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때? 돌봄!
뜨거운 여름 바람이 카페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는 냉기를 훔쳐갔다.
바깥은 해가 기울고 있었지만, 카페 안은 여전히 커피 향과 사람들의 대화로 가득했다.
수인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테이블에 앉았다.
그를 바라보는 동현과 전청은 수인의 표정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집에서 문 닫고 울고 있을 혜윤의 모습이 세 남자의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전화를 줄기차게 해서 기어코 나오게 하거나 그녀의 집에 쳐들어가고도 남았을 그들인데 오늘은 참기로 했다.
"셋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정말 우울해진다."
전에 없던 정적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전청이 한마디 한다.
“오늘은 진지하게 얘기 좀 하자.”
수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설마 동아리 부활 얘기 아니지?” 전청이 실없이 웃었다.
“무슨. 여울 어머니, 김 여사님 얘기야.”
수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여울이 없으니, 우리가 돌아가면서 돌봐드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동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돌본다고? 우리가? 무슨… 간호 같은 거?”
“아니. 그냥 틈내서 찾아뵙고 말벗해 드리고, 식사 챙기고, 필요한 거 같이 사드리고… 그 정도.”
동현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라고? 음, 좋은 마음인 건 알겠는데… 우리 다 바쁘잖아. 간신히 웹툰도 데뷔했는데. 말이 쉽지. 그걸 매일 한다고 생각해 봐. 그리고… 알지? 김 여사님, 요즘 기억력도 좀… 난 감당하기 무섭다고.”
그 말에 테이블이 잠시 조용해졌다.
모두 알고 있었다. 김여사의 기억이 점점 삭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필요하다고.”
수인이 시선을 내리깔며 독백처럼 말했다.
“며칠 전에 갔는데, 약을 중복해서 드시려 하시더라. 내가 말리니까 웃으면서 ‘아, 이거 아침 거였나?’ 하시는데… 마음이 좀 그랬어.”
전청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우리 중에 이런 돌봄 해본 사람 있나? 난 솔직히 자신 없는데.”
수인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수인의 못마땅해하는 목소리에 순간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으이그, 저 맘대로 안되면 슬슬 올라오는 승질머리...'
동현이 수인에게 맘속으로 불만을 불러오다가 마시던 커피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시간 맞추기도 힘들 텐데…”
전청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긴, 스토리 짜고 그림 그리고 수정하고 하는 거 장난이 아냐.”
두 사람의 말에 밀리는 기분이 들자, 수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거의 이십 년 넘게 여울 어머니가 해준 떡볶이랑 간식, 누가 제일 많이 먹었냐?”
“아니 뭐… 나 혼자 먹었냐? 너네도 다 같이 처먹었잖아.”
동현이 찔렸는지 손을 내저으며 흥분했다.
“전청이 너는 방학 때면 아예 여울이네서 살다시피 했잖아.”
동현의 화살이 자신에게 꽂히자 전청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남 얘기 하시네.”
“그러니까 그렇게 받아먹었으면 이제 돌려줄 때가 왔다는 거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말을 자르고 수인이 짧게 결론을 내렸다.
세 사람은 종이 냅킨에 요일별 방문 일정을 적긴 했는데 일정이 허술하고 대책이 없어 보였다.
“어때?”
수인이 냅킨을 동현과 전청이 쪽으로 내밀었다.
“맙소사. 그럼 우리 다 퇴사야?”
동현의 한 마디에, 수인은 할 말을 잃었다.
“혜윤아 그만 울고 얘기 좀 하자. 동네 마트에서 전청 엄마가 그러더라. 카페에서 돌봄 얘기했다면서?”
혜윤엄마가 딸의 방문을 열어젖히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거 그냥 얘기만 한 거래.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고.”
혜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실을 전했다.
“정하기는 뭘. 애들이 지들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마음뿐인 게지. 내가 나서야겠네. 돌봄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 보겠어.”
“엄마가?”
“그래. 내가 시어머니도 이렇게 못 모셨는데 웬 시집살이냐 하겠지만… 그 집이랑은 인연이 있잖니.”
