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_ 1화

버킷 리스트

by 벙긋 웃는 문혜력

-이야! 경관 죽인다!

-우리 다 같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볼까?

-그 그 안전장비는 준비됐어?

-그러엄! 자아, 여기 대령했습니다.



수인은 초중고 동창인 소꿉친구들 여울, 혜윤, 동현, 전청이의 너스레를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생수병을 기울여 남은 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남의 SNS 뒤지면서 뭣들 하는 짓이야? 하긴, 직접 보면 가슴이 뻥 뚫릴 것도 같네.

넷은 김이 샌 듯 자신의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기며 수인을 따라나섰다.

-학생들은 소주 안 마셔? 밥만 먹으러 오지 술 한잔을 안 하네? 공부만 열심히 하나 봐?

-이모, 매상 올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술 먹으면 알바 못 가요, 우리.

'이모네 집' 나이모의 볼멘소리에 동현이 너스레를 떨었다. 뭐, 사실이기도 했다. 혜윤은 늦은 시간까지 과외수업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해야 했고, 수인은 형의 분식점을 거들어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까. 혜윤은 나름 강의력을 인정받아 벌이가 괜찮은 편이었으나 수인은 분식점 아르바이트로 손에 쥐는 몇십만 원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전공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 녀석들도 있다. 동현과 전청이 그랬다. 그들은 웹툰작가로 성공할 때까지 밤새워 웹툰을 그리기로 의기투합한 사이이다. 그들은 웹툰 세계에 등단을 하기는커녕 작품을 한답시고 강의시간에도 공상에 사로잡혀 시간만 쪼개먹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자취방은 불 꺼질 날이 없었다. 우스운 건 두 사람이 비장하게 몇 컷을 끄적이고는 불 켠 채로 곯아떨어지기가 일쑤였다는 것이다. 결심과 후회의 연속인 셈이다. 여울은 유일한 혈욱인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기약 없이 휴학을 하고 보험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적성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돌보아야 했으니 그 일이 적절하게 여겨졌다.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가끔 교수님들이 자잘한 보험에 가입해 주었다. 틈이 나면 이웃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한 시간 청소를 해주는 대가로 약 만원씩을 챙겼다. 그것을 모아두었다 보험이 극단적으로 수익이 안될 때 썼다.

식당을 나서면서 넷은 사뭇 미덥지 못한 약속을 하였다.

-얘들아, 우리 졸업하고 잘 돼서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 여행 다니자.

-그래, 우리 어렸을 때부터 해온 얘기잖아. 해외도 아니고 우리에겐 아주 합리적이야. 괜찮네.

여울의 말을 혜윤이 거들었다.

그날 그렇게 다섯 명은 오랜만에 아주 소박한 외식이라는 걸 하였다.





-형, 늦어서 미안해. 친구들하고 밥만 먹고 일어섰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오늘은 좀 한가해서 괜찮았어. 어? 너 들어오니까 손님들 밀려온다.

네 사람과 헤어진 후 허겁지겁 가게문을 들어선 수인을 형 수영이 밝게 맞았다. 생활비는 수인이가 벌고 있지만, 이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여 수영은 수인의 학비를 부담하고 있었다. 수인은 형에게 고마운 마음을 넘어 많이 미안했다. 빨리 졸업을 하고 형에게 보탬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졸업을 한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졸업이 두려웠다.

-그냥 형한테 영원한 조수로 써 달라고 할까? 빛나동의 맛집 '수수분식'으로 거듭나는 거다. 나는 나의 터지는 매력으로 손님을 물어오고 형은 레시피를 개발하고.

-뭘 혼자 그렇게 중얼거려? 주문 좀 받아와.

수인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다 혼잣말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화들짝 놀라 홀로 뛰쳐나갔다.

-어서 오세요.

어이없게도 떡볶이, 김밥도 먹을 겸 수인을 보러 오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수영도 180 정도의 키로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수인은 형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머리는 타고난 곱슬이었는데 일부러 모양내어 펌을 한 듯했다. 손님들은 수인을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다. 가게 벽은 연예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수인에게 쓴 낙서로 빼곡했다. 수영은 수인의 월급날이면 옷이라도 사 입으라고 약간의 돈을 더 얹어 주곤 했다. 형제의 목소리는 따뜻했으나 바빠서인지 무표정이었다. 손님들은 이를 시크하다고 했다.

"저녁 두 시간 동안 오늘 재료 소진됐다. 퇴근하자. 고맙다, 동생. "

"왜 그래? 안 어울리게. 새벽부터 식재료 준비하느라 형도 바빴잖아."

"내 일이니까."

형제는 멋쩍게 싱긋 웃었다. 가게 문을 닫고 둘은 자취방으로 향했다. 주변에 학교가 많아 빌라형 원룸, 투룸을 갖춘 건물들이 많았다. 그중 먼지시티는 관리비가 저렴한 형제의 보금자리였다.

"아버지에게서 연락 왔었어."

수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염치로..."

수인은 이렇게 내뱉고 속이 쓰렸다.

"오겠다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어."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얘들아, 여기서 지내니?"

먼지시티 3동 현관 공동비번을 누르려던 수인의 손이 떨렸다. 수영이 그런 동생을 가로막으며 목소리가 들린 촉으로 홱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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