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셋째 날
새벽 준비
전날 밤부터 꽤 부산스러웠다. 29일은 인레 보트 투어를 하는 날이기도 했지만 인레를 떠나는 날이라 보트 투어를 위해 새벽에 나가면서 체크아웃까지 동시에 해야 했기 때문에 배낭여행자의 일상인 짐 싸기로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10일 넘게 여행하며 짐이 그래도 아주 약간은 줄어들어 준 게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방은 터질 듯 빵빵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려면 일찍 잠들어야 했지만 습관이 들었는지 자전거로 온종일 그렇게 질주하고 다녔으면서도 1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도미토리라 알람을 크게 켜 둘 수도 없었지만 얼마나 긴장하고 잔 건지 5시에 번뜩하고 눈을 떴다.
모두가 잠든 도미토리룸 조심스럽게 배낭 두 개와 크로스백을 조심스레 밖으로 들고나갔다. 복도의 빛이 방에 들까 봐 재빨리 문을 닫아야 하는데 큰 배낭을 둘러매자마자 "엌" 소리가 절로 나와 빛보다 더 큰 실례를 할 뻔했다.
밖에서 짐을 빼고 넣고 어젯밤에 그 난리부르스는 뭐였단 말인가... 결국 새벽 나절 다시 짐을 빼고 넣고 반복하며 아침 보트 투어 나설 준비를 마쳤다. 가방은 1층에 있는 가방 보관 선반에 올려둔 채 어제 일본인 아저씨의 조언대로 가벼운 바람막이를 걸치고 나니 함께 투어 할 사람들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투어 멤버는 여자 네 명이었다.
스위스인 한 명, 영국인 한 명, 싱가포르인 한 명, 한국인 한 명, 국적도 제각각 나이도 제각각 5시 반이 되자 숙소 앞에 우릴 태우고 부둣가로 가줄 픽업트럭에 올라타고 부둣가로 도착하니 인레에 올 때 탔던 배와 비슷한 작은 쪽배 한 척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일출
첫 번째 코스는 일출이었다. 생각해보니 여행지를 떠날 때면 언제나 마지막 날 아침 코스는 일출이 꼭 한 번씩은 껴있는 것 같다. 물론 이 경우에는 일출을 의식해서 신청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출 전에 코스가 하나 더 있었다. 갑자기 잘 나가던 배 앞에 한 어부가 묘기를 보이고 배는 속도를 늦추어 주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진기한 광경에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사진을 두세 컷 찍자 그 묘기를 부리던 어부는 다가와 돈을 요구했다. 엥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뭐 돈을 안 주면 보내주지 않을 태세라 돈을 건네긴 했지만 예고도 없이 요구한 청구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 묘기를 부렸던 사람이 취한 포즈는 옛날 어부들의 포획방법으로 지금은 그런 방법으로 고기를 잡지 않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저런 묘기를 보여주고 사진을 찍게 한 다음 사진을 한 컷이라도 찍은 사람에겐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1000짯 정도를 주는 게 보통인 것 같다.
가짜 어부 곡예사의 묘기에 삥도 뜯겼겠다. 이젠 진짜 일출 감상을 위해 우리 보트 투어 기사님은 달달달 거리던 배의 모터도 끄고 조용히 노를 저어 한편에 정차시키셨다. 저 구름 너머에서 붉은빛이 어울렁 거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해는 떠올랐다. 인레 호수에 비치며 떠오르는 일출은 불타오르는 올챙이처럼 그러나 솟아오르는 그 위엄만큼은 용처럼 뻗어올랐다.
우리가 일출을 향해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 보트 기사님은 뒤에서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맨뒤에 앉았던 내가 뒤돌아보니 아까 오면서 들렀던 가게에서 사 왔던 게 우리의 아침 식사였던 모양이다.
그럼 맛은 어땠느냐 하면 솔직히 이쯤 오면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미얀마에서 고무타이어를 튀겨줬어도 맛있다고 하지 않았을런지 저 삼각형 튀김은 크로켓? 같은 맛이 나서 맛있었고 저 커피같이 생긴 건 인스턴트 짜이 맛인데 그게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모두 잘 먹다 보니 미얀마에서 살이 포동포동 쪘었는데 미얀마 인레 시장에서 샀던 은반지를 약지에 맞춰서 사 왔는데 한국에 왔더니 중지에도 헐떡일 만큼 미얀마에선 뭐든 참 잘 먹고 많이 먹고 다녔다.
보트 투어? 쇼핑투어?
보트 투어의 일정은 일출까지는 참 좋았었다. 분위기도 좋았고 새벽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코끝이 시큰해지는 그 기분마저도 좋았다. 어슴푸레하던 하늘도 좋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진 코스는 이게 말로만 듣던 패키지 투어에 가면 돈다는 쇼핑투어인 것일까?
