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날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정숙이와 나는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처럼 말이다.
아버지와 동수네 아버지, 그리고 가지언니네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깊은 신뢰를 쌓으며 살아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들어 서먹서먹해졌다. 그 사실은 나와 정숙이 동수까지 아이들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동수야, 학교 가자.”
나는 동수네 대문 앞에서 소리쳤다. 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속닥거리는 소리가 문득 멈췄다. 가지언니네 아버지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들의 기척과 동시에 말소리가 멈췄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숙을 쳐다봤다. 그녀도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문이 열리자 동수 아버지가 나왔다. 데면데면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그전엔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던 모습과는 달리, 동수 아버지의 눈빛은 식어 있었다.
“동수는 오늘 바쁘다. 먼저 가라.”
그의 말은 짧았고, 그 뒤에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왜 바쁜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꼭 말해줘야 할 책임은 없겠지만, 그저 나를 피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불편했다. 이전의 자상하고 서글서글한 아저씨가 아니다. 동수와 거의 6년을 같이 걸어가던 학교길에 정숙이와 나만 터벅터벅 걷고 있다. 정숙이도 생각에 잠겨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는 속으로 물었다.
동수 아버지와 가지언니네 아버지는 해방 전부터 우리 집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엄마 아버지는 식량, 일자리, 그리고 때로는 물자까지 나눠주며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 왔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들은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심지어 저번엔 우리 집 문 앞에서 동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에게 성을 내던 기억이 있다.
“그저 농사일 때문일 거야.”
정숙이도 그 일이 떠올랐는지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단순히 농사 문제라기엔, 동수 아버지의 태도는 너무나 차가워 보였기 때문이다.
“연임아, 정숙아! 같이 가자!”
동수의 목소리가 우리 등 뒤로부터 다급하게 들려왔다. 아직 동수네 집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정숙을 바라봤다. 정숙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느이 아버지가 너 바쁘다고 했는데?”
나는 의아한 얼굴로 동수에게 되물었다. 동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헉헉 대더니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 그의 아버지가 말했던 바쁘다는 모습과는다르게, 동수는 우리를 뒤따라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하나도 안 바빠. 아버지가 왜 저러시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동수가 숨을 고르며 힘없이 말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나한테 혼자 나가라고 … 나는 너희들과 학교 같이 가고 싶어서 마구 달려왔어.”
그의 얼굴엔 무언가 불안이 서려 있었다. 마치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 그리고 그 비밀이 너무 커서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것 같았다. 정숙이는 한참을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빨리 가자. 학교 늦겠다.”
우리 셋은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동수는 고개를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아버지가 뭔가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 요즘 아버지의 일이 좀 이상해.”
그 말에 나와 정숙은 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뭐가 이상한데?”
정숙이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녀는 늘 문제의 원인을 바로 알고 싶어 했다.
동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누구랑 자주 만나고 있어. 그리고 나보고 그 사람들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셔. 그냥...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도 정숙도 할 말을 잃었다. ‘숨기고 있는 것?’ 대체 아버지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까의 분위기, 속닥거리던 소리, 동수가 우리를 따라 나오면서도 보여준 어색함이 모두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이 누구야?”
나는 무심코 물었다.
동수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지 못했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불편한 침묵은 풀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루한 수업이 더 길게 느껴졌다. 나는 동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계속 궁금했지만, 그도 말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호기심에 가득 찬 정숙의 눈은 여느 때보다도 날카로웠고, 왠지 그녀에게도 내게 미처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잔뜩 있을 것만 같았다.
동수는 얼마 전부터 마루 한쪽 귀퉁이에 신문이 쌓여가는 걸 불쏘시개로 쓰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신문 한 뭉텅이를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 너 이런 거 읽는다며? 정숙이한테 들었어.”
나는 그를 보며 신문을 받아 들고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익숙하지 않은 신문이었다.
“이거 아저씨가 읽으시는 거 아니야?”
동수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읽긴 뭘, 우리 아버지 까막눈이라 이걸 읽진 않아. 어디서 가져왔는지 계속 쌓아두시기만 하더라고.”
신문을 펼쳐 보니 ‘조선신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보던 신문과는 다른 느낌에 마음 한편이 묘해졌다. 그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다.
“고마워, 동수야. 잘 읽을게.”
나는 밭으로 걸어가면서 낯선 말들을 읽으며 이 신문은 특히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밭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부지, 이거 새로 나온 신문이에요?”
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신문을 받으며 유심히 바라보았다. 신문을 쓱 훑어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조선신보라… 이게 요즘 소문으로 들리던 신문이로구나.”
아버지는 신문을 펼치며 조심스럽게 넘겨보았다.
"이 신문, 어디서 났니?"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수가 줬어요. 동수네 아버지가 읽지는 않고 마루 한쪽에 쌓아만 두신다고 하면서. 불쏘시개로 쓰려다 제가 생각나서 갖고 왔다고 했어요. "
"그래? 이 신문은 아부지가 가지고 있을게. 동수가 또 신문을 주거든 불쏘시개로 쓰라고 얘기해 주고."
