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냉채와 부고
"가게 잘 되드라? 돈 좀 융통해 줘. 이번에 잘 되면 두배로 갚아줄라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아버지 덕에 신용불량자 돼서 수인이 명의로 가게 하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뭐, 수인이도 망치려고?"
"이 자식이 못하는 말이 없네. 같이 잘 먹고살려고 애쓰는 아비한테 참 말도 곱게 한다?"
"아, 네. 그러세요? 노름에 여자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성화에 당신 보증을 섰더랬지."
"가족끼리 그럴 수 있는 거지. 뭐 그리 대수냐, 응?"
"그만 좀 해요!"
비아냥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비위가 상해버린 수인이 소리치자, 오가는 이들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쏠렸다.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건들거리며 등을 돌렸다.
"동네 오랜만에 와 보니 좋네. 아들들 사는 집도 어딨는지 알았고, 넌 뭐 호랑이 새끼냐? 그런 목청은 어디서 나왔어? 나중에 또 보자."
형제는 속이 문드러져버렸다. 그 아비라는 작자는 큰 키와 허세와 거짓말과 반반한 인물로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다. 또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식이고 마누라고 주변의 모든 사람은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그런 작자였다. 자신들의 뿌리가 저런 사람이라니...
올여름, 나는 오이냉채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아니, 만들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칼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식초 뚜껑을 여는 손에 의지가 없었다.
올여름, 여울이 떠났다.
혼자 꽁꽁 싸맨 돌덩이 같은 짐을 지고 잘 버텨낸다 했더니 심신의 과로가 그를 데려간 것이다. 오랜만에 출근한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스르륵 잠들듯이 소멸해 버렸다.
그는 매년 여름이면 내가 만든 오이냉채를 맛보던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오이냉채를 만들게 만든 사람이다.
“너는 어쩌면 이렇게 간을 잘 맞추냐.”
“이 오이냉채 먹으러 여름을 버틴다.”
“다음엔 얼음 더 넣어줘. 아예 이 안에 풍덩 빠져버리게.”
그런 말을 하며 웃던 사람.
아무렇지 않게 내 일상에 스며들어, 나의 계절 하나를 통째로 ‘기억’으로 만들어준 사람.
그 사람이 이제 없다.
부고는 문자로 도착했다.
“얘들아, 놀라지 마. 여울이 심정지로 오늘 오전 11시에 소천했다.”
오인방 단톡방. 수인이었다.
단 한 줄.
그 한 줄이 내 여름 전체를 지웠다.
그날 낮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았고, 커튼도 걷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던 오이 세 개를 보고 곧 물러버리겠다고 잔소리하는 엄마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식탁 위엔 전날 마시다 남긴 보리차 컵이 그대로였다.
나는 여울의 사진을 꺼내놓고,
자꾸만 물었다.
“왜 이제야 아픈 티를 낸 거야?”
“왜 마지막에 오이냉채 얘기 한 마디 없이 갔어?”
장례식장엔 여울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법 사람들이 북적였다. 친척도 없다 들었는데, 그가 다니다 만 대학의 교수님들, 보험회사 사람들, 대학교 수위아저씨, 여울이 어쩌다 한 번 갈까 말까 한 동네 카페 사장님 등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늘 조용히 살았고, 누구에게도 부담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그의 소소한 짐을 덜어주려고 손을 보탰던 사람들이다.
빈소엔 동현과 전청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수인은 장례식에 관련된 일처리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거나 식장 사무실을 들락거리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여울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흰 국화 대신 여울이 좋아하던 연보라 리시안셔스가 놓여 있었다.
"괜찮아?"
동현과 전청은 나를 보자 얼굴이 더 어두워져서 수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그들의 물음에 대꾸할 기운도 없던 나는 맥없이 영정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사진 속 여울은 내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미소가 보일 듯 말듯한 입꼬리, 가벼운 고개 기울임, 늘 그랬듯 “잘 있었어?”라고 묻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이 없다.
정말일까? 없는 거 맞아?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언제까지나 여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수인이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세 사람에게 장례를 맡기고 나는 방향을 틀어 오이를 사고 여울의 집으로 갔다. 여울의 어머니는 소파에 잠들어 있었고 TV 혼자 떠들고 있었다. 아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요 며칠새의 그녀의 상태가 오히려 다행스러운 걸까? 알아야 할 의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들을 먼저 보낸 노인이 어찌 맨 정신으로 남은 생을 버텨낼 수 있을까?
여울이 좋아하던, 길쭉하고 물 많은 강원도 오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좋은 사과식초.
마늘도 다지고, 설탕도 미리 녹였다.
오이를 채 썰며 나는 손을 멈췄다.
도마 위에, 내가 담고 싶었던 사람의 시간들이 흘러내렸다.
우리 오인방 소꿉친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데... 특히 네 친구 중에서 유독 의지가 되는 너였는데.
햇빛이 쏟아지던 낡은 주방에서 서로에게 말없이 물을 건네던 어느 한 장면도 떠오른다. 그게 뭐라고 가슴이 뛰었더랬는데.
함께 영화를 보며 오이를 썰고, 아들을 가끔 알아보는 어머니를 웃기려고 애쓰는 그와 어머니보다 더 많이 웃었던 나. 무언가 특별하지 않은 음식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지탱하던 시절.
그 여름들이, 도마 위 오이처럼 줄줄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그가 뛰어들어올 것만 같았다.
"엇? 힘든데 왜 왔어? 오늘은 수업이 일찍 끝났어? 엄마 때문에 빨리 가게 다녀오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이냉채를 그릇에 담았다.
작은 유리그릇에 얼음도 띄우고,
여울이 좋아하던 붉은 고춧가루를 아주 살짝 뿌렸다.
나는 그것을 식탁 맞은편에 놓았다.
우리의 여름이 앉았던 그 자리에.
친구 녀석들이 걸핏하면 밥을 축내러 쳐들어 오지 않았을 때도 기본은 늘 셋이었는데 오늘은 둘이다. 낯설다.
그 옆자리에, 아들이 어디 갔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울의 어머니가 내 오이냉채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혜윤이 냉채는 여전히 맛있네. 우리 여울이 오면 정말 좋아하겠다."
"어머니, 저는 기억하시네요?"
어머니 말에 나는 한 마디를 매듭짓지 못했고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끄윽..."
울음을 참는 나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곧 나는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여울의 어머니는 나의 울음에 별다른 반응 없이 별안간 유리그릇을 들고 게걸스럽게 오이냉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여울이네서 자고 간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의 미쳤다는 소리 너머로 아빠가 알겠다고 하며 폰을 끊었다.
그 사람은 삶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작은 식물 하나, 시원한 보리차 한 잔, 그리고 내가 만든 오이냉채 한 접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말, 웃음, 따뜻한 눈동자, 그리고 둘이 똑 닮은 입맛은 어쩌면 내 여름마다 되살아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이 부고도 낡은 기억이 되더라도, 나는 매년 여름이 되면 이 오이냉채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가 버릴 거였으면, 내가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가지.
"사랑한다, 혜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