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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력 Oct 20.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7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침묵의 아우성     



우리 동네에서 나와 같은 학년인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집에 소작을 하는 농민들이나 품삯으로 일하는 이들의 자녀들이었다. 소작인과 품꾼들은 기본적인 생계유지도 어려웠기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여기 진천에서도 아이들을 일찍부터 농사나 품삯일에 투입해야 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이렇다 보니 어린아이들도 일을 거들어야 했으며, 학교에 가더라도 농사철에는 결석하고 농사일을 돕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공부보다는 생계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만 보내면 교육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는 부모들과는 달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걸핏하면 제복 입은 선생에게 심한 꾸지람을 받는 것보다 농사일을 하는 것이 천배 만 배는 더 친근한 일로 여겨지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다 고된 노동에 지칠 즈음에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교실이 한 번쯤 생각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들의 가정사정을 고려해 곡식을 여유 있게 나누어주려고 노력했다. 종종 살림이 심각하게 어려워진 이들이 아버지에게 사정을 하면 그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는데, 갚지 못하면 그냥 놔두기 일쑤였다. 먼저 것도 갚지 않은 채로 다시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 동수 아버지가 단골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독립자금을 남모르게 조달하는 일에도 주력하였다. 엄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 관련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형편을 소리 없이 살폈다. 할머니는 웬일인지 엄마의 거동을 모르는 척했다. 이따금씩 아들에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가지언니네 엄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에게 가지라고 부르며 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왔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얼굴 마주칠 때마다 남편의 팔을 붙잡고 사정을 했다.     


"기무라 선생님, 우리 가지는 일 잘하고 있남요? 집에 좀 가끔 보내 주시어유. 네? "  

"이 여편네가 이제는 지 서방도 몰라보고 '기무라 선생님'하고 앉았네?"

   

가지언니네 아저씨는 소식도 없는 아들 딸을 기다리면서 정신 나간 마누라와 단 둘이서 텅 빈 집에 있으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그나마도 엉망이었다. 한동안 밥을 지은 흔적이 없는 아궁이 옆에 동수네서 얻어 온 옥수수죽을 바닥까지 긁어먹은 빈 그릇이 숟가락 두 개가 걸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없는 돈에 어디서 구해 왔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막걸리를 주전자째 마셔댔다.  

    

"니미! 막걸리가 내 마누라고 내 아들이다! "     

"에유, 술 먹는 거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마셔대유? "     

잠깐 정신이 돌아온 가지언니네 엄마가 그렇게 남편에게 훈계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정숙은 순자와 혜자를 마당에 앉혀 놓고 학교놀이를 시작했다. 선생님 역할을 자처한 정숙은 자세를 바로잡고 두 팔을 허리에 얹은 채 꽤나 근엄하게 서 있었다. 순자와 혜자는 기대에 차서 언니가 내리는 명령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모았다.

 

"자, 이제 선생님 말씀대로 따라 해야 한다! 알았지? "

 정숙의 눈빛이 번뜩였다.


 "순자, 손바닥 이리 내! 앞으로 냉큼 나오라구! "

정숙은 대뜸 장독대 옆에 떨어져 있는 긴 나뭇가지를 집어 들더니 순자의 이름을 불렀다.


학교 놀이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순자는 정숙의 갑작스런 행동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얼굴이었다.

"싫어.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 거야? "


순자가 정숙이에게 대들었다. 억울한 순자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순자가 반항의 기미를 보이자 정숙은 당황하여 언성을 높였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선생님은 잘 못 한 거 없어도 막 때릴 수 있는 거라고! “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언니들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 있던 혜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정숙언니 무서워! "


정숙은 결국 혜자를 울리고 말았다.


"야, 너는 왜 울어? "

정숙은 소리를 질렀다.


순자와 혜자는 억울해하며 서로 끌어안고 정숙을 노려 보았다.

"언니 싫어!"     


나는 보다 못해 다른 말로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정숙아, 내일 학교에 가져갈 곡식 담아 놔야 하는데, 담을 데가 마땅치 않네?" "


 "큰 언니이... "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자와 혜자가 내 품 안에 매달린다.


 "아 맞다. "

정숙은 생각난 듯이 나뭇가지를 팽개치더니 깜박거리는 자기 머리를 스스로 꽁 쥐어박았다.     


나는 순자와 혜자를 토닥여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정숙이 저도 그렇게 싫어하면서...  보는 게 참 무섭다.        





       

다음 날.  곡식을 헌납하는 날이었다. 그날의 무게는 아이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늘 그렇듯 정숙과 함께 학교로 가고 있었다. 정숙은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걷는다. 그녀도 곡식을 헌납하라는 학교의 강요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니, 동수가 오늘 곡식을 내지 못할 거라고 했어.” 정숙이 말했다. 


그녀의 눈빛엔 걱정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키세키는 분명 고자질할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정숙의 말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동수를 찾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쌀 주머니나 보리 주머니, 옥수수 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가져온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곡식을 헌납하는 것이 전쟁에 기여하는 일이라 배웠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 부끄러움이란 아이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을 부르는 언어폭행과 매질을 동반한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동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오히려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숙은 곧장 나를 따라왔다.


