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8.
아이들에게서는 빛이 난다.

인레 둘째 날

by 오늘윤

2019 10월 28일



인레 시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난 뒤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이 자전거로는 역시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 어려울 듯해서 자전거를 바꿔 오기로 했다. 여전히 자전거에서는 끼익끼익 거리는 굉음에 바퀴에 바람도 빠진 거 같고 이래저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자전거를 바꾸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 인레 시장으로 향했다. 식당을 찾다가 맞은편에 인레 시장이 있는 걸 봐 두었던 참이다. 껄로 시장에서 재밌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참이라 인레 시장 또한 건너뛸 수가 없었다.

바나나를 먹을 줄 알았더라면 미얀마는 내게 천국이었을 텐데


바닥에 자리를 잡고 노점을 하던 껄로5일장과 달리 제각기 자신의 가게터에서 장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상설시장인 것 같았다. 시장 입구부터 나를 반긴 것은 불단에 올릴 꽃을 파는 꽃가게의 향긋한 꽃내음과 요정 같은 꼬맹이 두 명이었다. 어쩜 둘 다 그렇게 요정 같은 건지 꽃내음을 뒤로 물리고 반짝반짝 두 눈이 보석 같은 요정 두 명에게로 향했다. 쭈그리고 앉아 우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밍글 라바" 인사를 먼저 건넸지만 낯선 사람의 인사에 엄마의 치마폭에 쏙 숨어버렸다. 남자아이는 그래도 궁금했던 건지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진을 찍어서 카메라 lcd창을 보여주며 "너네들이야"라고 보여주자 그제야 엄마 치마폭에서 나와 카메라 속 자신들을 구경하기 위해 다가와 주고 여자 아이 엄마도 다가와 보더니 만족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아이들이 이렇게 카메라에 자신이 찍힌 모습을 보고 좋아할 때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하나 사 올걸 그랬다고 매번 후회가 되곤 한다. 이번엔 준비가 급급해 놓쳤지만 다음엔 폴라로이드가 됐건, 인화기가 됐건 뭐든 하나는 사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눈에 보석 박힌 요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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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까르르 무엇이 그렇게 재밌니?


가게 하는 엄마, 아빠를 따라 나와 가게를 놀이터 삼아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월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꽤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디선가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에 따라가 보니 옷가게에서 아이 둘이 함께 한 평도 되지 않는 가게 구석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그 작은 공간에서 기둥을 하나 사이로 얼마나 움직여 논 건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남자아이가 여자 아이를 웃겨 주기 위해 얼굴로 지어대는 이상한 표정들에 여자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화답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 제일의 코미디언이라도 만난 것 마냥 숨 쉴 틈도 없이 까르르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웃음이 전염되어 광대가 주체를 못 하고 입꼬리가 스르륵하고 올라갔다. 이 예쁜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순식간에 찍어 찾아갔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을 찍었건 말건 관심도 없이 세상 제일 웃긴 친구와 세상에서 제일 잘 웃어주는 친구 둘만의 세계에 빠져 내 사진은 외면받고 말았다.


아이들은 참 신기하게도 그 작은 체구로 복잡한 시장 안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곤 한다. 마치 스스로 빛이라도 내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이 있는 주변은 환하게 빛나고 있고 빛에 홀려 따라가는 사람처럼 따라가 보면 작은 요정들이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낯선 이를 향한 본능적인 경계의 눈빛이 서리지만 운이 좋을 때면 생긋하는 미소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몽글몽글한 마음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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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 너무 예뻐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되요?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껄로의 5일장만큼 크진 않았지만 나름 구경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걸로 시장만큼 복잡하거나 길이 좁지 않아서 길가에 서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다 카메라에 담고 싶은 순간들을 그때 그때 놓치지 않고 담는 재미로 시장 구경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시장 한 귀퉁이에 여인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똑딱이 카메라로 몇 컷을 찍고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제가 사진을 좀 찍었어요"라는 뜻의 몸짓으로 카메라를 내밀었다.

다들 카메라에 나온 본인들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늘색 윗옷을 입고 계시던 분을 가리키며 미소가 아름답다고 엄지를 치켜들자 부끄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셨다. 내 치켜세워진 엄지손가락에 주변의 여인들도 그 아주머니를 향해 뭔가 한 마디씩 하며 거드는 느낌이었다. 더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에 쌍엄지를 치켜들자 다들 깔깔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오늘 저녁 반찬거리인가요?
우리 같이 웃어요~!
너무 예뻐요. 모델 좀 되어주세요~!

