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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혼자서 등은 어떻게 미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4] 에드가 드가

The Tub(1886), 오르세미술관

좁은 목욕통 안에 쭈그리고 앉아 여인은 지금 등을 밀고 있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등을 어떻게든 밀어보려고 노력 중이네요.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 상당히 애를 먹고 있겠지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최대한 멀리까지 손을 대보려고 하지만 오늘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너무도 익숙한 장면일 것입니다.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위로 손을 올려 날갯죽지에라도 닿으려고 애쓴 경험, 모두들 있잖아요. 허리 아래로 밀어올려도 보지만 역시나 날갯죽지까지는 무리입니다. 결국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띠로 된 샤워타월을 이용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내리기도 하지만 손으로 직접 미는 것만큼 개운한 느낌은 나지 않기에 안될 걸 알면서도 다시 한 번 팔을 위로, 아래로 꺾어봅니다. 오늘도 등에 닿으려는 손짓은 언제나처럼 간절하고 역시나 허망하게 끝이 나 버리겠지요.

오른편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머리빗은 떨어질락말락 아슬아슬합니다. 닿을듯 말듯한 여인의 손길을 표현한 것일까요. 다소 비장하기까지 한 앉은 자세와 바닥에 떠받치고 있고 힘이 잔뜩 들어간 왼팔은 널브러져있는 물건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진지해서 민망할 지경입니다.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여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만큼 진심인 것입니다.




드가가 그린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은 모두 이런 식입니다. 앉으나 서나 등을 밀기 위해 애쓰고 있거나 목욕을 마친 후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무척이나 공을 들이고 있곤 하죠. 기존에 여인의 목욕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에로틱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 어느 순간보다 치열합니다. 

목욕이라는 것은 분명 숨어서 은밀히 하는 것인데 기존의 그림에서는 마치 보란 듯이, 또는 은근 의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하던 여인들을 기억하시나요? 하지만 드가의 그림 속 목욕하는 여인은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 외엔 그곳에 어느 누구도 없다는 확신 아래 마음 놓고 목욕의 의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드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무안함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 또한 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이 눈 앞에 드리워진 느낌이 들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의 느낌을 걷어내고 가만히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신선하고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우선 여인은 우리를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욕을 하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죠. 그녀는 연기를 하거나 포장을 할 필요도 없고 가면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얼굴은 그림에 등장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얼굴은 머리칼에 가려지거나 뒤통수를 보이고 있는 식입니다. 

또한 신체의 앞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이 그림은 여인의 신체적 특징을 부각시켜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림이 아닙니다. 성적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가슴이나 엉덩이를 돋보이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드가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신체 부위는 등이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등일까요. 등은 자신의 신체 중 가장 가까이하기에 먼 부분입니다. 목욕을 할 때에도 가장 신경이 쓰이고 부담스러운 곳이죠. 자기 몸이지만 자기 맘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등을 민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목욕을 하며 나름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것은 등을 향한 여정에 따른 것입니다. 오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혹시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됩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오로지 자신만 알 뿐이고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상관없는 일이죠. 하지만 등을 미는 일에 매번 진심인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두번은 몰라도 매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따라서 등을 미는 것은 혼자 수행해야만 하는 일종의 임무와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죠. 혼자 있을 때만 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오로지 혼자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위인 셈입니다. 




The Star(1878), 오르세미술관

드가가 발레리나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무대 위에서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의 'The Star'(1878)는 황홀경에 찬 듯한 발레리나의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드가는 역시나 무대 위보다는 무대 밖의 발레리나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발레 교습을 받고 있거나 연습 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그림에는 더 흔하게 나타납니다. 

발레리나의 백스테이지를 보는 일은 일반인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대 뒤의 모습을 보려면 일종의 패스가 필요했는데 주로 귀족계층이나 후원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드가는 지인으로부터 패스를 받아 연습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무대 밖 발레리나의 모습을 담은 그의 그림은 따라서 신선하고 흥미로워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드가는 분명 눈요깃거리로 발레리나의 모습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무대 위의 잔뜩 꾸며진 동작과 질서있고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이루는 모습 대신 무대 밖에서 긴장을 풀고 있는 모습에 눈이 간 것이죠. 아마도 다소 사적이고 인간적인 요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드가는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난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에 눈을 돌리곤 했습니다.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산뜻한 모습의 상류층이 아닌, 그들에게 봉사하는 여성 세탁부, 모자 장수, 매춘부 등을 그렸습니다. 

귀족 남성들의 은밀한 욕망의 해소 대상으로 떠오른 발레리나는 무대 위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꽤나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드가가 그린 무대밖 발레리나의 모습은 단순히 캐주얼하거나 색다른 모습이라기 보다는 지친 모습이 역력합니다. 

Two Dancers(1879), 셸버른뮤지엄

'The Two Dancers'(1879)를 볼까요.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 종아리와 발목을 풀고 있는 두 발레리나의 모습은 고된 연습으로 인한 후유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나이도 어리고 연약해보이는 소녀들은 발레리나라는 이름으로 나름의 꿈과 희망을 품고 성실히 연습에 임하는 훌륭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구부린 어깨와 등은 왠지 안쓰럽고 애틋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삶의 무게라는 것이 있음을 새삼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을 다그치기 보다는 살짝 감싸주고 싶습니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바로 다른 자세를 취했겠지요.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요. 

삶에는 누구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들키고 싶지는 않은 부분이기도 하죠. 그래서 왠지 애처롭고 안쓰러우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저 조용히 응원을 보내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혼자서 힘 닿는데까지 해내는 그 모습을 애틋하게 그리고 대견하게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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