처음은 은세 공사의 작업실이었다. 처음에 은을 어떻게 추출하고 어떻게 은세공을 하며 장신구 등을 만드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듯하더니 어느새 우리를 진열대가 있는 옆방으로 안내해 비싼 은목걸이나 장신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수제품이고 투어 코스 중에 껴있는 곳이다 보니 가격은 어마 무시했다. 영국인 한나와 둘이서 너무 비싸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릴 너무 지갑이 두둑한 관광객으로 본건 아닌지 우리 하룻밤에 8000원짜리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인걸 미리 알려드렸어야 했나
직원 아주머니는 입술이 마르고 닳도록 영어로 설명해주셨지만 그 누구도 제품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예쁜 건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우리가 지불하기엔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솔직한 말로 그 돈으로 금은방에서 24k목걸이를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두 번째는 목이 길어야 미인이라는 파다웅족 아주머니들을 앞세운 잡화점이었다. 티브이 다큐에서나 보던 분들인데 실제로 보게 되니 처음엔 그저 신기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체험용 목걸이를 차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무척 가볍게 개량된 거라고 하는 체험 목걸이의 무게는 납덩이처럼 승모근을 짓눌렀다. 신기한 마음에 착용해본 것이지만 잠깐 끼고 있는 사이에 승모근은 바짝 긴장하고 목은 갑갑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을 내 몸으로 체험하고 나자 미소 지으며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다르게 보였다.
누가 강제로 씌운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답기 위해 너도나도 하나씩 늘려가며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름다움이 도대체 뭐길래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하기사 아름다움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이 어디 미얀마 파다웅족 뿐이겠는가? 발이 다 까지고 부르트고 척추에 무리가 가고 다리가 퉁퉁 부으면서도 신어대는 하이힐이야 말로 현대사회의 저 목걸이 같은 것이리라
세 번째 코스는 인데인 파고다였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볼 시간을 주고 우리끼리 올라가 구경하고 오는 코스였는데 그 길이가 꽤 길었다. 체감상으론 200m 이상은 된 듯. 뭐 앞에서도 내내 언급했지만 나는 불교에 뜻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파고다에 흥미가 있는 사람도 아니라 여행 내내 보아온 파고다가 이번이라고 갑자기 새롭게 너무 신비롭고 새로울리는 없었다. 그래도 1054개의 탑이 숲을 이루듯 파고다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조금 재밌게 느껴지긴 했다. 좀 더 멀찍이에서 봤더라면 작은 숲처럼 옹기종이 모인 탑들의 모습이 더 멋지게 보였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파고다 숲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걸로 만족했다. 하지만 그 종횡무진도 어느새 바짝 달궈진 바닥에 발이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그늘 아래로 대피해야 했다.
보통 보트 투어 에이전시를 찾아가면 이 인데인 파고다를 코스에 넣느냐 넣지 않느냐로 가격이 꽤 차이가 난다. 내가 알아봤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웃돈을 줘야지만 갈 수 있는 코스라고 못 박는 사무실도 있었다.
네 번째는 쇼핑을 한 텀 쉬었으니 다시 쇼핑투어다. 이번엔 어느 시장이었다. 인레의 시장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인지 외국인의 모습이 꽤 보였다. 인레 시장엔 없던 호객 군까지 등장하고 은제품을 사라고 너도나도 들러붙었다. 가격은 인레 시장보다 훨~씬 비쌌다. 미얀마에서 은제품을 살 때는 검정 돌에 비벼주며 은빛이 나는 걸 확인시켜주고 사도록 하는데 어제 분명 그렇게 해서 인레 시장에서 은반지를 하나 샀었건만 팔랑귀는 어제의 경험을 잊고 홀랑 반지와 귀걸이를 흥정해서 샀는데 하루도 못 끼고 귀가 간지럽고 반지를 낀 손가락이 검게 변해서 당장 버려야 했다. 검정 돌에 확인 안 시켜줄 때 의심을 해봤어야 하는데 내 불찰이다.
인데인 파고다 때와 마찬가지로 머물 시간이 주어졌는데 일찍 사기를 당하고 시간이 넉넉히 남아 시간 구경을 다니기로 했다. 넷 다 뿔뿔이 흩어져 시장 구경을 나섰었는데 비슷한 듯 또 다른 시장 풍경이 재밌었다.
그러다가 귀여움이 한도 초과인 꼬마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디서 상처가 난 건지 머리엔 꿰맨 자국이 그대로였다.
과일을 먹으며 처음엔 조금 경계하는 듯 보이더니 1분도 못 가 표정으로 나와 장난을 쳐댔다. 표정이 어찌나 풍부하고 눈썹도 얼마나 잘 움직여 대는지 이 아이랑 이렇게 계속 바라보며 놀고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겠구나 싶었지만 아이랑 한없이 놀기엔 투어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아쉬웠지만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