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
첸나이의 우리집이 참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자동차로 7분 거리에 아이들의 학교가 있다는 점과, 5분 거리에 칼라쉐트라와 타라 북스가 있다는 점이었다.
첸나이의 복합 문화 센터와도 같았던 칼라쉐트라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들이 있었는데, 함께 자리잡고 있는 공터에서 정기적이고 비정기적으로 벼룩 시장이 열렸다. 이날이 되면 인도 전역에서 다양한 특산물과 수공품을 들고 모인 상인들이 이곳을 가득 채우는데, 볼거리가 여간 다양한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해의 칼라쉐트라는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본질을 잃어 그 빛이 시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몰린 후로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눈에 쏙 들어오는 보물 같은 아이템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행을 다니며 익힌 힌디어를 써먹을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북인도에서 온 상인들에게 힌디어로 '너무 비싸, 조금만 깎아 줘'라고 말을 하면 박장대소를 하면서 흔쾌히 값을 깎아준다. 몇 안 되는 단어를 조합해서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고 난 후, 다음 번 벼룩시장에서 나를 발견한 그 상인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거기, 힌디어 할 줄 아는 한국 마담!'
'칼라쉐트라 가자!'라고 하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작은 가방을 챙겨 들고 쪼르르 달려 나온다. 흙먼지가 휘날리는 모래밭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벼룩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 위해 온 사방으로 뛰어다닌다. 아이들이 종종 멈추어 서곤 했던 곳은, 형형 색깔의 유리알과 보석을 판매하는 매대였는데, 그 맑고 화려한 자태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곤 했다. 인도 민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각 지역의 민화를 구경하는 재미에 쏙 빠져들곤 했다.
인도 배낭여행객들이라면 누구나 들고 있을 법한 인도 가방과 예쁜 인도옷들, 사리, 이불 등 패브릭 제품들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이곳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다양한 인도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앞치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애정하는 인도 기념품이다.
칼라쉐트라와 더불어 또 하나의 보물 같은 장소는 바로 타라 북스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그리운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난 주저 않고 타라 북스라고 외치겠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남인도의 출판사인 타라 북스는 실크스크린을 통한 수작업으로 소량의 책을 만드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 타라 북스의 대표가 제주도를 방문해, 동네 책방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타라 북스의 책들은 유니크하고 멋진 그림들과 더불어, 그 안에 담긴 내용과 구성이 전통적이면서도 참신해서 하나같이 전부 소장 가치가 있다.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소울이 담긴 책을 만들어간다는 타라 북스의 탄탄한 가치관 역시 이곳에 빠져들게 만든다.
아이들과 타라 북스를 찾으면, 좋아하는 책을 하나씩 골라 구입하곤 했다. 영어로 된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한국어로 된 책을(한국과 일본, 중국 등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발견하기도 한다. 책에 삽입된 그림들로 구성된 엽서들도 만날 수 있고, 똑같은 표지가 하나도 없는 플루크 북도 만날 수 있다. 플루크 북은 실크스크린을 찍어내는 과정에 오류가 생긴 파지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 붙여 다이어리로 만든 것이다. 대량 생산, 디지털 생산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한 노트인 셈이다.
앉아서 책을 읽을 자그마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보내게 된다. 미처 앉을 자리를 찾으러 갈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집어든 책에 매료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느리게 영혼을 담아 만들어지는 타라 북스의 책, 그 공간에 있는 동안은 우리의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안 그래도 천천히 흘러가는 인도에서의 시간, 타라 북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
그리운 인도의 우리 동네, 띠루반미유르(Thiruvanmiyur). 칼라쉐트라와 타라 북스로 가는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라따나띠얌 연습이 한창인 아이들을 지나, 잡화점인 싱가폴 샵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구두가게 할아버지와 손자들, 늘 과일 한두개를 더 담아 주시던 길거리 과일 가게와 시바 템플, 타밀어로 나에게 말걸기를 좋아했던 점원이 일하던 코바이, 신기한 인도 악기를 구경하러 들르곤 했던 악기 가게... 문을 나서면 펼쳐질 것 같은 그 전경들이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