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5.
새벽의 불청객

껄로 트레킹 둘째 날

by 오늘윤

2019 10월 27일



새벽의 불청객


잠을 자고 있는데 다리 위가 묵직한 게 느껴졌다. 다리를 들어 보기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가위에 눌려본 적도 없는데 이게 가위에 눌린 건가 싶어 잠결에 다리를 더 움직여보는데 무언가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떠 다리위를 쳐다보니 어둠 속에서 활짝 열린 창가에 들어온 빛 사이로 검은 고양이의 형체가 보이는걸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비명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이 대법당에는 10명이 넘는 트레킹 인원이 자고 있었다는게 떠올라 번뜩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다행히 성대보다 손이 빨랐다. 발을 빼보려고 애는 쓰는데 어찌나 묵직한지 좀처럼 발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간신히 발을 빼냈는데도 고양이는 바위처럼 꼼짝달싹 하지 않고 숙면중이었다. 발은 어찌어찌 빼냈는데도 놀라서 쿵쾅대는 심장이 가라앉을 생각을 안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어제 10시가 안돼서 잠들었으니 4시간도 못 잔 상황인데 내일도 한참을 걸어야 했기에 충분한 수면은 필수 였지만 잠은 고양이를 발견한 순간부터 싹 달아나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기전부터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고양이의 예고편


다시 잠들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도통 잠은 오지 않고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거렸다. 가슴 뛰던 게 좀 잔잔해질 즈음 다시 또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우다다다" 대법당 나무 바닥이 울러 댔다. 새벽 3시 동자승들이 새벽 공부를 위해 나가는 소리였다. 새벽 4시 즈음부터는 스님들의 기도시간, 5시 즈음부터는 스님들의 식사시간으로 깊은 산속 절의 아침은 이미 분주했다. 뉘엿뉘엿 해가 떠오르는 기미가 보이자 나도 밖에 나가 깊은 산속의 아침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차가운 공기, 새소리, 스님의 발자국 소리밖에 없는 고요한 아침을


미얀마의 스님들은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시는데 새벽 5시 즈음에 한 번, 오전 10시 즈음에 한 번 하신다고 한다. 점심 이후에 식사를 안 하시는 것은 더운 미얀마의 날씨 때문에 상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님들의 탁방공양시간도 9시 즈음에 보통 이루어진다.



6시가 넘어가자 트레킹 멤버들도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고요한 아침 감상 시간도 함께 끝이 났다. 분주한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 나도 싸늘한 아침 공기에 경직되고 피곤이 덜 풀린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보며 아직 많이 남은 트레킹 일정을 대비해보았다.


7시가 되자 아침 식사가 다 차려졌다. 하나, 둘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이 시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인사를 나눴다. 뭐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네덜란드 남자에게 건내본 내 인사는 또 스리슬쩍 무시당했지만 그의 반응엔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나도 굳이 다시 한번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헛수고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제 보이스 번역 어플기로 아주 약간 말을 하게 된 벨기에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괜찮은지 물어왔다. 얼굴 상태가 영 아니었나 보다. 고양이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은 이나가 나를 대신해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매우 걱정스럽다는 듯 오늘 괜찮겠냐고 물어와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야말로 걱정이었다. 오늘 과연 괜찮을까?



트레킹 다시 출발


여전히 절밥은 맛있었지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입안이 까끌거렸다. 미얀마에 온 뒤로 처음 입맛이 안도는 식사였다. 하지만 오늘 갈 길은 아직 멀었고 컨디션은 난조인데 밥심까지 없으면 어디서 주저앉아 사람들에게 짐이 될지 모를 일이니 우걱우걱 쑤셔 넣었다. 밥을 먹자마자 제리는 어서 출발해야 한다며 재촉에 간신히 양치를 하고 돌아왔더니 이미 다들 떠날 준비를 하고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출발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출발부터 어제보다 훨씬 몸이 무겁고 힘이 들었다. 발바닥도 아파왔다. 어제는 문제없던 발바닥인데 오늘따라 신발 고무창 바닥이 유난히 딱딱하게 느껴졌다. 어제는 앞에 가는 팀을 쫒아가라면 쫒아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오늘은 이나와 로미가 앞에 가고 있다고 해도 쫒아갈 여력이 안됐다. 어제만큼 따가운 햇빛에 땀은 또 줄줄 흐르는데 이게 더워서 흐르는 땀인지 몸이 좋지 않아 흐르는 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제는 그렇게 걸어도 끄떡없던 허벅지와 종아리가 시작부터 쑤셔왔지만

