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둘째 날
인레 라이딩
인레는 참 작은 지역이다. 바간 같은 경우는 넓고 이동거리가 길어서 바이크가 필수였지만 인레에서는 자전거 한 대와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다니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자전거로 동네 구경으로 하루를 마감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벗어나 구글맵도 신경 쓰지 않고 정처 없이 동네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누비고 다녔다. 어제 내가 내렸던 부둣가도 가봤다가 꽤 멋진 외국인 사장님이 인사를 건내주시던 펍이 있던 골목도 들어갔다가 자전거를 타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로를 발견했다.
어느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인지는 몰랐지만 미얀마 도로답게 차는 별로 없는 꽤 한가로운 도로라 자전거 타기에는 이 만큼 안성맞춤인 곳도 없었다. 양쪽으로 인레호수가 흐르는 도로를 마음껏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질주했다. 노을이 지기 직전의 시간, 도로를 달궜던 열기도 식어갈 때라 도로 옆 가로수 덕에 적당한 그늘과 선선한 나무 바람에 마치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심취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길게 이어진 도로가 어디까지 다다를지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껏 마음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일 뻔했지만 노을이 져가는 하늘 덕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보니 도로가 꺾여지는 부분에서 자전거의 머리를 돌려야 했다. 아마 시장만 나와서 바로 이곳에 도착했었더라면 결국은 호기심의 승리로 나는 저 도로를 한 없이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을진 시간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호기심을 채우고 싶을 만큼 도전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 지인들은 항상 내가 너무 위험한 도전을 한다고 생각하며 여행 전부터 다녀올 때까지 걱정을 한 보따리씩 늘어놓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만큼 겁쟁이에 안전 주의자도 없어서 나름 좋은 것만 취하고 위험한 도전 같은 건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매번 말하지만 곧이 곧대로 믿어준 이는 아무도 없다. 진짠데...
슬슬 뉘엿뉘엿 산등성이 너머로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해님의 퇴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간에서만큼 그림 같은 풍경은 아니지만 인레에서는 인레만의 또 멋이 있었다. 이렇게 또 10번째 미얀마의 해는 넘어갔고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던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이 실감 났다.
미얀마에서 발견한 인도
해가 넘어가고 노을이 곱게 하늘을 수놓고 그 말은 곧 주위가 컴컴해질 거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어서 돌아갈 마음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문득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레 호수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 누구는 빨래를 하고 누구는 머리를 감고 또 누군가는 그 옆에서 물놀이로 한창이었다.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보던 풍경이었다. 물론 수질적인 면에서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크게 났지만 어쨌건 한 물줄기로 바로 옆에서 저 세 가지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분명 인도에서 보았던 모습과 충분히 겹쳐보일만 했다.
여행 내내 문득문득 인도를 참 많이 닮았다 라고 느끼곤 했었다. 바간에서 유적지를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서남아시아에서 온 듯한 외모의 미얀마인들도 꽤 만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순간순간 인도와 닮았다고 느꼈던 순간은 꽤 여러 번 있었다. 아마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다 보니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같은 나라의 식민지에 있었다는 아픔 또한 무시하지 못할 부분일 것이고 미얀마를 여행하며 미얀마의 다채로운 모습에 지루할 틈도 없이 여행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이국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하다니 미얀마 다채로운 매력의 끝은 어디일까?
갠지스 강은 수질이 나쁘기로 정평이 나있으나 인레의 호수의 수질도 그렇게 썩 좋진 못하다 인레의 호수는 붉은 흙탕물이다. 그래서 인레의 숙소에서는 흰 빨래는 하면 안 된다는 여행자들끼리의 팁이 오고 가곤 한다. 정수시설이 좋지 못한 탓에 붉은 흙탕물이 제대로 정수되지 않는 탓이다. 물론 그들의 식수이고 생활수이지만 외국인은 확실히 조심하는 편이 좋다. 물론 우리 숙소의 경우 정수시설이 괜찮았는지 내 흰 빨래엔 문제가 전혀 없었지만 다른 분들 숙소에선 연한 노을색 물이 나왔다고 한다.
보트 투어 예약 & 저녁식사
다행히 정말 컴컴해지기 전엔 돌아올 수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키를 프런트에 반납하고 하루 종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내일 보트 일출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누구는 별로라고 하고 누군 좋았다고 하고 뭐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으니 그렇다면 내가 가봐야지. 낮에 시장에 있는 여행사 에이전시에 들러서 코스와 가격대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숙소에서 제공하는 코스와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일출과 아침, 점심 제공까지 해주는 투어의 가격은 16,500짯이었다. 부산 내외분들은 새벽에 인레에 도착하셔서 버스 내리는 곳에 와있던 호객꾼에게 꽤나 싼값에 투어를 하셨었다고 나에게 미리 언질 해주셨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인 듯하고 보통은 이 정도 가격으로 보트 투어를 즐길 수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내 옆자리의 스페인 남자와 어제 나 때문에 당황하셨던 일본인 아저씨가 보트 투어를 다녀오신 듯했기에 마침 앞에 지나가던 일본인 아저씨께 보트 투어가 어떠셨는지 여쭈었다. 어제보다는 훨씬 경계심이 풀린듯한 아저씨께서 본인께서는 꽤 만족스러웠고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귀여운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며 오늘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던 일본에서 챙겨 온 스티커 중에 남은 한 장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귀여운 선물에 괜스레 어린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꽤 많이 가져오셨다는데 오늘 원 없이 나눠 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에 물꼬가 트이고 후에 저녁을 먹으러 올라간 옥상에서 아저씨를 다시 만나 합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벽엔 날씨가 추우니 겉옷이 필요하다던가 낮엔 햇빛이 너무 세니 모자는 필수일 것 같다던가 오늘 코스로 어딜 다녀오셨다는 이야기 등의 팁을 알려주셔서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물론 보트 투어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 건 아니었다.
왜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어느 코스로 여행을 다녔었는지 미얀마의 아이들이 참 예쁘다라던가 등등의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저씨와 단번에 친해졌다. 아저씨께 왜 혼자 오셨냐 물으니 1주일 정도 휴가가 생겼는데 부인은 하와이나 발리를 좋아하지 미얀마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혼자 올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는 나대로 회사를 관두고 혼자 길게 여행 와보기가 꿈이었다고 말씀드리자 굉장히 멋진 선택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그 말씀에 동의했다. 미얀마행은 굉장히 멋진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