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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소년 Aug 29. 2021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두번째

(5장-2) 생애 첫 잡지 기고와 피겨여왕의 마지막 경기

올림픽 직전에는 이런 처음으로 잡지에 기고를 하는 뜻밖의 기회도 얻었다. 소치 개막을 한 달여 남겨둔 시점이었다. 나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기사를 쓰다가 네이버 메일함을 열었는데 그때 눈에 띈 무언가를 발견했다. 


‘기고 요청’이라는 제목의 메일. 메일을 확인해 보니 국민권익위원회 공공기관에서 출간하는 국민권익 잡지에 <소치 올림픽 김연아 선수 피겨경기 100% 즐기기>라는 주제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내 블로그를 우연히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고요청인가’ 하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메일에 적혀있던 연락처로 전화했다. “혹시 이거 이상한 거 아니죠? 정말 저한테 기고 요청해 주신 게 맞나요??”라고 물으면서 몇 번이나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전화로 물었다. 사실임을 확인한 후 나는 드디어 해냈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A4용지 3장가량의 분량에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그림들을 마음껏 펼쳤다. 기사를 송고하고 난 후 약 한 달가량이 지나서 나는 잡지를 받을 수 있었다. 펼쳐보니 잡지 중간 즈음에 내 글이 게재돼 있었다. 보면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기쁘기도 하면서도 감격스럽고... 근데 왜 눈에는 눈물이 고이는건가...   


   

2014년 2월 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 잡지에 실린 김연아 선수 소치 동게올림픽 관전포인트 기사 


그런 알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소치 올림픽을 맞이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 올림픽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함을 안겨줬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러시아의 편파판정으로 인해 여왕의 올림픽 2연패가 무산됐기 때문. 전 세계 모두가 러시아를 비난했고 김연아 선수는 끝까지 우아함으로 자신의 연기를 모두 은반위에 쏟아냈다. 상상을 뛰어넘는 점수가 발표된 순간에도 웃으며 마무리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시차로 인해 새벽 3시 넘어서까지 경기를 보면서 글을 쓰던 나는 이 경기를 본 직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만이 감싸던 때 갑작스럽게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박영진 기자님. 혹시 김연아 선수에 대한 기사를 좀 써주실 수 있으실까요?” 


워낙 빅뉴스였기에 신문사 역시 이 경기에 초미의 관심사를 보였던 것. 그동안은 내가 신문사에게 기사를 송고만 했다면, 이제는 기사 제의를 받고 작성하게 된 것. 고민을 거듭하며 나는 이 경기와 선수에 대한 내용을 3차례의 기사로 나눠 다양하게 작성했다. 편파판정에 대한 분석, 선수 에피소드 등등 피겨를 취재하면서 쌓아온 나의 지식 들을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감성적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2014년 2월 21일 오마이뉴스 최상단 메인면에 실린 나의 피겨스케이팅 경기 기사 


소치 올림픽 스캔들은 결국 7년간의 기자 생활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이 내용들을 다루면서 나는 신문사 기사화면에 몇 차례 톱면에 오르는 행운을 누렸고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림픽을 다루기 위해 17일간 일정 동안 시차를 바꿔가며 매일 경기를 보고 그것을 기사로 다뤄왔다. 몸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어떠한 분야에 책임을 갖고 정보를 알리고자 쉼 없이 뛰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비인기라는 벽에 갇혀 있던 틀에서 벗어나 진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것과 같았다.     


올림픽, 월드컵 등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이지만 기자들에게는 정말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다.대회가 열리기 약 한 달여 전부터 취재를 위한 사전준비들을 해야 하고, 약 2주 전에는 현장에 도착해 본격적인 정보를 수집하며 일정을 확정 짓는다. 


그리고 대회 기간 동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을 누비며 실시간으로 해당 종목과 경기에 대한 내용을 기사로 담아 송출해 내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곳에는 대회 함성과 더불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쉼 없이 들리고, 프레스석에는 기자들이 타자대회라도 연 듯 정말 누가누가 기사를 더 빨리 써서 내보내나 하는 속보경쟁들로 뜨겁다.      


나는 비록 현장이 아닌 TV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보았지만 경기 스케줄에 맞춰 동일하게 움직이며 17일간의 일정을 함께했다. 대회가 끝난 후 한동안은 큰 산을 넘었다는 기분은 잠시였고 허탈감이 워낙 강해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만큼 치열했다는 증거이고 기자 생활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찍었다. 그렇게 내 첫 올림픽은 무사히 해냈다는 기쁨과 조금의 성취감,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낸 후에 찾아온 지침과 함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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