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21. 쇼핑투어의 끝은 어디인가?
인레 셋째 날
2019 10월 29일
쇼핑투어
쇼핑투어는 끝나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은 없지만 보트 투어 만으로 충분히 패키지여행이 나와 맞지 않는 여행법이란걸 알았다. 끝도 없는 쇼핑투어와 정작 보고 싶은 곳에서는 짧은 시간제한으로 뭐 하나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코스 또한 직물 판매점이었다. 처음에 보여주던 실 뽑고 베틀 짜는 모습이 흥미롭긴 했지만 새벽부터 이어진 쇼핑투어는 억지 리액션도 안 나올 만큼 피로해져 있었다. 역시 직물 짜는 모습 뒤에는 직물 판매점으로의 안내였다. 그리고 역시 매우 비쌌다. 수공예 제품이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미얀마 물가를 감안할 때 그리고 이 코스를 생각할 때 너무 비싼 금액이었고 우린 그렇게까지 비싼금액을 지불할만큼 넉넉한 여행객들은 아니었다. 나만 지친 건 아닌지 나머지 셋도 역시 반응이 시큰둥했다.
한나에게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더니 한나 또한 자신도 그렇다며 나와 같은 푸념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와 선물
이 투어를 짠 사람도 이 정도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한 건지 여섯 번째 코스가 또 쇼핑센터였다면 배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 주저 앉아 들어가지 않겠다고 시위라도 했을 것이다. 다음은 다행히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어 나의 시위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2시가 될 때까지 7시간 중 5시간은 하지도 않는 쇼핑 투어로 기력을 다 썼더니 기가 쪽 빠져 있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걸까? 점심식사는 대접 밥에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진수성찬이었다. 열심히 쇼핑투어에 끌려다니다 먹어서 그런지 밥맛은 유난히 꿀맛이요. 반찬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대접 밥그릇은 비워져 있고 생선은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비건이던 스위스, 영국 친구 둘은 생선은 당연히 건드리지 않고 밥은 반도 먹지 못한 상태로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나의 끝없이 들어가는 양에는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비건들 앞에서 나의 육식이 너무 야만인같이 느껴져 앙상하게 남은 내 생선의 뼈다귀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날 하루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걸 뽑자면 단연코 저 튀긴 생선이었던 터라 아무래도 나는 이 입맛을 바꾸기전까진 야만인인 채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우릴 맞이했던 여성분이 타나카를 해주겠다고 도구를 챙겨 나왔다. 미얀마에 온 지 11일째였지만 너도나도 하고 있는 타나카를 발라본 적은 없었다. 길거리에서 누가 발라 주겠다고 했었지만 찜찜한 마음에 거절했었다. 돌판 위에 물을 뿌리고 나무토막을 갈자 하얀 물이 나왔는데 아마 그게 타나카의 원료인 듯했다.
네 명이 돌아가며 그녀에게 얼굴을 내어주었다. 바르는 순간 샤~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미얀마를 떠나는 날까지 타나카를 발라볼 일은 이제 없겠구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그녀의 선물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밖에 나가 연꽃 네 송이를 뚝뚝 따더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연꽃 목걸이를 만들어 우리 네 명에게 걸어주었다. 밥이나 먹고 가는 곳인줄 알았는데 이제껏 갔던 그 어느 코스보다 감동이었다.
연꽃 선물을 받자마자 이번엔 카누 체험이란다. 작은 카누는 우리가 탔던 쪽배보다 더 좁고 작아서 한명씩 올라탈 때마다 그 흔들림이 훨씬 심했다. 입에서 수선스러운 소리가 멈추지 않고 터져나왔다. 기분상으론 당장 배가 뒤집어 진대도 이상할 일이 아닌데 용케도 무사히 넷 다 올라타 앉을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문제는 노를 젓는 것인데 티비로 보기만 하던 노젓기가 그렇게 힘든줄은 몰랐었다. 길잡이 없이 넷이서 방향을 잡고 집 앞 호수를 한바퀴 도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노를 잘못 저어 앞에 앉은 한나한테 붉은 호수물을 몇번씩 튀겨대기까지 했다. 한 두번도 아니고 몇번이나 물을 튀겨대자 흘기는 눈으로 뒤돌아 보던 한나는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배가 흔들릴때마다 벌어지는 나의 수선에 결국 무너져 흘기던 눈이 초승달이 되어 웃음으로 넘어가버렸다.