'버텨야 한다 버텨야 한다.' 라고 되내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반가워요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인레 도시세를 내기 위해 멈춰 선 곳에서 껄로에서 만났던 중화요릿집 사장님을 제외하고 처음 보는 동아시아 여자분을 만나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캐나다에서 오셨다고 한다. 어디서 왔냐고 되물으시는 물음에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어머? 한국분이세요?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아...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이던가. 고작 며칠 만에 보고 듣는 한국 사람과 한국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분명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갑자기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캐나다인 남편과 둘이서 트레킹을 오셨다는 한국인 여성분은 한국 사람을 며칠 만에 처음 봐서 너무 반갑다는 내 인사에 앞에 한국 남자분들도 트레킹을 하고 계셨다고 가다가 또 만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껄로 슈퍼 과자들

캐나다에 사시는 한국분이 말씀하신 한국 남자분들은 얼마 가지 않아 곧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슈퍼에 들러 잠시 목을 축이는 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을 때 한국 아저씨 두 분이 앉아 목을 축이고 계셨고 그 곳은 어제처럼 트레킹족들이 쉬어가는 휴게소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는 한국 아저씨 일행 말고도 나와 함께 새벽을 보냈던 스웨덴 커플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머지 한 명 이태리 여성은 2박 3일 팀에 합류해 있던 멤버라 이미 어제 다시 만난 터였다. 껄로에 오는 이유는 거의 트레킹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번 만난 사람은 이렇게 종종 다시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한국 아저씨들을 발견하는 순간

"안녕하세요"라고 나도 모르게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인사를 해버렸다. 갑작스러운 한국어 인사에 당황한 아저씨들은


"아... 아 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네:)"

"혼자 왔어요?"

"네:)"

"좋은데 많은데 뭐 이렇게 힘든데 왔어요. 그나저나 난 저기서 걸어오는데 여기 미얀마 소수민족 아가씨인 줄 알았어"

"네? 제가요?"

"아가씨랑 되게 비슷하게 생긴 소수민족들이 있어요. 여기 그래서 그 사람인 줄 알았지"

"아... 네... 한국에서 오셨어요?"

"우린 양곤 사는데 놀러 왔어요."


일본 사람은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몽골에 갔더니 한국 사람이 몽골사람으로 착각하고 미얀마에 왔더니 이번엔 미얀마 소수민족인 줄 알았다고 하고 어딜 가든 얼굴 만큼은 현지인으로 살기 좋은 얼굴인가 보다.


아이는 이방인을 보자마자 과자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가진 게 없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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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막바지


남은 트레킹 길도 쉽지 않았다. 산속 덤불숲을 지나고 땡볕 아래 길을 걷고 오르막 내리막 도로를 왔다 갔다 하며 트레킹은 어제만큼이나 험준했다. 나중엔 다리가 내 힘으로 걷는 건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건지 모를 기분이었다. 힘에 부쳐하는 내 모습을 본 제리가 괜찮냐고 물으며 좀 힘들다는 말에 어제보다 휴식시간 갖는 횟수를 두세번 정도 더 늘려준 덕에 힌 숨 돌릴만 해졌다.


몇 번의 휴식 중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쉬게 되었을 때에는 마침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2박 3일팀도 함께 쉬게 되었는데 체력이 좋은 이나가 갑자기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버렸다. 그 모습을 본 남자들은 서로 질세라 나무 타기를 시작하며 나무 타기 체험학습처럼 변해버렸다. 체력들도 좋지, 그러나 가만히 구경만 하고 쉬던 나도 엉겹결에 분위기에 휩쓸려 도전해 보았지만 택도 없는 도전이었다. 나 이외에도 여러 여자들과 남자들이 도전했지만 이나만큼 빠르고 능숙하게 나무를 오르던 사람은 없었다. 그 날의 나무타기의 승자는 이나였다.



12시쯤 되었을까? 오르락 내리락 하던 산길은 드디어 끝이 난것 같았다. 그 뒤로 펼쳐지는 평평한 길과 멀리서 보이는 인레 호수로 생각되는 호수의 모습에 우리의 트레킹도 막바지에 다다라와 감을 알 수 있었다. 마침 정말 더위와 컨디션 난조로 한계가 느껴지려던 참이었다. 제리가 다가와 조금만 더 가면 곧 끝이니 조금더 힘내라고 응원을 건냈다. 원래는 이 정도 트레킹에 이렇게 빨리 무너질 정도의 체력은 아닌데 너무 빨리 지쳐버린 체력에 속상한 마음과 그런 나를 신경 써주고 있는 제리에게 고마운 양가의 감정이 뒤섞였다.