엄마가 김여사를 돕겠다고 나서자 혜윤은 눈물자국을 손등으로 슥슥 지우며 일어났다.
“아니, 엄마 맨날 아줌마랑 은근히 신경전 하던 거 기억 안 나? 특히 요리 얘기만 나오면…”
엄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건… 내가 똥손이라 그렇지. 그 사람은 국 하나 끓여도 잡지 표지 같잖아. 동네 사람들도 ‘김여사 손맛은 최고’라는데, 그 옆에서 내가 뭘 해도 비교당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니.”
그러면서 혜윤 엄마는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픈데 그런 건 다 접어야지. 빈 날에 내가 가서 말벗이라도 해줄게. 대신 요리는… 나 말고 배달이야.”
혜윤이 배시시 허약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엄마. 그렇지만 엄마도 나름 바쁜데 계속 붙어있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건 걱정말고! 네가 그렇게 입이라도 떼니 엄마 속이 살 것 같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입 꾹 다물고 울어서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기운내, 우리딸."
혜윤엄마는 딸의 기분을 맞추려고 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완벽한 돌봄시나리오의 의욕만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수인이 여울의 집에 갔을 때, 부엌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김여사와 혜윤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김여사가 만든 따끈한 잔치국수와, 혜윤 엄마가 들고 온 포장 도시락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수인이 왔네? 얼른 앉아. 오늘은 내가 국수 했어.”
어리둥절한 수인에게 김여사가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괜찮으신 건가?'
수인이 김여사의 안색을 살폈다.
혜윤 엄마가 덧붙였다.
“내 건 반찬가게표야. 너 먹고 비교 좀 해봐. 솔직하게!”
수인은 웃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소 안심이 된 수인이었다.
“네, 제가 챙겨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얻어먹고 가네요.”
“그래, 맛있게 먹고 우리 여울이 퇴근하면 얼굴 보고 가."
여울이라는 말에 수인은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금방이라도 여울이 들어올 것만 같아 수인은 자꾸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참 많이도 투닥거렸는데.
수인이 이튿날 방문했을 때 부엌에는 낯선 얼굴이 있었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온 생활지원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김화사님 댁 돌봄 담당하게 된 이소연이에요.”
생활지원사는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주 3회 방문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청소, 식사 준비, 약 챙김, 말벗 같은 걸 할 거예요. 치매안심센터랑도 연계돼서 주 1회 인지훈련 프로그램이 잡혀 있어요.”
혜윤 엄마가 웃으며 거들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해요? 덕분에 내가 없는 날도 안심이네. 전문적인 손길이 닿으니 훨씬 마음이 안정되네요. 고마워요, 소연 씨."
"저희 일이기도 하고, 저희 할머니도 비슷한 상황이시라 저 잘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야무져 보이는 생활지원사를 쓱 스캔한 혜윤엄마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번졌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오니까 좋아. 근데… 여울이는 언제 와?”
순간, 모두 표정까지 얼어버렸다. 아들을 매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언제까지나 그의 죽음을 숨길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 수인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곧 와요, 어머니. 그때까지 우리가 옆에 있을게요.”
그 후로 김여사의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됐다.
여울이 친구들, 생활지원사, 그리고 아주 촘촘하게 혜윤 엄마가 찾아와 김여사를 챙겼다.
치매안심센터 직원은 표정이 없었는데, 주 1회 방문해 퍼즐 맞추기나 사진 회상 놀이를 함께 했다. 차가울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놀이는 묘한 매력과 집중력을 불러일으켰다.
여울의 집에는 응급벨과 위치추적기가 설치됐다.
김여사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지만, 모두 웃으며 들어주었다.
떡볶이 얘기가 나올 때면 여전히 눈이 반짝였고, 젊은 시절의 사진을 꺼내 놓고는
“이땐 내가 참 예뻤지?” 하며 아이처럼 웃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여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들 모두는 여울이 없는 이 공간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그가 잠시 집을 비운 것처럼 행동했다. 자연스러웠다. 다만 혜윤은 그들이 모두 없을 때 간간이 여울의 집을 찾았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뜨거운 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