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혜력 Oct 21.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 9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


흔들리는 시대의 아이들     


1949년, 우리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내 옆에는 늘 정숙이가 있었고, 옆집에 사는 동수, 그리고 모두가 키세키라 불렀던 기석도 어쩔 수 없이 함께였다.


그렇게 광복 후, 혼란스러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동안 일본이 떠나면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는, 이제 새로운 힘의 체스판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주권을 되찾은 기쁨도 잠시, 새로운 세력들이 우리의 땅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이념의 대립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그로 인해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값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숙이와 나는 여전히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매일 학교가 끝나면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아버지는 독립자금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썼기 때문에, 세간을 줄여 작은 농지에 농사를 지었다. 그 와중에 엄마가 막내 봉숙이를 낳았다. 정숙이와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안일을 도왔다. 나는 쉽게 지치고 급기야 까무러치기 일쑤였지만, 정숙이의 힘을 빌어 다시 일어나곤 했다.     


나는 나의 연약한 육신이 원망스러웠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의 여벌인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다. 마음에 하고자 하는 일마다 쉽게 좌절하고야 마는 연약한 인간이다. 할머니 말대로 정말 쓸모없는 계집애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감상에 빠져 있을 틈도 없이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 쉴 틈도 없이 일손을 돕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말없이 일하였고, 어깨는 하루가 다르게 더 무거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독립이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기뻐할 일이었지만, 독립자금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쓴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여전히 고단한 현실 속에 있었다. 줄어든 농지에서 나온 소출만으로는 여덟 식구가 살아가기 빠듯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막내 봉숙이를 돌보면서도 틈만 나면 농사일을 거들거나 가사를 챙겼고, 정숙이와 나는 이를 돕느라 매일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야 했다. 가을철 수확기엔 낫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논으로 나가야 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벼 이삭을 한 번에 움켜쥐기 위해 힘껏 손을 뻗곤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손목이며 팔꿈치가 쑤시기 시작했고, 몸에 힘이 빠져 금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마다 정숙이는 재빨리 내 옆으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언니야, 잠깐 쉬어가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숙이는 내가 못한 부분까지 혼자서 해낼 요량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없었다면 정숙이 혼자서 더 수월하게 일을 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정숙이는 “언니, 힘들면 잠깐 집에 가 있어도 돼. 난 괜찮아”라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정숙이와 함께 버텨보려 애썼다. 그러나 정숙이가 집안일을 빠르게 해내는 것과는 달리, 나는 매번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였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뜨리거나, 밥을 짓다가 태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정숙이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수습하느라 엄마와 할머니에게 나를 변명해 주었다. 위축되어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정숙은 밝은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언니, 다음엔 내가 할게. 걱정 붙들어 매. ”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깔깔 웃는 정숙이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논두렁이 질퍽해지고, 빗속에서 어른들도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없을 만큼 진흙탕이 되었다. 정숙이와 나는 여느때와 같이 밭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갑작스레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대문 안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손발을 따뜻한 물에 담가 주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따스함이다. 나는 그제야 마음 한구석이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험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 듯 집안이 그날따라 아늑하게 느껴졌다. 방안에 있으려니 빗소리도 운치 있게 느껴졌다. 노곤해진 우리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남북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우리는 언제든지 그 평화마저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며 살아갔다. 이 어수선함이 더 나를 산만하게 하고, 거머리처럼 나의 생각 속에 붙어서 나의 남은 미미한 기운까지도 쏙쏙  빼먹고 있었다.     


오늘따라 노동으로 더 굵어진 팔에 혈관들이 불룩 솟아오른 아버지의 팔과  검은 얼굴. 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마음이 아파 너무 힘들었다.     


“언니, 오늘 수업 끝나면 밭에 가서 일 도와야 해,”

    

 얼굴이 검게 탄 정숙이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정숙이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까맸다.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검은 얼굴이 우스워서 서로 눈이 마주칠 때면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는 하루의 일부를 학교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일이 끝날 때까지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맘껏 까불고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 논밭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뿐 아니라 이제 조금은 자란 동생들을 챙기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손을 보태야 하는 일이 귀찮을 때도 많았지만 보람되기도 했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새롭게 배우는 국어와 역사 수업에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의 지배 아래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조선의 역사가 펼쳐졌고, 선생님은 우리가 누군지,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열강 했다.


