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22.
다시 양곤

다시 양곤 첫째 날

by 오늘윤

2019 10월 30일



다시 양곤


11시간이라는 대장정 끝에 다시 양곤에 도착했다. 전날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몹시 피곤했던 탓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긴 했는데 버스가 너무 추웠다. 챙겨간 경량 패딩에 바람막이, 양말까지 신고 버스에서 준 담요까지 덮었지만 역부족이었는지 자는 내내 몇 번이나 추워 잠을 설쳐야 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한 채로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양곤 페이머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뜻밖의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페이머스 버스 측에서 vip버스 고객들을 위한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었던 것이다. 원래 나는 버스를 타고 술레 파고다까지 향할 계획이었어서 전날 꽤 열심히 정류장도 없는 터미널에서 버스 타는 방법 등에 대해 꽤 꼼꼼히 알아두었었는데 이런 예상치 못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운이 좋았다.


페이머스 vip 버스
행운의 셔틀버스


쾌적하고 편안한 셔틀버스를 타고 처음 미얀마에 와서 내렸던 술레 파고다 정류장에 내렸다. 그때는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내렸던 곳인데 두 번째는 여행을 끝내기 위해 다시 찾았다는 것이 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첫날처럼 그때 그 습하고 더운 공기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 왔을 때와 같았다. 몇 발자국 떼지 않았는데도 배낭으로 둘러싼 몸에서 이미 소낙비 같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내가 가야 할 숙소 가는 길은 1km 이상은 걸어줘야 하는 곳이었다. 이번 숙소는 지난번과 같은 백팩커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다. 숙소 체험 여행이라도 되는 양 이번에는 또 다른 숙소를 경험해보기로 한 것. 백팩커도 내 기준에선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초반 동행인이셨던 B님이 원래 가보고 싶으셨다던 숙소가 바오바베드라는 말에 솔깃해 바간에서 예약한 숙소였다.


20191030_080027.jpg
DSC07831.JPG
DSC07833.JPG
DSC07832.JPG
DSC07841.JPG
DSC07839.JPG
DSC07835.JPG
DSC07842.JPG
DSC07843.JPG
DSC07849.JPG
다시 도착한 양곤


양곤의 아침은 확실히 바간이나 껄로 인레와 달랐다. 도시의 바쁜 발걸음들과 도로를 채운 차들이 도시를 깨워대고 있었다. 회사원, 학생들만 바쁜 건 아니었다. 아침 장사를 하기 위해 음식 노점상들은 저마다의 메인 메뉴 냄새를 진하게 풍겨댔고 가게 문을 여는 상인들로 대로변 상가들과 골목길 상인들의 손과 몸은 바빴다.


그중에서도 골목골목마다 한 두 명씩은 꼭 있던 밀가루 빵 장수의 밀가루 빵 튀기는 소리와 냄새에 허기가 느껴졌다. 밀가루 빵이라곤 말했지만 중국 드라마에서 보던 아침 식사용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먹는다는 그 길게 생긴 튀김빵 '유타오'였다. 유타오를 미얀마에 와서 이렇게 많이 보게 될 줄 몰랐었는데 양곤에서 300미터를 걸었다고 한다면 6-7명 정도의 유타오 장사꾼을 만날 만큼 사방팔방 유타오 노점상이 즐비했다.


이렇게까지 많은데 나도 한번 먹어보지 않고 갈 순 없지 싶어 한 중화식당에 들어갔다. 이젠 제법 노점상 음식을 겁 없이 먹을 만큼 베짱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양곤에서는 아직 노점에서 음식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유타오는 쉽게 보이는데 중국 드라마에서 유타오와 함께 즐겨먹던 두유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콜라와 찐빵을 더 시키기로 했다.



그날 아침 식사의 점수를 매겨보자면 글쎄, 유타오는 그저 아무 간도 되지 않은 밀가루 빵일 뿐이었고 찐빵도 냉동 찐빵을 덥혀온 듯 맛이 별로였다. 심지어 유타오에서는 기름까지 줄줄 흘러 식욕을 떨어뜨렸다. 가장 맛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콜라였다. 미얀마 최고의 맛없는 식사를 꼽자면 저 아침을 꼽을 것이다.