 “동수야, 곡식 준비했어?” 

정숙이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동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대.” 

오랜만에 듣는 동수의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떨렸다.      


동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눈짓을 하니 정숙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떡인 다음 동수 앞에 보리주머니를 올려놓고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얼른 가져갔다.      

“쉿!”      


엄마가 동수에게 전해주라고 한 곡식자루를 그의 책상 위에 두고 혹시 키세키라도 볼 세라 정숙과 나는 서둘러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늦게까지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고 돌아온 동수 엄마가 수건으로 몸에 붙은 흙먼지를 털면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할지 마음속으로 가늠하고 있던 동수엄마는 툇마루에 검은 물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흠칫했다. 자세히 보니 동수였다. 엄마가 들어와도 기척이 없는 아들에게 동수엄마가 말했다.


"아니, 에미가 힘들게 일하고 왔으면 아는 척을 해야지. 뭣땀시 심통이 나가지고 거기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거여? "

 

그래도 동수가 미동이 없자 동수엄마는 동수의 팔을 끌어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달빛에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비추어 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동수는 마당에 끌려 나와서는 얼굴을 외면하였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겨? 엄마 속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랴? 학교를 다니면서 누구한테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를 배워 오는겨? 대체 뭐여? "


동수 엄가는 동수의 어깨를 밀치자 달빛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동수는 빠르게 얼굴을 숙였다. 동수엄마는 빠른 눈썰미로 아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니, 뭐여? 얼굴이 왜 그랴?"

동석엄마는 한 손으로 아들의 턱을 돌려 이리저리 살폈다.


"친구덜이랑 싸운겨? 아님 느이 반에 대가리 굵은 놈들한테 맞은겨?"


동석엄마가 치밀하게 물고 늘어지자 동석은 소리쳤다.

"암것도 아녀. 아니라고!"


방으로 도망치려는 동수를 붙잡고 아들의 뻘겋게 부어오른 왼쪽 볼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어쩔 줄 몰라하며 걱정을 하는 동수엄마였다. 동수의 붉은 볼은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얼른 에미한테 말 못혀? 어떤 새끼한테 이렇게 처맞고 다니는 거냐고오? "

동수엄마는 아들을 채근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도 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정숙과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동수네로 찾아갔다.


“아유, 작은 마님 오셨소.”     

동수엄마는 붙잡고 있던 동수의 팔을 내려놓고 엄마를 깍듯이 모셨다.


"잠깐 동수 좀 봄세."

엄마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동수엄마를 지나쳐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동수에게로 빠르게 걸어갔다.


“동수야, 아줌마가 보내 준 보리 주머니 왜 학교에 안 냈어? 응?”

“난 분명히 전달했어요, 엄마.”

정숙은 엄마의 동수를 다그치는 급한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동수 볼때기가 이렇게 된 것이 슨상님한테 맞아서 그런 거라 구유?”     

엄마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퀭한 동수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애들 말이 그렇다고 하네. 도저히 동수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동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려고  왔네.”     

엄마는 쌀과 보리가 섞인 정숙이 엉덩이 만한 곡식자루와 함께 부은 곳에 바르라며 지푸라기로 동여 맨 된장 한 덩이를 동수 엄마에게 내밀었다.   


"번번이 감사드려유, 작은 마님. 훌쩍."

"뭘."

동수엄마는 귀한 것을 품에 안듯 보리자루를 품으로 끌어당기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엄마는 동수엄마의 말엔 무심한 듯 동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에게 다급히 다시 묻는다. 동수엄마는 입 다물고 있는 동수 때문에 안절부절이다.

 "얼른 말씀드리지 못햐?"


“동수야, 아줌마가 보내 준 보리 주머니 왜 안 냈어? 응?”

 엄마가 재차 동수에게 묻자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떼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군인들이 우리가 낸 보리쌀을 먹고 힘내서 더 많은 사람을 죽인댔어요. 일본에 항복시킨댔어요! 으앙...”  

한쪽 얼굴이 심하게 부어올라 눈까지 짝짝이가 된 동수가 드디어 입을 떼며 울음을 터트렸다. 동수는 도요다 선생에게 맞은 것도 억울하였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보리자루를 도요다에게 빼앗긴 것이 더욱 억울하였다. 어린 동수에게는 그 보리자루를 빼앗긴 것이 나라를 잃은 슬픔과 같았다. 땅바닥에 쏟아부을지언정 사람을 마구 죽이면서 당당하기만 한 그들에게 보리를 주고 싶지 않은 동수였다.


동수엄마가 동수의 우는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 죽여 울었다. 참았던 주먹만 한 눈물이 엄마와 정숙이와 나의 양쪽 콧구멍을 타고 주르르 턱까지 내려와 사정없이 마당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수를 도와 준답시고 괜히 보리를 챙겨주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동수네 마당에서 우리 다섯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이놈의 눈물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고 서로의 얼굴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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