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
깨져버린 학교생활
도요다 선생은 끊임없이 조선 학생들을 괴롭혔다. 특히 일본어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그가 가르친 내용을 틀리게 말한 학생들에게는 가차 없이 매질을 가했다.
여느 때와 같이 도요다 선생은 아이들이 일본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는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조선 학생들의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를 주시했다. 시험지라고 하기엔 거칠고 누런 갱지쪼가리였다. 그가 교실을 어슬렁거리자, 조선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즉각적인 처벌이 이어질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부지중에 나올 법한 감탄사조차도 튀어나올까 조심했다.
시험에서 정숙이가 실수로 한 단어를 틀리자, 도요다 선생은 가차 없이 교탁 앞으로 정숙이를 불러냈다. 나는 교실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정숙이가 틀린 건 일본어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도요다 선생은 평소에 정숙의 적개심을 감지하고 있던 바 이참에 기를 죽여놔야겠다고 벼른 사람처럼 보였다.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계집애가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학교에 나오냐!”
그는 정숙이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정숙이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졌고,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삼키며 울음을 꾹 참았다. 도요다 선생 앞에서 우는 것은 더 큰 수치를 당하는 일이었다. 정숙이보다 더 많이 틀린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정숙이만 불러내서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불려 나가 당해야 했을 혹독한 채벌을 정숙이 덕에 한번 면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안심하는 눈치였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조심스럽게 정숙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 한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정숙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자기도 어린 자식이 있으면서 어린애에게 이렇게 거친 손찌검을 하다니.
"정숙아!"
정숙이는 말없이 눈을 치켜뜨고 성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웃음을 보였다. 나는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렀다.
"우는 거 싫어. 울지 마."
정숙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식구들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동수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 어차피 마무말도 안 할 것 같았지만.
며칠 뒤, 학교에서 또다시 일본어 시험이 있었다. 이번엔 키세키가 나섰다. 키세키는 일부러 조선어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찾아내어 도요다 선생에게 고자질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키세키는 그를 따르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귀를 곤두세우고 교실 안팎을 감시하고 다녔다. 그날 키세키는 수업 중에 동수가 조심스럽게 조선어로 혼자 중얼거린 말을 놓치지 않고 도요다 선생에게 달려가 알렸다.
"선생님, 긴토슈가 조선어로 말했어요!"
기세키는 이 일을 마치 큰 공로라도 세운 것처럼, 뻐기며 말했다. 도요다 선생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고, 그는 동수를 앞으로 불렀다.
"또 조선어로 말했구나. 넌 정말 아무리 맞아도 말을 안 듣는구나! 뭐라고 했는데?"
"배고프다고요."
선생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키세키가 일러바쳤다.
"뭐? 이 거지새끼!"
도요다 선생은 다시 동수의 허벅지를 세게 내리쳤다. 동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교실 안의 조선 학생들은 모두 그 장면을 보며 무서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요다 선생의 권위에 맞서는 것은 곧 더 큰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동수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그는 쉬는 시간에도, 집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동수를 지켜보는 동수엄마는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동수의 엄마는 아들의 고통이 자신에게는 벌처럼 느껴졌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아들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세키는 여전히 도요다 선생에게 달라 붙어 다녔고, 밖에서는 일본 학생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는 자랑스럽게 조선 학생들을 고자질하며 자신이 선생님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나는 점점 더 키세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커져갔다. 꼴도 보기 싫었다. 정숙이의 분노는 더 컸다. 정숙의 눈에는 항상 힘이 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그가 웅덩이 근처에서 다케시와 함께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숙이가 키세키에게 다가갔다. 나는 정숙이가 전에 그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 얼른 그녀를 따라가 팔을 잡았다.
"키세키!"
정숙이는 나에게 팔이 잡힌 채 그를 불렀다. 사나워 보이는 여자애가 가까이 다가와 키세키의 이름을 부르자 콩나물같이 허약해 보이는 다케시는 키세키를 버려두고 도망가 버렸다.
키세키는 뒤돌아보며 정숙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뭐야, 할 말 있어?"
정숙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정숙이에게 끌려가다시피 키세키의 면전에 섰다.
"너, 조선 사람이면서 왜 우리를 고자질해? 네가 그러고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정숙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키세키는 그 말에 잠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일본 사람이야. 너희들처럼 조선어 따위 쓰는 애들이랑은 달라. 일본어를 잘해야 살아남는 거야."
정숙이는 그 말을 듣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키세키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키세키는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정숙이의 돌이 그의 팔에 맞았다.
"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넌 도요다 선생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어!"
정숙이는 계속해서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나는 놀라서 정숙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정숙이의 분노는 이미 멈출 수 없었다.
키세키는 결국 울면서 도망쳤다.
"두고 봐. 아버지한테 이를 거야!"
"일러라, 일러. 너도 지금 여기서 조선말로 지껄인 걸 도요다 선생에게 일러줄 테니!"
정숙이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인데 이렇게 슬펐구나. 이 세계가 어찌 어린아이들의 세계란 말이냐?
"이렇게 살아서 뭐 해, 언니. 우리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를 절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정숙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정숙이는 학교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키세키에게 돌을 던진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다. 추측건대 키세키 스스로 웅덩이 앞에서 있었던 일을 함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혐오하는 조선어를 자신도 모르게 거침없이 쏟아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의 날들은 아이들에게는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일본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고, 조선어를 쓰면 더 큰 벌을 받는 악순환 속에서 아이들은 생기를 잃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조차 조심스러워졌고, 말이 자유롭지 않으니 당연히 자유롭게 노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날 이후로 정숙이는 키세키와 다시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키세키는 여전히 도요다 선생의 신임을 받기 위해 애썼으며, 아이들에게는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동수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 했다. 두려움도 슬픔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그는 모든 것을 방관했고, 맞을 일이 생기면 그냥 맞았다. 우리에게는 그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 갈수록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닫혀갔다. 나는 아버지가 얘기한 식인물고기를 떠올렸다. 진짜 식인물고기들이 여기 있었구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물고기. 그 물고기가 한 마리는 도요다로 한 마리는 키세키로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생태계를 달리하여 물이 없는 곳으로 나오게 되면 곧 죽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물속에서 포식을 즐기고 있다. 작고 연약한 생명체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말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식인물고기를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