사실 그 날 가장 가까워졌던 사람은 영국인 한나였다. 트레킹에서 외국인들 사이에 껴서 호된 맛을 좀 보고 난 뒤라 보트 투어를 하러 가면서도 조금 걱정했던 게 있었지만 한나는 처음부터 붙임성이 좋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싱가포르 친구는 속을 모르겠고 스위스 친구는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워진 사람이 한나였다. 어느 부분에서 코드가 맞았던 건진 모르겠지만 그 날 하루종일 한나를 웃겨댄건 의도치 않게 매번 나였고 조금 익숙한 사이가 되어 있을땐 스위스 친구까지 웃겨버리는 코메디언이 되어 있었다. 결국 헤어지는 인사를 나눌 때 때에 한나로부터 넌 최고로 재밌는 사람이었다는 이유모를 인사까지 받게 되었는데 아직도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 투어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 밥까지 먹었으니 다시 쇼핑투어는 이어졌다. 일곱 번째 코스는 시가샵이였다. 뭐 무슨 다양한 향이 나는 시가를 보여주고 마는 방법도 보여주고 시연까지 해볼 수 있게 해 주는데 나머지 셋은 시연도 서슴없이 즐겼지만 담배 냄새에 약한 나는 그 사이에 껴서 독한 시가 냄새에 죽을 맛이었다. 애연가들에게는 환영받을만한 코스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잘 먹은 밥도 채 할 것 같은 곳이었다.
다시 배에 올랐을 때는 사실 쇼핑이고 투어고 그냥 얼른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이젠 돌만큼 돈 것 같은데 그냥 숙소 소파에서 퍼질러 있다가 양곤 가는 버스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직도 투어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뱃머리가 다다른 곳은 인레의 선착장이 아니라 마잉툭 우든 브릿지였다.
Maing thouk wooden bridge
이번에도 돌아올 시간을 정해주고 우리는 그렇게 내려져 정처 없이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고도 시간은 많이 남아 그 인근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보이는 학교에서 꽤나 떠들썩한 소리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작은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한가득 몰려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저 넘치는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그런 기적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고 기운찬 아이들을 부러운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외국인이 있을 뿐이었다. 지친것도 지친것이지만 사실 동네를 완전히 구경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고 그렇다고 긴 시간 뭘 보기에도 그다지 할 것이 없는 동네였다. 그 다리를 건너보라고 코스로 잡은 거라면 더 짧은 시간을 주는 게 어떨까 싶을 만큼 이도 저도 아닌 코스였다.
여덟 개의 코스를 끝으로 드디어 우리의 일출 보트 투어는 아니 쇼핑투어는 끝이 났다. 인레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뱃머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누가 나에게 인레에서 보트 투어 어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보트를 따로 예약해서 일출만 보고 오라고 아주 단호하게 뜯어 말려줄 것이다.
선착장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우릴 태우고 왔던 픽업차가 우릴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4시 반이 넘어있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하루라 그런지 체감상으로는 하루가 다 끝나 있을것 같은데 5시도 되지 않았다는게 그저 놀라울따름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지만 뿔뿔이 헤어지지 않고 1층 테이블에 잠시 모여 앉았다. 하루였지만 쇼핑투어의 피로를 같이 겪어서인지 짧은 시간만에 꽤 가까워져 있었다. 마지막 율무차를 꺼내 피날레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는데 한나가 유독 마음에 들어하며 이름이 뭔지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글쎄, 난 우리 동네 마트에서 샀는데...이걸 어디서 살 수 있다고 해야하나? 인사치례인가 했지만 한나는 꽤 진심이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 담터 율무차 패키지를 찍어서 아마존에서 찾아보라고 알려주긴 했는데 잘 찾았으려나?
하루 종일 쇼핑투어의 피로를 같이 느껴서인지 그 날 저녁엔 새벽의 어색함은 어디로 가고 넷은 꽤 가까워졌고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서로 나이를 밝히게 되었는데 세상에! 서로의 나이에 너무 놀라버렸다. 역시 외국인들끼리 서로 나이 가늠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듯 하다. 그 와중에 토토는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인 중에서도 유난히 어려 보인다라며 거들어댔다. 아무래도 전에 떠난 한국 친구들이 토토에게 어지간히 잘해줬던 모양이다.
아직 인레에서 시간이 있던 그녀들이 내일 뭘 하면 좋을지 코스를 정할 동안 나는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용품을 챙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다들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 싱가포르 친구는 자전거를 빌려 나갔고 스위스 친구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누나 누나하고 따르던 토토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1일 1팩을 목표로 챙겨왔지만 결국 짐만 됐던 마스크팩도 프런트 직원에게 나눔했다. 토토에게도 뭔가 주고 싶었지만 줄 수 있는게 없다는게 아쉬울 따름, 그렇게 한나, 송 오브 트레벨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버스회사에서 보낸 픽업차에 몸을 실었다.
작은 마을이니 만큼 바간처럼 오랜 시간 픽업차를 탈 필요는 없었다. 몇 분 가지 않아 내려서는 픽업 차를 탄 사람은 1000짯을 내고 확인을 받은 뒤에야 차에 올라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말로만 듣던 차와 빵까지 챙겨주고 남자 승무원분까지 함께 탑승해서 여러 가지로 많은걸 챙겨주시는 덕에 vip 버스를 탔다는 기분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매번 이동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은 똑같았지만 이번엔 진짜 마지막 이동이라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달랐다. 이렇게 미얀마의 네 번째 여행지와도 이별이구나. 이제 다음날만 지나면 미얀마와도 작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