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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력 Oct 20.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6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

깨져버린 학교생활

   

 1학년 교실. 아이들이 각자 나무 책상에 앉아 두려움 섞인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도요다 선생은 그날도 어김없이 교실로 들어왔다. 검은 일본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살피며 교단 위에 섰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교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두, 오늘도 일본 제국의 위대한 역사를 배울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큰 소리로 울려 퍼졌지만, 일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의 말이 허공에 떠도는 무의미한 소리였다. 특히 앞줄에 앉아 있던 옆집아이 김동수 아니 킨토슈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딱할 정도로 긴장 속에서 수업을 들었다. 일본어는 아직 서툴렀기에, 당연히 매번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며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저 아는 시늉만 하고 있다는 게 옳았다.


도요다 선생은 갑작스럽게 교실을 걸어 내려왔다. 그의 발소리가 나무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아이들은 한층 더 위축되었다. 동수는 그 순간을 직감적으로 두려워했다.      


"오늘은 누가 틀린 대답을 하게 될까?"   


그리고 도요다 선생의 발걸음이 그의 책상 앞에서 멈췄을 때, 동수의 심장은 벌써부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긴토슈, 나와라."      


도요다 선생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수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선생님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 배운 일본 제국의 영광스러운 왕조의 이름을 말해봐라."      


도요다 선생의 물음은 단순했지만, 동수에게는 그 질문이 너무나 어려웠다. 일본어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에게 그렇게 무차별적인 질문을 하는 도요다 선생이 이상했다. 그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손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동수였다.     


"어... 저..."      


동수는 말을 꺼내려했지만, 입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요다 선생은 이미 화를 내기 시작했고, 동수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며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일본어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너, 조센징!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겠다는 거냐!"      


도요다 선생은 동수를 강하게 책상에서 끌어냈다. 다른 학생들은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가 동수의 상황이 자기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을 움츠렸다.     


내 옆에 앉은 정숙이의 얼굴을 힐끗 보니 분한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책상 밑으로 가만히 정숙이의 손을 꼭 쥐었다.      


’ 정숙아, 공연히 너까지 앞에 끌려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마음속으로 정숙에게 간곡하게 말하고 있었다.   

       

도요다 선생은 동수를 앞으로 불러 세운 뒤, 그의 눈앞에 있는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그 막대기는 일본 선생이 학생들을 처벌할 때 사용하는 무기였다. 도요다 선생은 일본의 위대함을 모르는 자에게 가차 없었다.   

  

"조선말로 대답하는 놈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겠다!"      


도요다 선생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동수의 허벅지를 세게 내리쳤다. 동수는 아파서 울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도요다 선생의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조선어로 말하는 것이 곧 처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수는 이미 두려움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도요다 선생은 만족하지 않았다.     

 

"모든 수업에서 일본어로만 말하고, 모든 답을 완벽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냉혹했다. 동수는 학교에 나오느니 차라리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로, 동수는 점점 더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학교에서 일본어로 대답하지 못할까 봐 항상 두려워했으며,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실수로 조선어를 말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수뿐만 아니라, 그 교실에 있던 모든 조선인 학생들은 점점 말이 줄어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어갔다.


그 와중에 일본어 좀 한다고 동무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조선말을 고자질하는 아이가 있었으니 키세키였다. 그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도요다 선생과 이웃이었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도요다 선생은 사요코의 외삼촌이란다. 기세키는 도요다 선생집을 드나들며 선생의 아들 다케시와 친구하고 있다고 들렸다.     

키기세키가 애초에 조선이름이 없는 아이처럼 굴어서, 정숙이는 나에게 그의 본명은 분명 ’ 개새끼‘일거라고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묻는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정숙과 나는 학교에서의 일을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엄마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엄마, 우리는 잘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일본어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 “

”우리 연기 잘해, 엄마. “


정숙이가 내 말에 이어 엄마를 달래느라 한마디 덧붙인다.     


시간이 흐르며 동수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점점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동수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캐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수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숙이는 대담한 아이다. 어린것이.      


”언니, 저 개새끼랑 다케시 맨날 후미진 곳으로 놀러 다니던데. 거기 큰 웅덩이가 있거든? 거기 빠뜨려 죽일까? “     


분노에 찬 말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숙이의 말에 벌써 그런 일을 벌인 것 마냥 나의 가슴은 철렁하더니 심하게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키세키를 웅덩이에 빠뜨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학교를 장악하고  있는 한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교는 그저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억울함을 가슴에 안고 참아내야 하는 고통의 공간이었다.


도요다 선생은 끊임없이 조선 학생들을 괴롭혔다. 특히 일본어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그가 가르친 내용을 틀리게 말한 학생들에게는 가차 없이 매질을 가했다. 


여느 때와 같이 도요다 선생은 아이들이 일본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는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조선 학생들의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를 주시했다. 시험지라고 하기엔 거칠고 누런 갱지쪼가리였다. 그가 교실을 어슬렁거리자, 조선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즉각적인 처벌이 이어질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부지중에 나올 법한 감탄사조차도 튀어나올까 조심했다.


시험에서 정숙이가 실수로 한 단어를 틀리자, 도요다 선생은 가차 없이 교탁 앞으로 정숙이를 불러냈다. 나는 교실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정숙이가 틀린 건 일본어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도요다 선생은 평소에 정숙의 적개심을 감지하고 있던 바 이참에 기를 죽여놔야겠다고 벼른 사람처럼 보였다.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계집애가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학교에 나오냐!”