DSC07850.JPG
DSC07851.JPG
이 길을 쭉 따라가면 그 끝에 바오바베드 호스텔이 있다.


바오바베드 호스텔


바오바베드는 또 백팩커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다시 껄로에 돌아온 기분이 들만큼 죄다 유럽, 미대륙 사람이 많이 보였다. 쭈뼛쭈뼛 좀 전에 먹고 옷 유타오의 느글거림을 불편해하며 거지 꼬락서니로 들어선 나를 향해 또 한 번 쏠리는 시선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외국 사람 처음 보시나요?

역시 이번에도 너무 이른 시간에 온 탓에 방 배정은 바로 받을 수 없었고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 했다. 9시가 되어서야 받은 방은 3층 혼숙 도미토리, 10명 정도가 들어가는 방으로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 있긴 하지만 커튼봉 사이로 2층에서는 충분히 1층이 들여다보일 틈이 있다는 게 흠이었다.


바오바베드 호스텔은 체계나 시스템이 체인점답게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이곳을 선택한 걸 후회했다. 너무 칼같이 맞춰진 시스템이 오히려 불편하고 갑갑한 느낌마저 들었다. 직원들 몇몇은 불친절하기까지 했다. 어렵사리 프런트 직원에게 질문을 하자 내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며 what? what?이라고 되물으며 한숨을 쉬는 모습까지 보여 당황해 버렸다. 아...백팩커로 가고 싶다.


보족 시장 건물
DSC07865.JPG
DSC07866.JPG


보족 시장 무니문 카페


숙소를 나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처음 왔을 때 월요일이 정기휴일이라 가보지 못했던 정션 시티 맞은편 보족 시장이었다. 뭐 사실 시장 구경보다는 커피가 맛있다던 카페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어느 커피 대회에서 1등을 한 커피라고 하는데 커피맛을 잘은 몰라 그냥 마셔보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겼겠다. 보족 시장을 한 번 다녀보기로 했는데 원단 자재 등을 많이 파는 약간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의 느낌이라 볼게 많진 않았다. 그리고 양곤의 이 습하고 더운 공기가 금세 진을 빼버렸다.


벽에 기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더니 옆 가게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의자를 하나 싹싹 닦아 나에게 내밀어 주셨다. 아주머니가 보기에도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거듭 손짓으로 앉으라고 권유해 주시니 두 번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털썩 의자에 앉자마자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의 부채질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할머니나 엄마의 무릎을 베고 부채질받던 기억은 없는데 기억 조작이라도 된 듯 이 아련한 기분은 뭐람. 더위를 식혀줄 만큼의 바람은 아니었지만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만으로도 마음만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되고 힘든 여행이었지만 순간순간 이런 따뜻한 온정 덕에 내 여행은 웃을 수 있었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양곤만의 분위기


양곤 벽화골목


그다음 코스는 양곤 벽화골목이었다. 사실 이건 얻어걸린 장소였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도 딱히 검색되지 않지만 어떤 블로거분이 링크 걸어둔 지도를 저장해 두었던 게 이곳을 찾아갈 수 있던 방법이었다. 사실 이곳을 찾는데 꽤 오래 걸렸다.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샛길 뒤에 있는 뒷골목이다 보니 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다. 몇 번 주변을 맴돌다 겨우 들어간 벽화골목은 좀 스산하고 무서웠다.


벽화 골목이긴 한데 너무 뒷골목이라 사람도 없고 벽화가 대단하게 있다기보다는 벽면 사이사이 그려진 그림들이 다였다. 골목 자체도 무서운데 골목을 찍고 다니고 있자니 웬 소년이 붙어서 나를 따라다녔다. 이 골목 만으로 충분히 무서운데 넌 또 누구란 말이니? 아주 작은 꼬마였다면 모르지만 나이가 꽤 차서 내 키만 한 소년은 솔직히 경계의 대상이었다.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고 나를 도와주거나 이곳을 설명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소년의 설명을 내가 알아들을 리 만무하고 무슨 의도였던 내 곁을 떠나 주는 게 날 도와주는 것이었다. 아무리 따뜻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가득한 미얀마를 여행한다고는 하지만 말 통하지 않고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땐 경계심은 절대 놓아서도 놓을 수도 없다. 계속해서 졸졸 쫒았다니는 소년에게 손짓으로라도 제발 가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한 뒤에야 떨어지지 않는 듯한 발걸음을 돌려 떠나 주었다.



