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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혼자서도 잘 노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5] 에두아르 뷔야르

Interior, Mother and Sister of the Artist(1893), 뉴욕 모마

그림의 제목, '방 안, 예술가의 엄마와 누이'(1893)는 말 그대로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림 중앙에 위치한 엄마가 확연히 눈에 띕니다. 엄마의 검은 드레스가 얼굴과 두 손을 제외한 온 몸을 감싸고 있어서 마치 머리만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누이는 벽에 기대어 엉거주춤 서 있네요. 두 사람의 관계 및 성격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제목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 안(Interior)이 제목의 가장 앞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방 안 그 자체인 것입니다. 두 인물은 방 안에 있는, 방 안을 구성하는 사물들처럼 그저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특히, 누이의 모습을 보면, 벽에 완전히 달라 붙어있는 것도 모자라 거의 벽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체크무늬 드레스로 간신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살아 꿈틀대는 듯한 벽지 무늬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만 같네요. 이상하게도 엄마 뒤에 있는 서랍장보다도 못한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에두아르 뷔야르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내부 공간을 그린 앙티미슴(Intimsme) 화풍의 화가였습니다. 야외보다는 실내를 그렸고, 사람보다는 공간을 그렸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방 안의 여러 장식과 문양을 그렸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그림은 본격적인 인테리어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엄마의 존재감이 강하여 인물화의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다른 그림들을 보면 마치 온갖 장식과 문양의 향연을 보는 듯합니다. 무늬의 시작과 끝을 분간하려니 어지러워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일부러 모호하게 경계를 무너뜨린 탓에 형태가 뭉개지는 것은 물론 색의 구분도 모호해졌죠. 어차피 형태나 색의 구분보다는 세상의 모든 가능한 무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듯한 경이로움과 재미를 선사하고자 한 것입니다. 보는 이는 이를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한땀한땀 공들여 공간을 정성스럽게 채워나간 덕에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살아있는 무늬들을 따라가노라면 단 한 개도 똑같은 문양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채로움에 흠뻑 빠져드는 순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것입니다.


(좌) 'Le corsage rayé'(1895), 워싱턴국립미술관 / (우) 'Interior'(1904) 푸슈킨박물관

그 느낌은 또 얼마나 아늑하고 감미로운지요. 방 안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에 더하여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가득한 실내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포근하고 보드라운 패브릭을 만지는 느낌이랄까요. 

뷔야르가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습니다. 뷔야르는 15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의 엄마는 재봉사로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뷔야르의 집은 당연히 갖은 패브릭으로 넘쳐났고 이러한 패브릭에 파묻혀 하루종일 드레스며 테이블보, 커텐 등을 만드는 어머니와 누이들은 뷔야르의 세계를 아름답게 채워주었습니다. 어느덧 패브릭, 아니 그 문양들이 중심을 차지하고야 말았지만요.


뷔야르가 그린 문양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Le corsage rayé'(1895)를 볼까요. 화병에 꽃을 정리하고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그녀의 커다랗게 봉긋 솟은 소매의 드레스가 화면을 장악하고 있네요. 붉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드레스인데 옷의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목과 소매에 주름이 있고 퍼프 소매가 한껏 부풀어져 있어서 비교적 단조로운 줄무늬조차도 다채로워보이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목주름으로 인해 붉은색과 흰색이 같은 간격으로 단조롭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흰색이 더 많이 보이는가 하면 소매 부분도 퍼프로 입체감이 주어져 역시나 흰색이 더 많이 보이는 효과를 주었네요. 배경색 또한 붉은색이라 자칫 드레스가 부각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이를 잘 보완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화병에 꽂힌 부케는 이미 화려한 블라우스와 배경의 색깔을 해치기 보다는 조화를 이루려는 듯 무채색의 꽃 그리고 초록색의 잎과 가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붉은색과 초록색의 조화는 보색관계로 두 개의 색이 모두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또렷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듯 뷔야르는 그림의 각 공간을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고 각기 다른 무늬들로 알차게 채워넣었습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자의대로 공간과 색을 조율해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여인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녀는 단지 화려한 블라우스를 보여주기 위한 마네킨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 붉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블라우스와 부케, 벽지가 어우러진 문양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두 번째 그림은 어떤가요. 아예 제목을 'interior'(1904)라고 붙인 이 그림은 벽지는 물론 식탁보, 카페트, 의자 커버 등 아름다운 문양으로 꾸며진 아늑한 실내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인물들의 비중이 훨씬 적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간의 구석이나 가구의 뒤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또한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 눈에 띄기 보다는 오히려 튀지 않습니다. 대신 공간의 대부분은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중간중간 창틀, 그림 프레임, 의자 몰딩, 나무 책상, 테이블 다리가 무늬들을 적당히 구분해주면서 각각의 공간이 채워지도록 역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문양이 채운 공간은 무척이나 아늑하고 따스해 보입니다. 사물의 형태가 또렷하지 않고 부드러운 까닭도 있고 햇빛이 방 안에 가득 들어온 까닭도 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각각의 무늬가 수놓은 공간이 제 각각의 재질로 이루어져 보드라운 감촉과 따스한 질감이 절로 느껴지는 까닭인 것 같습니다. 딱히 어느 하나가 도드라짐 없이 서로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네요.




뷔야르가 수놓은 문양들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방에 누워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 보면 어느새 눈길은 벽지에 머물곤 했습니다. 벽지의 무늬는 아라베스크나 기하학적 문양들로 채워지거나 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꽃무늬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무늬들을 따라 동물 형상이나 사람 얼굴을 만들어 보거나 반복되는 패턴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질서를 찾아내면서 시간을 보내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뷔야르에게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벽지는 물론이고 집 안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패브릭들을 보면서 뷔야르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겠죠. 따라서 그의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실내 공간을 다채롭고 따스하게 채워주는 문양과 장식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Lucy Hessel(1924), 개인소장

1914년 이후로는 파리의 상류층과 유명인으로부터 초상화 의뢰가 많이 들어와 초상화가 그의 그림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초상화는 여느 초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인물 자체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장식과 무늬, 그 장식과 무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중요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그림 세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습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주변을 그립니다.(...) 내가 느끼는 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 자의대로 그려나갑니다. 그밖에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그의 뮤즈 중 한 명이었던 루시 헤설의 초상화(1924)를 한 번 보세요. 얼굴과 목덜미, 손을 제외하고는 빈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마치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은 방임이라는 듯이 말이죠. 그녀가 있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요소들 하나하나가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유롭고 차분하며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녀를 둘러싼 그림과 그녀가 입고 있는 옷, 그녀가 팔을 기대고 있는 테이블보, 테이블 위의 꽃과 장식품이 만들어낸 무늬들은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뷔야르는 문양과 장식들이 이루어내는 경이로운 향연에 흠뻑 빠져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과연 혼자 놀기의 달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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