미얀마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가 생화 꽃으로 머리를 치장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로선 특별한 날에나 주고받는 게 흔한 꽃의 이미지였지만 미얀마에서는 꽃이 생활 속의 일부분처럼 항상 가까이 두는 듯했다. 시장만 가봐도 채소가게만큼이나 많은 게 꽃가게였고 머리에 꽃을 꼽지 않아도 장바구니 한 귀퉁이에는 삐죽 삐져나온 꽃다발이 보이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미얀마 어디에서나 이렇게 머리에 생화 꽃으로 장식하고 장바구니 꽂힌 꽃을 볼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양곤 같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직 시골에나 남아있는 오래된 풍경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낭만이라면 시골의 오래된 캐캐 묵은 낭만이라 하여도 좋다. 캐캐 묵은들 여전히 꽃향기가 진동하지 않겠는가.


한낱 이방인은 속으로 바라본다.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칠흑 같은 검은 머리에 온갖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들을 마주칠 수 있게 되기를 옅게 스치듯 퍼지는 그 향기를 또 맡아볼 수 있기를 다음엔 나도 예쁜 꽃 한 송이 사서 그녀들처럼 머리에 꽂아 볼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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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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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있을 땐 너도 나도 도와주러 뛰쳐나와주는 인심
뭘 그렇게 맛있게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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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시크했던 형과 귀여운 동생


마을 축제


크지 않은 시장이었지만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 데다 사진 찍고 보여주며 허락받고를 반복하는 시간이 꽤 걸리다 보니 시장을 나올 때는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당시 마을에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던 건지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보고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 보았다. 입구 초입부터 게임을 하고 상품을 타가는 곳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대고 사이사이 노점 음식점부터 축제의 현장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쉽게 구경할 수 없었던 배구경기


그러나 초입의 게임하던 구간을 벗어나니 축제치 곤 사람이 많이 빠져 있었다. 축제가 끝물이라 그런가 보군 싶었으나 빠진 사람들이 죄다 몰려 와글와글 대는 곳이 있었다. 무슨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보이질 않았다. 꼼수 좋은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거나 위험하게도 오토바이에 올라서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스포츠에 정말 관심이 바닥인지라 그렇게 구미 당기는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대신 손을 쭉 뻗어 카메라로 찍어서 무슨 경기를 하는지만 확인하곤 자리를 피했다.


엄마를 돕던 고사리 같은 손의 칼질
그 아이


그 아이


사람도 없고 볼거리도 마땅히 없어서 나오려는데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보았던 아이들과는 행색이나 눈빛이 너무 달랐던 아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주변에 있던 누구도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이는 흠칫 경계하듯 물러났다. 아이의 환심을 사보려고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구경하는 듯하면서 다시 나를 경계하듯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마음이 쓰였다.

자리를 떠야 했지만 아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아이, 야생 날짐승 같은 강렬한 눈빛을 가진 아이, 나를 경계했지만 내 곁을 떠나지는 않는 아이였다.


내가 그 곁을 떠나지 못하듯 아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그렇게 우린 일정 간격을 두고 대치하듯 잠시 머물러야 했다. 결국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아이 머리를 치더니 뭐라고 한마디를 하고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손찌검에 놀란 건 나뿐인 건지 아이는 담담했다. 놀란 기색도 없이 흔한 울음도 없이 마치 자연스러운 일처럼 담담해하는 그 모습에 내 마음이 아팠다. 기껏해야 5살 6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얼마나 그런 일이 많았으면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입술 한번 달싹이지 않고 목소리 한번 들려주지 않던 꼬마 아이와는 결국 떠나는 순간까지 제대로 된 인사 한번 나눌 수가 없었다.


내가 떠나며 인사를 했을 때에도 손 한번 흔들어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자리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몇 번이고 뒤돌아 서서 아이가 갔을까 싶어 뒤돌아 볼 때마다 아이가 서있던 곳이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랐을 때까지 그렇게 제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으려나.


아이는 누구나 다 빛이 난다. 단 환경이나 주변인들로 인해 아이들의 예민한 생존 본능은 가끔 그 빛을 억누르고 숨죽인 채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다시 아이가 빛을 뿜어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이른 어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아이가 아이다운 대우와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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