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첫째 날
인레 입성
다행히 22분 정도 걸었을까? 유난히 튀는 외관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주변 주택이나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독보적으로 튀는 건물이 바로 내 숙소 "송 오브 트레벨 호스텔"이었다. 이 호스텔의 사장님을 뵌 적은 없지만 외관 하나만으로도 이 호스텔의 사장님이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꽤나 직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의 숙소였다. 이제까지 꽤 많은 숙소를 다녀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콘셉트가 확실한 숙소는 처음이었다.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알아볼 때 오로지 남녀 혼숙 도미토리룸 밖에 없다는 게 불편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이 만큼 재밌어 보이는 숙소도 없을 것 같아 결국 이 숙소로 선택했는데 구석구석 콘셉트에 충실한 인테리어에 그저 감탄이 절로 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숙소의 가장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직원들의 표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만큼 특이한 외관의 숙소도 처음이었지만 이 만큼 직원들의 표정이 좋은 곳도 처음이었다.
그들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친절한 서비스 정신으로 짓는 미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청소를 하는 직원도 주방에 있는 직원도 프런트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에는 여유로움이 있었고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늘 드리워져 있었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프런트 직원은 딱 거지 꼬락서니나 다름없는 나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에이전시에서 어제 미리 보내 놓은 내 가방을 내어주며 2층에 있는 예약된 방을 안내해주었다. 남녀 혼숙 도미토리 방은 블록 같은 2층 침대로 각각 앞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개별 공간을 확실하게 구별 지어 주고 있어 걱정했던 것보다는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행히 만실이 아니라 적당한 위치의 1층 자리에 내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퀸의 love of my life의 가사 한 구절이 적힌 침대 벽이었다. 다른 곳은 어떤가 하고 빈 침대들을 보자 각각 다른 팝송의 가사들이 한 구절씩 침대 벽에 세겨져 있었다. 구석구석 정말 콘셉트에 충실한 숙소였다.
하지만 숙소 구경은 내 침대까지만 우선은 지독한 이 거지꼴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에게 나는 절인 땀냄새에 내가 질식할 것만 같았으니까. 미리 보낸 가방 속에 껄로에서 빨았으나 비가 와서 전혀 마르지 않아 축축한 채로 넣어져서 하루가 묵혀진 내 쉰내 나는 빨래 처리가 급선무였다. 며칠 만에 하는 샤워에 야생 날짐승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쉬어 버린 빨래도 두 번이나 다시 빨아 햇볕이 잘 들 것 같은 옥상에 널어놓고 나니 벌써 시간은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여행 내내 새벽이고 한낮이고 상관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나가곤 했지만 그 날의 오후만큼은 모든 걸 멈추고 오로지 쉬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빨래까지 널고 복도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2층으로 하얀 백발의 일본인 아저씨가 올라오시는 게 보였다. 이 얼마 만에 보는 동아시아 사람이던가 마치 3일이 아니라 3년 만에 보는 동아시아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일본에서 오셨어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네?..... 아.. 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한껏 업되 있는 외국 여자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백발의 아저씨는 흠칫 놀라 경계하시듯 재빨리 자리를 피하셨다. 내가 너무 아저씨를 당황시켜 버린 건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조절이 안되었던 것 같다. 프런트로 내려가 인레의 보트 투어에 대해 알아보았다. 숙소에서도 연계를 해주고 있었는데 대략 가격이나 코스를 알아보고 내일 개인 에이전시에서도 알아볼 생각이었다. 사실 보트 투어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먼저 인레에 오셨던 부산 내외분들이 카톡으로 인레는 어떤지 정보들을 보내주셨었는데 보트 투어에 대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며 추천해주셔서 조금 내적 갈등에 고민하던 차였다.
보트 투어에 대해 상담하다 보니 새벽 요가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일 가까이 된 여행의 피로와 트레킹의 피로를 요가로 풀어볼까 싶어서 6시에 시작한다는 아쉬탕가 요가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마침 1층에 내려와 있던 요가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는데 멕시코 여성이었던 요가 선생님은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방에서 묵고 있던 장기 투숙객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한국 여행객들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일본인 아저씨를 빼곤 보이는 사람이라곤 백인들 뿐이라 이 곳에도 한국 사람은 찾기 어려운가 보구나 생각했었는데 한국인 관광객을 무려 1명도 아니고 4명이나 만나게 된 순간 너무 반가워 방언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중 세명의 젊은 여행객들은 떠나기 위해 픽업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한 명의 아저씨께서는 내일 아침이면 떠나실 예정이셨다. 걸로 이후로 아시아 사람을 잘 만나기 힘들었고 트레킹에서도 혼자 아시아인이라 소외감이 들었던 터라 1시간 좀 넘게라도 한국어로 이야기할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붙임성도 좋고 성격도 좋던 그들은 이미 숙소 직원들과도 친해져서 한국어로 언니, 오빠, 형, 누나 등의 호칭으로 그들과 꽤나 돈독해져 있었는데 특히 토토라는 남자 직원이 그들이 떠나는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막둥이 어린 남동생처럼 "누나 누나" 부르며 쫒았다니는 모습이 엄마 닭을 쫓는 병아리 같아 보였다.
반갑게 만났던 한국인들도 그렇게 떠나가고 나의 하루도 저물어 가고 옆집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인레에서의 첫 밤도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또 바뀐 새로운 잠자리에 적응이 안된 건지 인레에서의 시작이 설레었던 건지 고된 하루를 보낸 것 치고는 좀처럼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