아버지는 신문을 접어 일부는 망태주머니에 일부는 밀짚모자에 넣어 머리에 썼다. 내 직감상 망태주머니 속의 것은 어떤 형태로든 버려질 것이고, 모자 속으로 들어간 신문은 아버지가 읽어보시리라.
나는 그 신문의 내용이 궁금하였으나,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덧붙였다.
"연임아, 아부지가 가져다준 책들 전부 읽었니?"
"네, 아부지. "
"재미있었어? "
"예, 아주 많이요."
"그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까?"
"에이, 아부지. 저도 그 재미있는 책들이 지어낸 거란 것쯤은 안다고요, 뭐. "
나는 아버지의 질문에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에게 진지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 딸. 활자에 적혀있다고 해서 다 진실은 아니지. 작은 지면이든 큰 지면이든지 간에."
나는 얼핏 작은 지면은 책이고 큰 지면은 신문이라고 받아들이면서, 그 큰 지면으로부터 받아 왔던 그동안의 압박감이 어느 정도 해소됨을 느꼈다.
동수는 정말로 신문을 불쏘시개로 사용하였다가 동수아버지에게 혼쭐이 나고 있었다.
동수는 그의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신문에다 불을 붙였다. 불은 금방 활활 타올랐다. 동수의 집으로부터 종이 타는 냄새가 우리 집까지 진동을 하였다. 목구멍이 매캐했다. 아침 일찍 불을 지펴야 했는데 마침 쉽게 불 붙일 만한 것이 없었던 터라, 동수는 신문 여러 장을 가볍게 말아서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쑥 집어넣었다. 마침 그 장면을 본 동수 아버지가 갑자기 동수에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동수는 벌러덩 뒤로 나자빠질 뻔하였다.
“이놈아, 니가 뭘 안다고 애비 보는 신문을 가져다가 불쏘시개를 만드는겨?”
동수는 깜짝 놀라 자빠질 뻔한 몸의 균형을 잡다가 손에 쥔 신문 조각을 떨어뜨렸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게, 그저 불쏘시개가 없어서…”
“아니, 애비 물건을 감히 어디 불쏘시개로 쓸 생각을 하냐?”
동수 아버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더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읽지도 않으시면서요.”
동수는 한쪽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동수 아버지는 잠시 동수를 노려보다가 조용히 신문을 손에 들고는 약간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놈아, 니가 어리다고 모든 걸 다 말해줄 순 없지만, 신문이라는 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거란 말이다. 책이 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신문은 우리 현실을 다루는 중요한 거야.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보관해 두는 겨. 내가 글은 못 읽어도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다.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다. ”
동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신문을 불쏘시개로 쓴 것이 미안해졌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동수는 아버지의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럼 제가 이 신문 좀 읽어봐도 돼요?”
아버지는 당황한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그를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직 너한테는 이르다. 이 신문에 쓰인 말들이 전부 이해될 나이가 아녀. 함부로 읽다가는 혼구녕 날 줄 알어!”
"아버지는 내용을 전부 알고 계시고 간직하고 싶은 내용이라면서요?"
글을 모르는 아버지가 극구 그 신문을 못 보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당황한 듯한 그의 태도가 동수는 이상했다. 갈수록 알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이 동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수는 불안해졌다. 마을에서 들리는 여러 이야기들, 일본이 떠난 후 달라진 분위기, 그리고 아버지가 신문을 들고 다니는 것과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동수는 마루 구석에 쌓인 신문을 함부로 쓰지 않고 조심스럽게 남겨두었다. 신문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아버지가 그토록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동수는 집이 비었을 때, 그 신문이라는 것을 차분히 읽어보리라고 남몰래 다짐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이 동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활자가 박힌 종이는 무조건 읽어치웠고, 자연스럽게 밭일이나 농사일에서 제외되었다. 땡볕에서 쓰러져 주변사람들의 일손을 멈추게 하느니 집안에서 엄마나 할머니의 잔심부름이나 하며 동생들과 지내게 하는 게 낫다고 모두들 판단한 것이다.
동생들을 돌볼 때면 어김없이 나는 책을 읽어주었다.
"언니, 저번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이번 거는 잠이 와. 다른 거 없어?"
순자와 혜자는 내가 읽는 책이 지루했는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나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다소 어려운 책도 아이들에게 읽어준다는 핑계로 낭독을 했으니, 어린 순자와 혜자가 그 내용을 이해할 턱이 있겠는가.
봉숙이는 엄마차지였다. 엄마의 등에는 어린아이가 떨어질 날이 없다. 나는 물끄러미 엄마를 안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봉숙이와 눈이 마주쳐 행동으로만 얼르는 시늉을 하고 다시 책을 뒤적였다.
틈나는 대로 나는 여러 가지 책들을 계속 접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공이 컸다. 그중에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번역서도 내 손에 들어왔다. 해방 이후 여러 외국 문학과 인물 전기들이 번역되었는데, 링컨은 그 상징성 때문에 독립 이후 조선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주목받았다. 링컨의 노예 해방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은 우리들이 직면한 독립과 자유의 의미와 맞물려 있어서 그렇다고 아버지가 일러주었다. 그도 나처럼 엄청난 다독가였으며, 마침내 가장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본격적인 링컨 전기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