DSC07888.JPG
DSC07889.JPG
DSC07890.JPG
DSC07891.JPG
DSC07892.JPG
DSC07893.JPG
DSC07894.JPG
DSC07895.JPG


솔직히 벽화 거리는 흔히 생각하는 퀄리티의 벽화 거리는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누군가가 재미로 꾸며놓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중구난방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을 뿐. 만약 이 거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계획한 벽화 골목이라면 아마도 그 계획은 실패가 되지 않았나 싶을 만큼 골목은 조금은 으스스하고 냄새도 나고 관리도 되지 않았었다. 워낙 사람이 없다 보니 누구 한 명만 나타나도 화들짝 놀랄 만큼 골목이 스산했다.


이 앞 메인 거리는 인쇄 물류를 취급하는 가게들과 사무실이 즐비한 골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충무로 인쇄 골목 같은 곳이랄까? 벽화골목은 즉 그 건물들의 뒤편이라 할 수 있는 뒷골목이었던 셈이다. 평일 한낮의 인쇄골목 뒤편으로는 사람들이 다닐 일이 없었고 간간히 뒷문을 열어놓고 일하는 몇몇 인쇄 공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잉크 냄새가만이 귀와 코끝을 자극하며 조용하지만 바삐 돌아가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DSC07896.JPG
DSC07897.JPG
DSC07900.JPG
DSC07898.JPG
DSC07901.JPG
DSC07908.JPG
DSC07914.JPG
DSC07911.JPG


장기 구경


기대한 것보단 못했던 벽화 골목에서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배회했던 것 같다. 충분히 볼만큼 봤구나 싶어 되돌아 나오려는데 게임판이 벌어져 있었다. 사실 장기도 바둑도 체스도 둘 줄 모르지만 아저씨들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게임판을 구경했다. 직접 그린 게임판에 병뚜껑 말로 신속하게 진행되는 그 게임이 무슨 게임 인지도 몰랐지만 그 속도감과 긴장감이 흥미로웠다. 꽤 진지하게 몰입해서 그 게임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를 합쳐 3명 정도가 구경하던 판인데 내가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건지 게임이 흥미로웠던 건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개중엔 나를 향해 손짓하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구경꾼도 있었다.

'당신이 이걸 본다고 알겠어요?'같은 심정이었으려나? '아저씨들 게임판이 왜 궁금할까?'였으려나? 하여튼 그렇게 사람이 늘어 시끌시끌한 소리에 고개를 드니 10명 내외되는 구경꾼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분들은 게임을 보는 내가 신기했겠지만 나는 조금 진지하게 그 게임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진 몇 컷 찍어볼까 하고 앉았던 자리인데 조금만 더 보면 룰을 알 것도 같은데 싶어 더더욱 게임판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재밌으셨는지 옆에 앉아 계시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내게 열심히 룰을 설명해 주셨으나 한국말로 설명 들어도 모를 룰을 미얀마어로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그저 해맑게 고객만 끄덕여 드리며 게임판 룰을 스스로 알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판이 새로 시작되었으나 매번 승자는 하늘색 셔츠를 입으신 아저씨의 압승이었다. 백발 할아버지의 룰 설명은 못 알아 들어도 누가 이겼다고 알려주시는 말씀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하늘색 셔츠의 아저씨 표정이 밝아 보였다. 거의 5판 이상의 게임판을 지켜보았으나 결국 게임의 룰은 알듯 말 듯 알아내지 못하고 기차를 타러 가기로 했던 게 번뜩 생각나 아쉽게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DSC07916.JPG
DSC07928.JPG
DSC07920.JPG
DSC07924.JPG



keyword
이전 10화미얀마 21. 쇼핑투어의 끝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