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_ 4화

바람의 협곡

by 벙긋 웃는 문혜력

점심 무렵, 분식집 주방은 통깨가 튀는 소리로 바빴다.
수인은 김을 깔고 밥을 얹고, 뜨거운 밥에 참기름 한 숟갈을 빙 둘러 고루 비볐다. 수영이 옆에서 말없이 단무지를 건넸다.

“여사님 입맛 없으시대. 막 만든 걸로 싸서 얼른 갖다 드려.”

“형이 가. 숨도 돌릴 겸.”

형이 눈을 한번 껌뻑였다. “손은 내가 더 빠르지. 가게 일은 걱정 말고.”

수인은 대답 대신 김밥을 힘주어 말았다. 김발이 손바닥에 눌려 뜨끈했다. 따끈한 김밥을 용기에 담으니 밥 숨이 하얗게 올라왔다. 뚜껑을 덮으려다, 온기가 식지 않게 상자 입구만 랩으로 느슨히 감싸 들고 나왔다.

여름 볕이 골목을 휘감았다. 담벼락은 오후의 열을 품고 후끈했고, 바람은 없었다. 여울의 집, 푸른색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발을 떼지 못했다. 대문 위쪽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자리에 옛날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여울이 별 모양 스티커를 잔뜩 붙여놓고 “우리 집 우주선”이라고 우겼던 게 떠올랐다.

‘들어가면, 냄새부터 날 거야. 약 냄새, 세제 냄새, 그리고….’

수인은 김밥 상자를 들고 문 앞에서 멍하니 섰다. 얼굴로 후끈한 공기가 올라붙었다. 이 문을 지나면 여울의 부재가 더 선명해질 것만 같았다.

철컥— 안에 누가 있다. 수인은 움찔하며 내딛던 발을 멈추었다. 문틈으로 튀어나온 건 낮게 겹치는 목소리였다.

“나만 두고 가냐, 나쁜 자식아… 너, 듣고 있어? 강여울! 듣고 있냐고!”

혜윤이었다. 울음과 숨이 뒤섞여 거칠게 흔들리는 목소리.
수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문 틈으로 숙였다. 대문 틈으로 좁은 마당이 보였다. 현관 앞에 혜윤이 서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을 향해 혼자 화를 내는 듯하더니 어깨가 들썩였고 이어 고개는 쏟아지듯 숙여졌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가,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그러더니 다시 어깨가 들썩였다. 보다 못한 수인이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수인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혜윤이 눈을 치켜떴다. 수인은 이어서 화난 사람처럼 말했다.

“그렇게 소리치면, 여울이 돌아오기라도 할 것 같아?”

마당의 공기가 순간 멎었다. 혜윤의 입술이 양쪽으로 떨렸다.
“뭐?”
“있을 때 잘하지. 네가 뭐 여기서 눈물바람 한다고 여울이 좋아할 것 같냐고!”

“넌, 인정머리 없는 거 진작 알았는데.” 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지만 칼날 같았다. “어쩌다 너랑 친구가 됐는지, 오늘은 정말 모르겠다.”

수인은 손에 든 김밥을 잊은 채 깊게 숨을 들이켰다. 혜윤을 위로하려 한 말이, 너무 촌스럽고 우스워 보였다. 자꾸만 입이 먼저 거칠게 나갔다.

“네가 여기서 울고 소리치면 달라지는 게 있어? 김여사 님은 방에서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시고 심난해 죽겠는데 왜 너까지 이러는 거야?”

“그걸 몰라서 물어? 현실이라서 우는 거야. 여울이 없는 끔찍한 나의 현실!” 혜윤이 따지듯이 한 걸음 다가왔다. “여울이었으면 너와는 달랐을 거야. 여울이는 먼저 사람 마음부터 돌아봤어.”

수인은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뒤, 혜운을 다시 정면으로 쳐다봤다.

“그래, 나 그런 인간이야. 하지만 지금은—관두자.”

“지금은 뭐? 김밥 들고 와서 한소리 하고 가면 할 일 다한 거야?”

수인은 대답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하늘은 조금 흐렸고,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미약하게 울렸다. 첫 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곧이어 비 냄새가 골목을 타고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여름 장마의 첫머리 같은 냄새. 수인은 고개를 숙여 비를 피하지 않았다.



혜윤은 비가 점점 굵어지자 비 맞고 있는 수인을 처마밑으로 밀어 넣으며 핀잔을 주었다.

"바보냐? 비 오잖아."

마당의 먼지가 물방울을 먹고 진흙빛으로 번졌다. 현관 처마 밑으로 물줄기가 똑똑 떨어졌다.

“미안하다.”

수인이 낮게 말했다.

“뭘... 너랑 나는 원래 안 맞잖아. 할 수 없는 거지. 오늘따라… 누구를 붙잡고 싶었어. 근데 붙잡을 사람이 없더라.”

혜윤의 말에 수인은 어설프게 어깨를 으쓱했다.

“여울이 버리고 아무나 붙잡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혜윤이 잠깐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 웃었다.

“너, 위로하는 법 진짜 못 배웠구나.”

“응, 못 배웠다. 너는... 나를 혼낼 기운은 남아있었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수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혜윤이 먼저 현관으로 들어갔다. 수인은 신발을 벗으며 따라 들어가려다, 잠깐 뒤를 돌아봤다. 골목 끝이 흐리게 빛났다.


수인이 현관 안으로 한 발 들여놓자, 어딘가 이상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공기가 너무 가벼웠다. 마치 발이 땅에서 살짝 떨어진 듯한 느낌.

“앗, 혜윤아—”
그가 부르기도 전에, 시야가 휙 돌아갔다.
눈앞이 열리자마자,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현관과 거실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깊게 갈라진 절벽이 있었다.
아래는 안 보일 만큼 아찔한 심연.
바람이 절벽 아래에서 불어 올라와 얼굴을 스쳤다. 날은 가을하늘처럼 맑았다.

그리고… 절벽 끝, 좁은 바위 끝에 혜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손끝으로 바위를 간신히 붙잡은 채, 발이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눈은 이미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야,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수인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몰라! 무서워…”
혜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위가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악!"

수인은 손에 들고 있던 김밥을 반사적으로 내팽개쳤다.
“꽉 잡아!”



수인은 반사적으로 혜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놔! 너까지 떨어져!”
“뭐래! 빨리 올라와!”

절벽 위로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올리는 동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뜨겁게 타는 듯했고, 온몸의 힘줄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침내 혜윤이 절벽 위로 굴러들어 오듯 올라오자, 두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숨을 고르기도 전에, 주변이 갑자기 변했다.
바람소리도, 절벽도, 심연도 사라졌다.
둘은 여전히 손목을 붙잡은 채, 여울의 집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김밥도 얌전하게 식탁 위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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