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1) 숨막혔던 피겨여왕의 올림픽 출국 현장 취재
올림픽, 그 세 글자는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선수 생명의 전부이자 목표와도 같다. 우리는 그저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보면서 즐기면 되지만 선수들에게는 최소 10년 이상의 삶을 걸어온 여정의 마침표이자 종착역과도 같은 대회다.
그런데 나한테도 올림픽이 뭔가 그런 목표처럼 다가올 줄은 몰랐다. 동계스포츠 취재기자가 되고 난 후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처음 기자 일을 시작했던 것이 2011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올림픽까지 남아있던 시간이 있었던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김연아 선수가 복귀를 선언했던 2012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체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처음으로 느낀 건 2012년 7월. 지난 한해동안 참 열심히 찾아다녔던 태릉 선수촌 내 빙상장에서였다. 김연아 선수와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인재가 기자회견 등을 열 땐 단순히 동계스포츠를 맡는 기자뿐만 아니라 연예계 비롯해 모든 분야의 기자들이 찾아온다. 보통 기자회견을 한다면 늦어도 하루 전날에는 해당 언론사들에게 일정을 공유한다. 그런데 이때만큼은 예외였다.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거취를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린다고 갑작스럽게 공지를 받았다. 부리나케 짐을 싸서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그야말로 기자와 카메라 장비들로 인산인해였다. 아마도 대략 200명이 넘는 취재진들이 찾았던 것 같다.
그야말로 ‘취재열기’ 네 글자가 그대로 내 몸에 다가온 순간. 어렵게 틈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두 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함께 김연아 선수가 등장했고 자신이 준비해온 글을 차분히 읽어 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소치 올림픽에서 현역 은퇴를 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 피겨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강자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한마디를 모든기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타자를 치며 실시간으로 속보를 전했다.
이후 김연아 선수의 복귀시즌이 시작되고 난 후 나는 인천 국제공항으로도 취재를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스포츠 기자라면 공항은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인데 해외 원정경기에 나가기에 앞서 기자들과 간이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동계스포츠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여길 자주 찾았다. 공항에서도 그녀를 취재하기 위해 정말 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동계스포츠 자체가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많아야 30명 정도밖에 오지 않는다면, 김 선수가 올 때는 최소 50명은 족히 온 것 같다.
공항 취재에서 절정을 이뤘던 것이 바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였다. 여왕의 올림픽 2연패를 향한 여정을 기사와 사진으로 담고자 또 한번 엄청난 인파들이 인천공항에 몰렸다. 보통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보통 1시간, 늦어도 30분 전에는 현장에 도착해서 대기한다. 그런데 이날은 2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수많은 곳에서 자리 선점을 해놓고 준비해놓았다. 결국 이리저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서 기다리다가 회견이 시작될 무렵 선수가 경호를 받으며 멀리서 걸어왔다.
이리저리 있던 나는 선수들이 사용할 테이블과 가장 가까운 벽 쪽에 붙어 대기했다. 취재기자들은 자리가 별도로 따로 없다 보니 대부분 서 있었는데 당시 그나마 자리가 좋았던(?) 벽 근처로 모두 몰렸다. 그리고 서로가 뒤엉켜 있는 상태에서 취재를 하고자 제각기 수첩과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켜 놓고 최대한 손을 테이블로 뻗었다. 이윽고 인터뷰가 시작되고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소감을 한 마디씩 말했다. 소감 이후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그때 나는 틈에 껴서 손을 마구 흔들며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소속사 직원분이 보셔 정말 운이 좋게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김 선수에게 질문을 했다.
“이번 올림픽이 한국 여자피겨 역사상 가장 많은 3명의 선수가 출전하게 됐습니다. 후배 선수두 명과 함께 출전하게 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해요!”
사람들 사이에 섞어 질문을 한 탓에 선수가 제대로 듣지 못해 매니저가 대신 전해줬다. 김 선수는 “항상 시합을 나가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싱글뿐만 아니라 페어, 아이스댄스 등 다양한 종목 선수들이 함께 출전한다. 이번에 다른 종목 선수는 없지만 후배 선수 두 명이 함께 해서 든든한 마음이 크다”고 답했다. 그렇게 나는 내 기자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그곳에서 선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는 행운을 함께 했다. 그리고 곧바로 글로 담아냈고 신문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