1시쯤 되어가자 티비나 인터넷에서만 보던 수상가옥들의 모습이 점차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제리는 한 수상가옥을 가리키며 오늘 저 곳에서 점심식사 후 인레로 가는 보트를 타게 될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제 1박 2일의 트레킹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흔히 인레라고 부르는 곳의 정식 지명은 냥쉐 이지만 인레 호수가 유명하다보니 인레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흔하다. 냥쉐, 인레 어떻게 불러도 통하는 지명 이름이다.



가까워진 이별


트레킹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수상가옥 바깥에 마련된 야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고되던 다리가 의자에 자리를 잡자마자 맥이 탁 풀리며 찌릿찌릿해졌다. 점심이 나오기 전 더위와 갈증을 식히기 위해 가게로 수상가옥에 찾아가 물과 콜라를 시켰다. 잠시 뒤 마지막 만찬이 차려졌다. 아침엔 피곤해서 입안이 까끌거리더니 오전 내내 걸었던 트레킹이 힘들긴 했는지 밥이 잘 넘어갔다. 반찬으로 나온 모닝글로리 무침이 특히 맛있었다. 다들 너무 덥고 힘들어서 그런지 입맛이 없는건지 잘 먹지를 못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제리가 찾아와 이제 보트만 타고 인레에 도착하면 트레킹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 된다며 다들 고생 많았으며 남은 여행 잘 마치길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를 미리 건냈다. 다들 제리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고마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제리였다. 꾸준히 챙겨주고 신경써주었던 제리의 배려를 나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가 없었더라면 트레킹을 무사히 이렇게 마치긴 어려웠을 것라는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내 이름은 잘 외우지 못해서 자꾸 한국 사람이라고 미스코리아라고 불러대서 망신스럽게 했던것만 빼면 제리에겐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 뿐이다.


1박 2일만 걸어도 고된 그 산길을 제리는 일주일에 몇번이나 그 낡은 샌들 한 켤레로 오르내렸을까? 그렇게 힘들게 오르내리면서도 우리가 낸 비용의 10%도 챙겨가지 못한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2020년이면 인근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될거라며 한껏 들떠 이야기하던 제리가 지금쯤이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어 산길이 아니라 대학으로 향하고 있을까? 그가 향하는 길이 어디가 됐건 행복만이 가득 했으면 좋겠다.



인레로 향하다


우리가 탈 보트는 얇고 기다란 모터 보트로 한명씩 줄지어 앉을 수 있는 좁은 보트였다. 어찌나 쉽게 흔들리는지 한명씩 탈 때마다 당장이라도 보트가 뒤집힐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배는 9명의 사람을 싣고 출발했다. 시끄러운 모터소리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해는 뜨겁지만 호수를 가르고 내달리는 보트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열기를 조금은 식혀주었다.


그대로 인레로 직진할 줄 알았는데 수상휴게소? 같은 곳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미얀마 젊은이들이 모여 둘러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며 청춘을 노래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청춘들이 모여 부르는 노래라는게 만국 공통 청춘의 노래 아니겠는가. 제리는 어느새 그곳에서 구운 생선 한마리를 군것질 거리 처럼 사서 우리에게도 먹어보라고 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진 않았다. 그 사이 벨기에 남자는 갑자기 입수를 하고 나머지는 기념사진을 찍으며 제각각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휴식에을 즐기고 있었다.



고마웠다고


다시 내달린 우리의 보트가 가장 먼저 정차한 곳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상가옥 리조트였는데 내린 사

람은 네덜란드 여자 혼자였다. 네덜란드 남자는 인레 시내에서 바이크를 빌려 타다 오겠다고 내리지 않는 바람에 그렇게 그녀만 먼저 이별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다시 20분은 더 달려 도착한 인레의 선착장에서 우리는 이제 모두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모두와 의례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이나와 로미에게 향했다.


"이나, 로미 당신들을 만난건 행운이었어요. 당신들이 없었다면 외로운 트레킹이었을거에요"

"오~ 윤오, 우리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고 재밌는 사람이에요.

독일에 오면 연락해요."

"한국에 와도 연락해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이나와 로미를 향한 나의 인사는 진심이었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무척 힘든 2일간의 시간이었을거란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별로 한게 없다고 했지만 이미 존재 자체만으로 많이 힘이 되어준 그녀들에게 저 짧은 인사말로나마 내 마음이 전해졌으려나, 그날 그녀들의 표정을 떠올려 보면 아마도 잘 전해진듯 하다.


인레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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