그는 정숙이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정숙이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졌고,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삼키며 울음을 꾹 참았다. 도요다 선생 앞에서 우는 것은 더 큰 수치를 당하는 일이었다. 정숙이보다 더 많이 틀린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정숙이만 불러내서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불려 나가 당해야 했을 혹독한 채벌을 정숙이 덕에 한번 면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안심하는 눈치였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조심스럽게 정숙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 한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정숙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자기도 어린 자식이 있으면서 어린애에게 이렇게 거친 손찌검을 하다니.


"정숙아!"


정숙이는 말없이 눈을 치켜뜨고 성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웃음을 보였다. 나는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렀다.


"우는 거 싫어. 울지 마."

정숙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식구들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동수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 어차피 마무말도 안 할 것 같았지만.


며칠 뒤, 학교에서 또다시 일본어 시험이 있었다. 이번엔 키세키가 나섰다. 키세키는 일부러 조선어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찾아내어 도요다 선생에게 고자질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키세키는 그를 따르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귀를 곤두세우고 교실 안팎을 감시하고 다녔다. 그날 키세키는 수업 중에 동수가 조심스럽게 조선어로 혼자 중얼거린 말을 놓치지 않고 도요다 선생에게 달려가 알렸다.


"선생님, 긴토슈가 조선어로 말했어요!"


기세키는 이 일을 마치 큰 공로라도 세운 것처럼, 뻐기며 말했다. 도요다 선생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고, 그는 동수를 앞으로 불렀다.


"또 조선어로 말했구나. 넌 정말 아무리 맞아도 말을 안 듣는구나! 뭐라고 했는데?"

"배고프다고요."

선생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키세키가 일러바쳤다.


"뭐? 이 거지새끼!"


도요다 선생은 다시 동수의 허벅지를 세게 내리쳤다. 동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교실 안의 조선 학생들은 모두 그 장면을 보며 무서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요다 선생의 권위에 맞서는 것은 곧 더 큰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동수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그는 쉬는 시간에도, 집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동수를 지켜보는 동수엄마는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동수의 엄마는 아들의 고통이 자신에게는 벌처럼 느껴졌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아들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세키는 여전히 도요다 선생에게 달라 붙어 다녔고, 밖에서는 일본 학생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는 자랑스럽게 조선 학생들을 고자질하며 자신이 선생님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나는 점점 더 키세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커져갔다. 꼴도 보기 싫었다. 정숙이의 분노는 더 컸다. 정숙의 눈에는 항상 힘이 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그가 웅덩이 근처에서 다케시와 함께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숙이가 키세키에게 다가갔다. 나는 정숙이가 전에 그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 얼른 그녀를 따라가 팔을 잡았다.


"키세키!" 

정숙이는 나에게 팔이 잡힌 채 그를 불렀다. 사나워 보이는 여자애가 가까이 다가와 키세키의 이름을 부르자 콩나물같이 허약해 보이는 다케시는 키세키를 버려두고 도망가 버렸다.


키세키는 뒤돌아보며 정숙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뭐야, 할 말 있어?"


정숙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정숙이에게 끌려가다시피 키세키의 면전에 섰다.


"너, 조선 사람이면서 왜 우리를 고자질해? 네가 그러고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정숙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키세키는 그 말에 잠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일본 사람이야. 너희들처럼 조선어 따위 쓰는 애들이랑은 달라. 일본어를 잘해야 살아남는 거야."


정숙이는 그 말을 듣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키세키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키세키는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정숙이의 돌이 그의 팔에 맞았다.


"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넌 도요다 선생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어!" 


정숙이는 계속해서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나는 놀라서 정숙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정숙이의 분노는 이미 멈출 수 없었다.


키세키는 결국 울면서 도망쳤다. 

"두고 봐. 아버지한테 이를 거야!"


"일러라, 일러. 너도 지금 여기서 조선말로 지껄인 걸 도요다 선생에게 일러줄 테니!"

정숙이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인데 이렇게 슬펐구나. 이 세계가 어찌 어린아이들의 세계란 말이냐?


"이렇게 살아서 뭐 해, 언니. 우리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를 절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정숙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정숙이는 학교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키세키에게 돌을 던진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다. 추측건대 키세키 스스로 웅덩이 앞에서 있었던 일을 함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혐오하는 조선어를 자신도 모르게 거침없이 쏟아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의 날들은 아이들에게는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일본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고, 조선어를 쓰면 더 큰 벌을 받는 악순환 속에서 아이들은 생기를 잃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조차 조심스러워졌고, 말이 자유롭지 않으니 당연히 자유롭게 노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날 이후로 정숙이는 키세키와 다시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키세키는 여전히 도요다 선생의 신임을 받기 위해 애썼으며, 아이들에게는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동수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 했다. 두려움도 슬픔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그는 모든 것을 방관했고, 맞을 일이 생기면 그냥 맞았다. 우리에게는 그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 갈수록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닫혀갔다. 나는 아버지가 얘기한 식인물고기를 떠올렸다. 진짜 식인물고기들이 여기 있었구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물고기. 그 물고기가 한 마리는 도요다로 한 마리는 키세키로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생태계를 달리하여 물이 없는 곳으로 나오게 되면 곧 죽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물속에서 포식을 즐기고 있다. 작고 연약한 생명체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말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식인물고기를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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