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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소년 Aug 16. 2021

메뚜기 훈련, 난 포기하지 않아! 두번째

(4장-2) 외로움 속에서 밝은 내일을 꿈꾸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

대부분 쇼트트랙과 피겨선수들은 같은 시간대에 한 링크에서 함께 훈련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링크장 중앙에 고깔을 세워놓고 하는데 고깔 안쪽에는 피겨선수들이 바깥쪽으로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훈련을 한다.      


내가 기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11년 연말 경이었다.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동남스포피아 빙상장 피겨선수 한 명을 인터뷰 하러 방문했다. 1시간가량의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좀 더 담고자 링크장 바깥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악!”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쓰러진 것이다. 모두가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보니 피겨 코치 한 분이 선수를 지도하다가 뒤에서 다가오던 선수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한 것이다. 허리와 등 부위를 크게 다친 탓에 결국 코치 분은 일어나지 못하고 다른 코치분들이 부른 앰뷸런스에 이송돼야만 했다.    


추운 한기가 몰아치는 빙상장... 그곳만큼 외로운 곳은 없지만 늘 내일을 꿈꾼다 (사진출처 구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만이 감쌌다. 머릿속으로는 들것에 실려나간 분을 보면서 “어떻게 어떻게”를 외치거나 울먹이는 선수들이 표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그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던 건 두 가지 감정 때문인 것 같다. 거부할 수 없는 어려운 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왜 나는 학생 때도 외톨이로 가슴 아팠는데 좋아하는 것조차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이어야만 하나...        


하지만 그 곳이 그리 춥고 어둡지 많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속에서 나는 빛을 더 많이 봤다. 2012년 크리스마스날 눈이 많이 오던 때 태릉선수촌을 갔을 때였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의 에이스였던 심석희 선수와 고 노진규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노 선수는 이날 만나기 이전에 이미 1년 전에 누나인 노선영 선수와 함께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링크장에서 먼저 촬영을 진행했다. 그때의 모습은 경기 때와 꽤 달랐다. 선수들의 질주와 연기에 함성이 가득했던 그곳에는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트랙을 지칠 때 시원하게 얼음이 갈리는 소리, 한 바퀴씩 돌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 가뿐한 호흡과 탄식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저녁 단체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인터뷰 할 때 두 선수는 땀에 흠뻑 젖고 막 선수촌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온 터라 음식 냄새가 아직 몸에서 채 빠지지 않았었다. 그저 순수하게 얼음 위를 제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들이 말하지 않아도 잘 느낄 수 있었던 해맑은 미소.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싸면서 깜빡했던 기자 명함을 그제서야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그 때 노 선수가 명함을 보자마자 바로 내게 한 마디를 꺼냈다. “원래 여기 아니지 않았어요?” 1년 사이 신문사가 바뀌었는데 내가 자리를 옮긴 것을 기억한 것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 인터뷰했던 노진규 선수. 지금은 하늘에서 좋아하던 스케이트를 마음껏 타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박눈이 계속 쏟아지고 꽤나 추웠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내가 기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 받은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나를 기억해줘서일까. 선수가 웃으면서 나한테 던진 작은 한 마디는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훈련과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선수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내 눈에 포착됐다. 나보다 최소 5살은 어린 친구들인데 벌써부터 세상 물정을 다 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애늙은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듯 싶다. 2017년 9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약 4달 전에 올림픽 출전이 유력했던 김하늘 선수를 인터뷰 했다. 김 선수는 결국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서서 13위에 오르며 선전했지만, 인터뷰 할 당시에는 아직 선발전이 진행 중이었던 상태였다.   

   

선수와 여러 이야기들을 40분가량 나눴는데, 당시 작은 체구를 지닌 이 선수는 만15세의 어린 소녀라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국회의원들도 이렇게까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긴 어렵겠다 싶을 정도였다. 우스갯소리로 인터뷰 후에 내가 “하늘 선수 혹시 취미가 독서인가요”라고 되물었다.     


피겨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예시 사진 (사진출처: 구글)


이 선수 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소개했던 곽민정 선수를 비롯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 트로이카로 불리는 임은수, 김예림 선수 등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수들이 얘기를 하지만 말을 아끼면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는 것만 같았다. 그냥 편하게 해맑게 깔깔거리며 웃으며 만나도 되는데... 보면서 알 수 없는 씁쓸함에 휩싸였다.       

  

나중에 코치분과 만나 ‘선수들이 지나칠 정도로 정말 똑똑하다’라고 놀란 감정을 전달하면서 서로 안타까운 한숨만을 내쉬었다. 어른들도 일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어렵고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워낙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이치를 이들은 참 빨리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어린 새싹들이 조금 더 밝고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내가 아이스링크에서 맞이한 선수들의 웃음은 밝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 웃음과 함께 아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그리고 왠지 오래된 만화 주제가가 하나 떠올랐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외쳤던 들장미 소녀 캔디. 어머니 세대 때의 만화라 정확히 내용은 모르지만 캔디가 모든 어려움을 꿋꿋하게 헤쳐나가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그런 것 아닐까. 


도쿄올림픽에서 기적의 신화를 써낸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선수 (사진출처 구글) 


이렇게 비인기종목 선수들은 자신과의 싸움과 주변에 처해진 환경과도 싸워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딛고 기적을 써내기 위해 밝은 내일을 위해 다시 뛰어보자고 약속한다. 


최근 막을 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선전은 그래서 더욱 눈부셨다. 과거에 생각도 하지 못했던 종목들에서 메달권 코앞까지 올라오는 놀라운 결과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높이뛰기 우상혁, 다이빙 우하람, 근대5종 전웅태, 정진화 선수 등이 그랬다. 우리가 이들에게 해줄수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올림픽 이 열리지 않을때도 꾸준히 지켜봐주는 관심이다. 그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는 큰 용기와 기적을 만드는 에너지가 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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