학교에 교과서는 부족했고, 아이들은 집안일로 인해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였다. 벌써 교과서나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다 외워버린 나는 매일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업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이전에 사업상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이따금씩 서울을 다녀오시는 길에는 꼭 책 한 권씩을 구해오셨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책들... 잠자리에서 엄마가 들려주던 전래동화를 비롯해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홍길동전‘, 이광수의 ’ 흙“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까지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책들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활자를 접하는 일은 나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숙이는 허약해 보이는 가느다란 몸뚱이로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나를 보고 빈정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잠깐이라도 책을 펼쳐 들고 있으면 정숙이는 꼭 잔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언니, 모두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깟 책들을 밤이나 낮이나 그렇게 붙들고 있다니. 그런다고 쌀이 나와 옷이 나와?” 


정숙의 말에는 날카로운 비난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 책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부질없고 이해되지 않는 일인 것이었다. 늘 내 편인 정숙이 맞아? 나는 처음으로 책과 멀어진 정숙이가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정숙이는 나무도 척척 팰 만큼 힘이 세었다. 상대적으로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나는 신체적으로 정숙에게 확실히 밀렸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동생들 모두가 듣는 앞에서 말했다.


 “언니는 머리가 좋으니, 나중에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글을 많이 읽어두는 것이 도움이 될 거다.”


엄마의 말에 정숙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는 그렇게 내게 힘을 주었지만, 그 말이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 책들 속에는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따뜻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주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보던 신문이라고 하는 것을 읽게 되었다. 신문은 그동안 내가 접해온 동화나 소설과는 다른, 차갑고도 날카로운 현실을 담고 있었다. 작은 글씨들이 빼곡히 쓰인 그 신문에는 나라 안팎의 상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그 내용들은 내 마음에 묘한 동요를 일으켰다.


신문을 읽으며 나는 그 작은 글자들의 의미를 하나씩 이해하게 되었고, 그 내용을 해석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 된 세상의 소식들은 앎의 기쁨과는 영 달랐다. 나를 둘러싼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또 내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은 나에게 너무 컸고, 나는 너무 작았다.


더 큰 문제는 신문의 내용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점이었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 같은 사건들, 어른들이 깊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절망과 무력감. 그러나, 신문의 내용 중에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 신문의 내용이야말로 잘 지어낸 이야기나 다름 없는 거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또 한편으로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짐을 내가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여전히 어렵고 힘들든 어쨌건, 나는 아직 어린 나이로 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나를 대신해 그 짐을 감당해야 하는 아버지와 어른들의 무거운 어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 또 책이야 뭐야?” 


정숙이가 잔소리 섞인 목소리로 마루 곁으로 다가와 소리쳤쳤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책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잠깐만, 정숙아. 금방 나갈게.” 


나의 다급한 대답에 정숙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에휴, 저번에도 말만 하고 어둑해져서야 나타났잖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헐레벌떡 밭으로 뛰어오던 꼴이란…”


정숙의 말이 거칠었지만, 내가 책에 빠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제는 농사일도 꽤 익숙해진 정숙이는 나보다 더 빠르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해내는 일의 양도 훨씬 많았다. 정숙이의 작은 손에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었고, 목소리에는 단단한 결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힘든 일일 수록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깊어진 모양이었다. 밤이 되면 정숙이는 곤했는지 코를 드르렁거리며 곯아떨어졌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정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책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게 미안했다.


정숙은 꾸물거리는 나를 뒤로 하고 큰 목소리로 옆집 동수를 불렀다. 


“동수야! 일 가자!” 







동수네도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소작농으로 살던 그들의 가족은 겨우 토지개혁 덕에 약간의 땅을 얻었지만, 그것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진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키셰키네 집은 일본이 떠난 뒤에도 부유했고, 그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기석이 역시 그것을  등에 업고 까불었다. 기석이는 학교에서도 늘 자신이 우월하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누구보다 빨리 손을 들고 대답했고, 종종 아이들을 무시하듯이 말했다.      


”일본역사도 못하더니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도 너희들은 순 통이로구나? “     


동수는 아이들을 모욕하는 기석이, 즉, 키셰키를 말없이 노려 보았다.

이전 08화 잊히면 안 되는 이름 - 8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