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둘째 날
요가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직원 몇몇은 이미 일어나 이른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카메라 사진도 정리하고 수첩에 간단한 메모도 하면서 6시가 되기를 기다렸는데 그 시간에 인레에 도착해서 숙소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있었다. 아마 그 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까 그 직원의 아침이 일찍 시작된 모양이다. 6시가 다 되어갈 즈음 오늘의 요가 강사님인 멕시코 강사님이 내려와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디서 요가 강습을 하나 했더니 옥상일 줄이야. 생각해보니 마땅히 다른 장소가 없기도 하고 야외 요가는 처음이라 조금 색다른 기분, 그런데 뭐지? 왜 사람이 우리 둘 뿐이지? 설마... 오늘의 강습생은 나뿐인 걸까?
설마가 사실이었다. 그때 그때 신청자가 있을 때만 열리는 요가 강습은 유일한 신청자 나 때문에 열린 특강이었다. 그렇게 호강에 겨운 1대 1 강습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아쉬탕가 요가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선생님의 동작을 흉내 내며 따라가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는데 문제는 햇빛이었다. 강사님 등 뒤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강사님을 자체발광 너무 눈부신 사람으로 만들어버려 쳐다볼 수도 없게 만들었고 동작이 어려워서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동작을 바라볼 수 없어서 따라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햇살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옥상이 금세 너무 뜨거워졌다.
1시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던 요가는 7시가 되어 조식을 먹기 위해 올라온 소수민족 단체 숙박객분들이 올라왔을 때도 끝나지 않아 한쪽에선 왁자지껄, 해는 뜨겁고, 눈은 부셔서 앞이 보이지 않는데 강사님은 한창 요가에 심취해 계신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론 요가의 흐름이 다 망쳐져 버렸다.
그래도 여행으로 쌓였던 여행 독들을 요가로 잠시나마 풀 수 있던 점은 매우 만족할만한 점이었다.
이 파고다들은 누굴 위해 지어지고 있는가?
요가 뒤에는 오늘 아침에 떠나시는 한국인 아저씨와 함께 조식을 먹었다. 어제에 이어 오랜만에 하는 한국말에 방언이 멈추지 않아 꽤나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는데도 아저씨는 묵묵히 들어주시며 간간히 첨언을 하시는 정도로 대화는 이어졌다. 그러다 파고다를 주제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저씨께서는 약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난 그 파고다가 미얀마 사람들이 가난에서 못 벗어나게 만드는 것 같아요. 1년에 3 모작이나 가능하니 먹을 거 풍부하고 날씨가 이렇게 좋고 산과 들도 많고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요. 다들 돈만 생기면 파고다를 짓는 것 같아. 기부받아 지은 금부치로 번쩍이는 파고다는 넘쳐나는데 그런 금부치 아니더라도 파고다가 너무 널렸어. 그런데 사람들 생활수준은 열악하기만 하고 불심도 좋은데 이렇게 사람들이 가난하고 사는 게 힘든데 현실도 둘러 봐야죠. 하여튼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 봐요. "
말씀이 길지 않던 아저씨로선 꽤 긴 한마디셨다. 사실 쉐다곤 파고다를 봤을 때 내 감상 또한 이렇게 화려한 치장으로 붓다를 기리는 게 과연 붓다께서 원하는 방법일지 의문이 들긴 했었지만 사람들의 가난과 그들에 대한 불심 등 다방면으로 연관 지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점이었다. 물론 넘쳐나는 파고다와 관리되지 않아 부서지는 파고다, 또 한편에 계속 새롭게 짓고 있는 파고다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파고다가 과연 필요한 걸까? 파고다를 계속 세우고 있는 자신들에게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조금 삐뚤어진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세상 속에서 살다온 이방인의 눈엔 왜 저렇게 열악하게 살면서 가난을 벗어나는데 힘쓰지 않고 불탑만 짓는 건지 안타까울 수 있는 부분이라 아저씨의 안타까움도 이해가 되지만 가난의 이유가 어디 파고다의 탓만이겠는가. 한 편으론 전 세계에서 국민들의 기부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난해도 사람들이 여유로운 나라, 베푸는 것에 후한 사람들이 넘쳐날 수 있었던 건 내 것을 취하는데 욕심 내기보다 파고다 짓는데 더 열심이던 그 마음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파고다 짓기에 열심인 이들의 진짜 속뜻은 한낱 이방인으로서는 절대 쉽게 알 수 없는 부분 이리라. 다만 아저씨의 말씀처럼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그 말씀에는 나도 조심스레 동의하는 바였다.
인레 맛집
오전은 여행 내내 이어지고 있는 사이클인 빨래를 걷고 빨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빨래를 많이 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옷을 한 두벌 정도는 더 줄여도 될 뻔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빨래는 여행 내내 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인레는 햇볕이 좋아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말라주어서 빨래할 맛이 나는 곳이기도 했다.
빨래도 얼추 마무리되었고 가방 정리도 짬짬이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가고 오늘 점심은 인레 맛집이라고 보았던 곳을 굳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주기 때문에 열쇠를 받아 들고 바깥에 맞는 번호의 자전거를 타고 인레 시장 쪽으로 향하는데 바간에서 바이크 때처럼 또 자전거가 이상했다.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히고 페달을 밟을 때마다 끼이이익하는 굉음이 났다. 멀리까지 갈건 아니라 우선은 타고 가기로 했는데 여간 듣기 싫은 게 아니었다.
쉽게 찾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래 헤매지 않고 시장 인근에서 냐옹 인레이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가게를 들어가자 얼마나 유명한 맛집인 건지 벽면마다 각국의 언어로 메뉴판이 작성되어 있을 정도였다. 허름하고 작은 외관과 내부였는데 맛집의 포스가 스멀스멀 나는 게 기대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시킨 건 샨 누들과 토마토 샐러드. 마음 같아서 더 여러 개를 시켜서 맛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많이 먹는 나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럴 땐 정말 혼자 여행 온 게 안 괜찮아지곤 한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샨 누들과 함께 내오신 절임 채소를 가리키며 미얀마 김치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주머니 응대 솜씨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인을 상대해 보신 건지 짐작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맛은 왜 이 작은 식당에 저 다양한 언어의 메뉴판이 걸려 있는지 충분히 납득되는 맛이랄까 너도 나도 서로서로에게 먹어보게 해주고 싶은 맛,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를 여러 사람에게 쉽게 맛보여 주고 싶은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걸 고작 3000짯에 먹을 수 있다니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 그저 내 양의 한계가 딱 저기까지인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평소엔 대식가들이 그다지 부럽지 않지만 이런 순간엔 정말 끊임없이 맛있는걸 맛볼 수 있는 대식가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하지만 아침에 아저씨께서도 그러시지 않았던가?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 적당하게 맛보고 적당하게 배부를 때 내일을 기약하며 인레 식당의 만찬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