 이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하기로 하면서. 인도에서는 언제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감사하는 삶을 선물 받는다. 함피에서의 추억도, 다시 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 마음이 꽉 차오르도록 감사했던 일들로 가득한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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